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객에게 말을 건네다.
이 작품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필모에서 유일(?)하게 대놓고(!)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영화입니다. 그 이유로 감독이 주인공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 주 인 공 )이라고 이렇게 비워뒀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주인공 스스로 '주인공/주도자'를 의미하는 'protagonist'로 지칭할 뿐 어디에도 고유명사로서 제시하지 않습니다. <테넷>에서 주인공 이름은 주인공인 셈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감독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관객에게 직접 이야기를 건넨다고 생각했습니다.
*( 주 인 공 ) = ( ) = ( 관 객 )
*(영화: 내용) = (영화란 형식) = (진짜 세상: 스크린 너머)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관객님에게 1인칭으로 자리를 비워 (주인공)으로 제시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내용, 형식, 스크린 너머 세 층위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일단은 정말 있는 그대로 주인공에게 건네는 모든 대사를 관객에게 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이 영화의 장면 장면이 개그코드로 들리게 됩니다. 특히 비행기 충돌 모의 장면은 그 자체로 개그죠. 어쩌면 심각하게 과학자를 동원해 이 세계관을 설명하는 장면도 개그입니다. 이게 개그로서 작동한다는 것은 영화 안의 내용이 현실 밖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독은 이 영화의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해 몇몇 장면을 넣었습니다. 영화 초반 오페라 극장에서 총알이 뽑혀 뒤로 가는 장면에서 '뭐지? 응?' '이게 일반 액션 장면이 아니구나!'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놀라움을 갖게 하거나 의문을 갖게 만듭니다. 그리고 박사와의 만남에서 대강의 설명을 해주지만 주인공의 뇌가 복잡해질 딱 그 타이밍에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 장면까지가 본격적인 연주가 시작하기 전의 '조율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첫 장면이 오페라 극장에서 연주하는 장면이 아니라 조율하는 장면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유'라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영화의 모든 장면은 '필연적' 배치라는 전제 때문입니다. 영화 자체의 스토리, 구성 이런 건 뒤로하고 장면 당 '투자비'1를 생각했을 때 결코 허투루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놀란은 관객에게 이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해 '놀라움을 던지고/의문을 갖게 하고' 그다음 대답하는 형식을 취합니다. 오페라 극장에서 박힌 총알이 역행해 다시 총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닐(로버트 패티슨 扮)과 배 안에서 이야기하는 장면도 동일하게 작동합니다. 할아버지의 역설이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성공했다는 거 아냐?라는 주인공(존 데이비드 워싱턴 扮)의 물음에 대해서 닐이 쿨하게 긍정적으로 보면 그렇지, 그렇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평행이론에서 의식과 다중... 어쩌고 하다가 뇌가 복잡해질 때 "머리 아프지 자 둬"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놀란은 유명한 박사에게 자문을 구하며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과연 그는 이 모든 걸 이해했을까요? 그 여부에 대해서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그 설정을 이해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럴듯한 설명을 하다가 '아무튼지 간에 그래'를 계속 반복하는 이유입니다. 그게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놀란은 왜 이런 표현 방식을 취했을까요? 저는 이 지점에서 그가 정말 영화라는 형식을 사랑하고 그 형식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구나라고 느꼈습니다.
