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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아이는 제주를 기억할 수 있을까?

제주가 아이에게 나눠준 것들

by 시골쥐

아이가 두 돌을 맞은 다음날 우리는 제주를 떠났다. 제주에 들어갈 때는 아이의 항공료가 무료였는데, 나올 때는 한 좌석을 구매해야 하는 나이가 됐다. 45일 동안 아이가 참 많이 자랐다. 제주도에 가겠다고 했을 때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제주도에 갔던 걸 기억할 수 있을까?" 나는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제주도에서 보낸 추억은 아내와 내가 기억해도 충분하다. 우리 부부는 그저 아이가 제주에서 자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은 것이었다.


제주도를 다녀오고 나서 아이에게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첫 번째는 아빠와 많이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육아휴직 초기에 적잖이 당황했던 것은 아이가 나를 친근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나름 열심히 놀아줬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느끼기에는 부족했나 보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여러 가지 놀이와 활동을 같이 하면서 우리는 많이 가까워졌다. 바쁜 사람이었던 아빠가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 되었다.

두 번째는 아이가 낯가림을 하지 않게 되었다. 자주 만나는 가족 외에는 친척들만 봐도 울음을 터트리던 아이였다. 그런데 아이가 낯가림을 하지 않는다. 누굴 봐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친근한 미소를 짓는다. 제주도에서 여러 사람을 만난 경험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세 번째는 아이에게 언어 폭발기가 왔다. 제주도에서 돌아오고 보름쯤 뒤에 갑자기 말문이 트였다. 어느 날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아이가 신나 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다. "비행기 타서 엄마랑, 아빠랑, 제주도, 재미재미". 제주도의 추억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내와 나만은 아니었다.


우리 아이는 코로나 시절에 태어나서 주로 집에서 생활했다. 주변에 또래 아이가 없고 우리 부부도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가 만나온 사람들의 전부다. 그래서 제주도에 가면 다른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종달리에서는 펜션 사장님 부부와 그렇게 지냈고, 저지리에서는 마을 주민분들, 옆 객실에 계시던 분들과 그렇게 지냈다. 제주도에서 아이가 두 돌을 맞았을 때, 떡을 해서 그분들과 나눠 먹었다. 잔치를 하지 않았지만 많은 축복을 들을 수 있었다. 모두 아이를 예뻐해 주셔서 아이도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서 따뜻한 아이가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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