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따라 온 남편
회사에서 말레이시아 파견 공고가 났고,
이를 지원하기 전에 남편과 상의를 했다.
남편은,
우리에게 이렇게 좋은 기회가 어딨겠냐고,
나도 휴직을 써서 같이 따라가서 좀 쉬다 오겠노라고 흔쾌히 대답했다.
나는 주재원으로 선발되어 말레이시아 파견이 확정되었고,
공무원인 남편의 배우자동반휴직도 비교적 어렵지 않게 승인이 났다.
그렇게 우리 부부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생활은 시작되었다.
내 주변에서는 다들 남편 팔자를 부러워했다.
휴직하고 외국에 나가는 것만도 부러운데 게다가 아이도 없는 배우자동반휴직이라니-
그냥 놀고 먹고, 가끔 집안일만 하면 되는 것 아니겠냐고,
나를 포함한 모두가 그를 부러워했다.
그도 말레이시아에 가면,
그동안 회사 때문에 바빠 미뤄뒀던 글쓰기, 영어공부, 운동 등 여러가지를 시작해보겠노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런데 정말 모든 일의 공식처럼,
부푼 기대 뒤에는 실망이 찾아온다.
남편은 무한한 시간의 자유를 어색해했다.
그 시간은 자연스레 핸드폰, 낮잠 등으로 채워졌다.
하루종일 회사에서 영어업무*에 시달리다 온 나는 그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더 챙김받아야 하는 사람은 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는동안 그는, 외딴 나라에 대화할 사람은 나밖에 없는 공간에서 점점 더 생기를 잃어갔다.
*영어업무의 강도는 영어+업무, 영어x업무가 아니라 영어의 업무승, 업무의 영어승 정도 되는 것 같다..
이를 더 심화시켰던 건 비자 문제였는데, 비자 발급 때문에 우리의 여권이 외교부에 제출된 상태로 근 한달을 지냈다. 그는 언제 나올지 모르는 비자와 여권 문제로 인해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말레이시아의 후진적 일처리와 비자 담당 직원을 욕하기도 했는데, 그 불만을 들을때 마다 마치 그 일을 해결해야 되는 사람은 나인 것 같아 내 마음도 힘들었다.
초기 근 한달의 그 음울한 안개는,
정말 시간이 약이라고 조금씩 걷히고 있었다.
어느덧 비자도 나오고 어느정도 생활도 안정되었다.
남편은 지금 아침마다는 스타벅스에 노트북을 갖고 가서 글을 쓰고,
골프를 배우고, 많은 시간은 한국 뉴스를 본다.
초기의 남편과의 갈등, 힘듦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에피소드 중심으로 찬찬히 써 나가볼 생각이다.
나는 배우자동반휴직은 마냥 행복할 줄 알았다.
10년을 한 직장에서 매일 같은 시간에 출퇴근하며 살다가 오랜만에 맞이한 자유는 얼마나 달콤할까.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고, 내가 먹고 싶은 시간에 점심을 먹고, 또 먹고 싶은 만큼 길게 먹을 수 있는 시간의 주도성은 대체 얼마만에 잡아보는 것인가.
그래서 내심 그가 가족이지만 질투가 나고 부럽기도 했다. 나는 마치 첫 직장을 잡았을 때의 그 피곤함처럼, 새로 보는 사람들, 새로 맞이하는 시스템, 게다가 영어에서까지 큰 부담의 대가로 우리가 말레이시아에 살 수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불평과 불만이 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톡 까놓고 얘기하면 이런 마음이었다. 아니- 이런 기회가 어딨다고 불평 불만이야? 배때지가 불렀네 진짜)
주재원, 주재원 가족으로서의 장점과 혜택도 있듯이,
또 주재원, 주재원 가족으로서 각자의 힘듦도 있다.
어쩌면 나중에는 다 미화되어 버릴 이 초기의 에피소드들을 조금씩 공유해보려고 한다.
이 갈등은 대부분 나의 시각에서 기술될 예정이므로 편향될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브런치북은 처음 연재해보는데 사실 잘 감이 잡히지 않는다. 말레이시아 생활 이야기를 쓸까, 외국회사 생활에 대한 얘기를 쓸까, 남편과 겪은 삶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쓸까, 여러가지 생각들이 든다. 주제를 하나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처음이니까 일단 생각나는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글을 이어나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