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살아가기
어쩌면 이 글을 쓰기 위해 브런치를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안정된 삶을 누리다가 온 말레이시아에는 생각보다 많은 단점들이 있었다.
그 마음을 조금은 쏟아내보고 싶어서 이 글을 시작한다.
앞서 말레이시아에 사는 장점에 대한 글을 쓰긴 했지만, 단점도 정말 뚜렷하게 존재하는 나라이다. 부푼 꿈만 갖고 오시는 분들은 마음 단단히 하시길.
1. 담배에 관대한 나라
출근시각, 서울의 큰 빌딩 앞에서 담배를 태우는 직장인 무리를 본 적이 있다. 가끔 그 장면이 생각난다. 아- 얼마나 질서 정연하고 사려 깊은 행동인가.
서로의 담배 연기를 잘 다린 정장에 묻혀가며 전봇대에 앉은 참새처럼 얌전히 담배를 태우는 모습이란.
그 옆을 지나가며 인상을 찌푸렸던 지난 나를 반성하며, 다시 그 흡연자 무리를 만나게 된다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지나가리라.
여기에서는 한 자리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다.
모두가 길빵이다.
어린이가 있건, 노인이 있건 상관없이 길빵이다.
아주 좁은 길에서조차 담배를 태워서 옷에 닿지 않게 조심히 지나간 일도 있다.
이 정도면 약과이다.
이곳은 시외버스에서 기사님이 담배를 태운다. 운전석에서.
평소에 멀미를 많이 해서 버스를 타면 앞쪽으로 앉는 편인데, 기사님이 운전 중에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똑똑히 목격하고 말았다.
버스에 탈 때부터 온통 차에 담배냄새가 가득해서 설마설마했는데,
범인은 기사님이었다.
휴게소를 안 들른 것도 아닌데, 휴게소에서 피지 않고 버스에서 핀다. 운행 중에.
정말 괴로운 2시간이었다.
그 이후로는 시외버스는 거의 타지 않는다.
페낭, 이포, 싱가포르 등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곳도 비행기를 타고 다니게 되었다.
혹시 모를 담배버스를 피하기 위해서.
물론 모든 버스기사님이 그런 건 아닌데, 버스회사나 버스터미널을 구글맵에서 검색해 봐도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후기들이 심심찮게 보이니,
혹시 버스를 타게 된다면 기사님과 멀리 떨어진 뒷자리에 앉거나,
정말 모든 후기를 샅샅이 뒤져 좋은 버스를 타시길 바란다.
2. 보행자에게는 가혹한 나라
도보가 잘 되어있지 않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와 보니 상상 이상이었다.
보도블록이 깨져 넘어지기 십상이며,
간혹 배수구 보수가 잘 되지 않아 1-2m 구덩이로 빠질 위험이 내가 걸어 다니는 걸음걸음마다 존재한다.
지금은 마음이 많이 익숙해지고 나아졌는데, 처음엔 오-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계속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발목이 약해 평소에도 계단이나 턱을 조심해서 건너는 습관이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거의 땅만 보고 다니고 있다. 언제 어디에 걸려 넘어질지 모르므로.
실제로 회사 동료는 한 달 만에 발목을 접질려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도로 보수가 안 되는 것만이라면 그럭저럭 넘어갈 만 한데,
이어서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길이 없다.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이 없다.
A에서 B지점으로 가는 구글맵을 찾아보면 직선거리로는 1km인데, 걸어서 3km를 가라든지 하는 우회로를 많이 안내받는다.
왜냐면 도보가 없기 때문이다.
도보가 끊기거나 건물에 가로막힌다.
이 경우 무단횡단을 해야 하는데, 딱 각이 나오지 않는가?
여기는 보행자를 존중하는 나라가 아니다.
길이 없어서 무단횡단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ㅋㅋㅋㅋ 하............
그냥 우스갯소리로 목숨 걸고 건너 다닌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단기 어학연수 오는 학부모들이 어학원이랑 최대한 가깝게 레지던스를 잡는가 보다.
다만, 가끔 구글맵에 나오지 않는 나만의 통행로를 개척하는 재미는 있다. 건물을 뚫고 간다든지, 주차장을 지나서 간다든지. 여러 생활짬바에서 나오는 우회로가 없지는 않다.
3. 묘하게 불친절하네.
여기 와서 처음 1-2주간 느낀 감정은 사람들이 묘하게 불친절하다는 것이었다.
뭐 대단한 환대를 바란 것은 아니고,
영수증을 두 손으로 준다든지, 미소를 띤다든지, Thank you라는 말을 붙인다든지 하는 사소한 것이면 되는 건데, 그 사소한 것이 잘 이뤄지지 않는 곳이었다.
물론 회사를 다니면서는 친해진 말레이시아 동료들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나라는 불친절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은 주변국으로 여행을 다녀오면서 더 확신이 들었는데,
가까운 인도네시아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따뜻하고 밝다.
하다못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직업정신으로라도 친절을 흉내 낼법할 만도 한데 그게 정말 이뤄지지 않는 곳이 여기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딱히 그 이유는 모르겠는데,
현재는 이 '나라'라서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사는 곳이 너무 '도시'라서 그런 게 아닐까-하고 추측한다.
바쁘고, 빈부격차는 크고. 그러다 보니 마음 한편에 계속 어두움이 있는 사람들.
물론 이것은 나의 사견이다.
다르게 느끼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다만, 내가 여기서 겪는 현실을 미화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게 이 나라와 도시의 색깔 같달까.
실재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나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
(너무 미워하는 글을 쓴 것 같아 예쁜 쿠알라룸푸르 수영장 사진을 첨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