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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작 Dec 24. 2021

시계방향으로 본 영화 <기생충>(2019)

제시카는 죽어야만 했다.

1. 첫 장면

  영화 <기생충>은 영화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이 어느 지평에 서 있는지 반지하 창문 밖 풍경을 응시하며 시작합니다. 상황은 마음먹기에 달린 게 아니라 마음은 상황에 달려 있다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 내용은 영화 중후반 비 내리는 장면에서 서로 다른 마음 상태의 대비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냅니다. 높은 곳에서는 폭우가 내려도 낭만적인 반면 낮은 곳에서는 지옥이 됩니다. 같은 비인데도 같은 마음을 먹을 수 없습니다.  마치 사회에서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나 자체가 아니라 내 위치이듯, 다시 말해 내가 계급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계급이 나를 결정하듯 말입니다. 문제는 아예 밖을 못 보는 어두컴컴한 지하라면 모르겠는데, 그들이 있는 곳이 반지하라는 점입니다.


    수조 안의 물고기가 어쩌면 다시 바다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헛된 희망을 품듯, 딱 그만큼만 볼 수 있는 틈을 허용하는 공간이 바로 '반지하'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존에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사람들을 속이고 이용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합니다. 영화 속에서 "부자들은 착해, 그들 집에서 한 달에 우리 집으로 넘어오는 돈이 어마어마해(?)"라는 등의 대사로 이를 드러냅니다.


    그 어마어마하게 넘어온다는 돈은 사실 갑의 입장에서 어차피 지출하는 돈입니다. 고용주에게는 과외 선생, 가정부, 운전기사가 고유명사로서 누구인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반지하 일당(?)은 자신들이 부자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돈에 상응하는 노동력을 충실히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기생이 아니며, 단지 헤게모니를 쥔 사람들의 시선에서 그들은 기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생하는 이들끼리 끊임없이 그 자리를 두고 서로 대체할 뿐이니 그 삶의 모양새가 벌레와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헤게모니를 쥔 사람들의 시선에서 그들은 기생충입니다.


2. 헤게모니

    다소 뜬금없이 영화에서 북한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핵무기 버튼이라면서 북한 흉내 내는 장면을 '길게' 보여 줍니다. 이 영화가 단순히 개인이나 특정 사회에 머물지 않고 헤게모니라는 구도를 국제정치의 틀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문광(이정은 扮) 부부는 북한을, 38선 아래로 빠삭하다는 기택(송강호 扮) 집은 남한을, 영어 과외; 인디언 분장; 헤게모니를 쥔 동익(이선균 扮) 집은 미국이란 구도를 담고 있습니다. 선진국이라는 게 사실 환상입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이것이 환상임을 우린 확인했습니다. 극단적으로는 미국하고 친한 나라들끼리... 나눠 먹기입니다. 표면적으로 그들의 나눠 먹기는 합리성을 가장합니다. 그러나 그 작동 방식을 보면 결코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명분만 합리적이지 실행은,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팬티, 마약" 이야기에 소름 소름 하다가 정작 둘만의 일(이선균, 조여정)이 펼쳐질 때는 "마약 사줘"라고 합니다. 또 동익(이선균 )이 집에 귀신이 나타났다고 하니, 그 원인을 밝히기는커녕 "더 잘될 거야"라는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영화 <기생충>은 미국을 상징하는 이 집안사람들의 행동이 명분만 그럴듯한 것을 찾지, 사실상 그 작동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반복해 보여줍니다. 가령 운전기사와 가정부를 해고할 때 모두 그렇습니다.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낼 수 있다는 건 사실 혼자 무한 맵에서 자원 캐는 것과 같습니다.1 무한 맵에서 혼자 게임한다는 것은 재미도 없고, 게임으로서 성립하기 힘듭니다. 적어도 컴퓨터라도 상대를 해줘야 그나마 몇 시간 할 맛이 납니다. 그러니 적당히 주변국을 키워줍니다. 그런데 절대 어느 정도 이상 크게 두지 않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중국과 벌였던 무역전쟁-사실 금융전쟁-도 사실 이 측면입니다. 미국의 질서(;변동환율)로 들어오지 하지 않으면 끝내겠다는 것입니다.


