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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에서 새 보금자리 구하기

복병은 계약기간

by 열무

한국에서 집 계약을 하고 올 수는 없으므로,

말레이시아에 처음 들어와서는 호텔에서 살았다.

호텔에서 1-2주간 지내면서 빨리 장기 숙소를 얻어 나갈 예정이었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미리

Iproperty 라든지, Propertyguru 앱을 통해 회사 인근의 월세 매물을 둘러봤었다.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월세 한도로는 KLCC 내에 있는 꽤 괜찮은 집들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입말을 하고 집을 구하러 돌아다녀보니, 생각보다 앱에는 허위 매물이 많았고, 내 마음에 쏙 드는 집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생각한 조건은 아래와 같았다.

1. 방 2개, 화장실 2개 이상

- 둘이 살기에는 더 좁은 집도 괜찮았으나, 나중에 가족이나 친구들이 놀러왔을 때 손님방이 필요하기에 이런 조건을 달았다.

2. KLCC 공원 도보거리 위치

- 단점편에서 기재했지만, 쿠알라룸푸르는 걸어다닐만한 곳이 없다. 여차하면 쇼핑몰을 산책해야 되는 실정이라, 그나마 도심에 있는 KLCC 공원이 가까워야 산책이 가능하다.

3. 어느정도 전망이 확보되어야 함.

- 하늘이 보여서 창밖으로 날씨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조건으로 완벽하진 않지만 꽤 괜찮은 집을 볼 수 있었는데, 계약 직전 문제가 됐던 것은 계약기간이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여기에서도 집주인은 1년 이상의 계약을 선호한다. 최소 1년을 계약기간으로 가져가야 내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할 수 있다.


나는 이미 호텔에서 며칠을 소진한지라 약 1년이 조금 안되는 기간으로 계약을 했어야 했는데, 이것 때문에 집주인이 난색을 표했다.


내가 직접 월세를 내는 거라면, 계약기간을 1년으로 하고 며칠 손해를 본다든지 하는 융통성도 발휘할 수 있을텐데, 회사에서 계약을 하는 거라 그런 우회방법은 통하지가 않았다.


한국에서는 안되는 일도 되게 한 경험이 많았는데, 특히 집을 구하는 일이라면 그랬다. 부동산을 살 때 그 자리에서 몇백만원을 깎는다든지, 에어컨을 포함한 조건으로 집을 구한다든지, 아니면 입주청소를 해달라든지 하는 그런 특약 말이다.

심지어 부동산 사장님은 지금 당장 집 팔 생각이 없는 사람의 마음을 돌려 집을 팔게 하는 재주도 있다. 내가 구한 첫 집이 그렇게 나온 매물이었다.


여기서는 협상의 한계가 있었다. 영어도 영어지만 무엇보다 내 부동산 에이전트나 상대쪽 에이전트도 협상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나처럼 월세를 구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한국 부동산 사장님들처럼 안되는 것도 되게 하는 적극성이 없었다.


⬇️ 아래는 에이전트와의 대화. 결국 집주인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단 1년에서 며칠 빠질 뿐인데!


안될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그 계약은 결국 성사가 되지 못했다. 단 며칠때문에!

도대체 단 며칠이 왜 협상이 안되는 것인가!


내가 생각한 결말은 이게 아닌데,

허무하게도 다시 집을 구해야했다.

그나마 계약 직전까지 갔던 그 레지던스 내의 다른 호실의 집을 구하게 되었다.


아주 완벽하진 않지만

원래 살던 호텔보다는 훨씬 아늑하고 집같은 공간이 생겼다.


언젠가 한번은 호텔에서 사는 삶을 꿈 꾼 적도 있지만,

약 한 달을 거주하다보니 그건 내 성향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 성향에 맞지 않을 것 같은데,

일주일에 두번씩 사적 공간에 누군가가 청소를 하러 오는 것이라든지,

금방 떠날 요량으로 세탁세제나 휴지를 최소한으로만 사 둬야 하는 것은,

항상 어딘가 마음을 공허하게 만들었다.


새로 구한 집은 밤에는 도로소음이 조금 있긴 하지만,

내가 구할 수 있는 조건에서는 꽤 괜찮은 집이라고 생각한다.


아- 그리고 내가 조건에 달지는 않았지만,

쿠알라룸푸르 내의 웬만한 레지던스에는 다 수영장이 같이 있다.

가끔 수영장에 내려가서 수영을 하거나 선베드에 누워 햇빛을 맞으면

또 한주의 피로가 스르륵 풀리곤 한다.


1년 뒤에 나는 어디에, 또 어떤 집에 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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