3. 시계방향으로

    영화에서 연교(조여정 )의 대사인 "시계방향으로"를 생각해 봅시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농밀한 장면에서 바로 이 대사를 내뱉습니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잊기 힘든 대사입니다. 왜 이 영화는 이런 장면에 이런 대사를 배치해 놓은 것일까요?


    '시계방향'은 질서 부여를 의미합니다. 동서양 모두 고대 신화를 보면 시간이 없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 시간이 부여됩니다. 대개 이 부분을 무질서에서 질서 시대로의 이행이라고 합니다. 동양은 혼돈의 시대에서, 서양은 카오스의 시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네 현실은 시계방향과 같은 질서를 부여하는 자들과 그 질서에 따라야 하는 자들로 이뤄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에서는 이를 더 이상 계단으로 오를 수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과 더 이상 계단으로 내려갈 수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로 표현합니다.


    우리의 비극은 반지하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알아보기 힘들뿐더러, 안다 하더라도 소통하지 못하고, 소통을 시도하더라도 싸웁니다. 그래서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이 보면 그저 기생충들로 보일 뿐입니다.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오직 자신이 제시한 룰을 지키느냐입니다. 그래서 그 '선을 넘으면' 끝내는/끝나는 겁니다.


    이 영화의 결말은 그 룰에 편입된 인물들로 끝을 맺는다고 생각합니다. 눈으로 볼 수밖에 없는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고 꿈꾸지만 그래서 한번 나름의 파동으로 벽에 부딪치고 결국 잠잠해집니다. 기택은 더 깊은 지하로 들어갔고, 그의 아들 기우(최우식 )는 ‘돈을 벌어야겠다’며 다짐을 합니다. 즉 한 명은 반시계 방향으로, 한 명은 시계방향으로 탑승한 것입니다.


4. 그래서 제시카는 죽어야만 했습니다.

    기정(가명 제시카, 박소담 )이는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그 ‘구조’를 파악하는 인물입니다. 기우가 물난리 난 상황에서 부잣집 친구 민혁(박서준 )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할 때, “그 오빠한텐 이런 일이 안 일어나지!”라고 합니다. 나아가 기정은 자신의 냄새가 반지하 냄새라는 것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상황을 한걸음 물러나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캐릭터입니다.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구조를 깨트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시계방향? 반시계 방향?이라고 했을 때, 정작 이런 상황이 도래했을 때 ‘왜 시계야?’라고 반문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시계방향이란 질서에서 필연적으로 죽어야 했습니다.


    또한 기정은 기생충들과의 ‘연대’를 꿈꿉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그녀는 먹을 것을 가지고 그들과 대화하려 시도합니다. 사실 문광 부부와 기택 패밀리는 서로 충분히 대화하고 연합해 잘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비극적 일상으로 흘러갔습니다. 존재로서 기생충이 아니라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 그들의 자리로서 기생충들끼리는 서로 같은 편이라는 것을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상대를 내 자리를 빼앗는, 내 생존을 위협하는 자라고 상황이 그렇게 인식하게 만듭니다. 바로 이 계급(?)이란 위치에 있으면 갖게 될 수밖에 없는 정신적 제약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정은 그 제약 너머 'snowpiercer'2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 2019년 6월 클리앙에 올린 글을 다시 다듬어 올립니다. 이 공간에서 차차 클리앙에 올린 글을 다듬어 올리는 동시에 여러 감상문을 올릴 예정입니다.

** 여러분의 라이킷은 다음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됩니다. 라이킷을 먹고 자라는 호덕 올림.


1. 미국에서 코로나 사태로 2조 달러를 뿌렸습니다. 환율 1179원으로 보면 2358조 원에 해당합니다. 우리네 재난지원금을 기준으로 보면 전 국민에게 4천7백만 원씩 줄 수 있는 금액입니다(10조로 전 국민 20만 원 지급 시). 물론 미국 인구가 우리보다 대략 6배 많은 걸 고려하면, 783만 원씩 줄 수 있는 금액이라 볼 수 있습니다.


2. 2013년에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의 영어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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