2. 할아버지의 역설
형식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서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할아버지의 역설>입니다. 영화에서는 미래 세대가 과거에 3차 대전을 일으켜 일단 모든 것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그래야 적어도 자신들이 살거나 혹은 아무튼지 간에 상관없거나 그런 절박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이에 대해 이게 말이 돼? 지금 우리가 이러고 있는 건 우리가 그들을 막았다는 거 아니야?"라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래서 닐이 "긍정적으로 보면 그래. 다만 부정적으로 보면 블라블라 머리 아프지 자 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안티 캐릭터인 사토르의 입을 통해 미래 세대가 어떤 상황인지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해수면이 높아지고, 강이 말랐으니깐 그걸 되돌리는 거야 우리 책임이니깐
<테넷>(TENET, 2020)
이 영화 서사의 핵심인 <할아버지의 역설>은 사실 스크린 밖 관객의 아이러니한 현실을 지적합니다. 사토르 캐릭터의 삶의 방식인 소유 하거나 파괴하거나의 방식이 진짜 현실의 삶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삶의 방식의 연장선의 끄트머리는 파멸일 뿐입니다. 즉 자기 파괴 형식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성의 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믿었던 그 인류가 정작 벌였던 일은 양차 대전이었습니다. 제국주의는 다른 나라의 피를 먹고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군복 대신 양복으로 총 대신 돈으로 억압 대신 계약으로 여전히 동일하게 작동합니다. 다만 후자는 생산량도 유한하고 인간의 삶도 유한한데도 불구하고, 돈이 욕망을 무한대로 현실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착시를 줍니다. 이 착시는 착시이기에 자기 파괴가 필연적입니다. 놀란의 전작 <인터스텔라>는 욕망의 무한 증식 끝에 유한한 지구가 파괴되어 우리네 삶의 토대가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3. 다시 형식으로, 의도된 불친절함
감독은 시간을 역행하고 순행하는 그 뒤틀림, 불친절함을 도대체 왜 보여준 것일까요? 영화 자체가 하나의 테넷 제스처와 같습니다. 그리고 이 제스처는; 이 형식은 현재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현재가 무엇인가는 지금 글을 1인칭 시점으로 읽고 있는 독자님의 그 상태가 현재입니다. 이쯤 읽었으면 앞서는 이미 과거가 됐고, 다시 지금 이 단어도 과거가 됐고, 아직 안 읽은... 읽었네요! 그럼 또 과거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읽고 있다는 그 인식을 갖고 있는 독자님이 현재입니다. 그 현재를 영화 자체가 느끼게 해 줍니다. 이런 시간의 뒤틀림으로 인한 뇌 정지 상태로 말미암은 '불편함'으로부터 말입니다. 마치 바늘로 손가락을 콕 찔렸을 때 온전한 현재를 느끼듯 말입니다.
어쩌면 놀란은 그 현재를 인식하는 주체를 느껴야 한다고 계속 찌르고 있는 거 같았습니다. 영화에서 중간중간 주인공의 대사인 "내가 결정권자였으면 좋겠어", "이 작전을 주도하는 건 접니다"를 통해 이를 드러 냅니다. 결정/결단(decision) 하는 게 바로 주인공/주도자(protagonist)인데 이게 다 이러한 맥락에서 힘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4. 스크린 너머
1. 우리가 모르는 그 세계관의 이론적인 '현재'
2. 불편함을 겪는 '현재'
3. <할아버지의 역설>이 말하는 우리 현실의 아이러니한 '현재'
이 현재들을 오케스트라 조율하듯 감독은 강약약중강약으로 영화란 형식 자체로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현재가 앞서 말했듯 1인칭의 관객님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님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님이 주체이고, 그게 현재입니다.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주체뿐이고, 이 작전을 주도하는 것도 당신뿐입니다라고 영화의 메시지는 간명합니다. 그래서 영화 맨 마지막에 당부의 말을 남깁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라 했잖아
당신은 날 위해 일해
내가 주도자야
<테넷>(Tenet, 2020)
*부록
테넷은 서양식 마방진에 해당합니다. 등장인물 사토르, 장소 오페라, 위작 그림 아레포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이에 대한 내용이 많습니다. 그래서 긴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저는 이런 사토르 마방진과 달리 'TENET'을 TEN+NET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TEN의 대칭이 NET으로 이것을 숫자로 생각해 보면, TEN에 10이 해당하고, NET은 01이 됩니다. 1과 0, 0과 1입니다. 인간의 이성의 첨단 산물이 바로 컴퓨터입니다. 디지털 영화도, 이 글도 모두 이진법으로서 존재합니다. 어쩌면 놀란은 1과 0, 소유냐 파괴냐, 있거나 없거나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우리의 삶이 지속 불가능하다를 말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래서 1과 0을 전복해야 한다는 의미로 10의 전복 01이 된 게 아닐까 합니다. 나아가 이진법 1001은 십진법으로 9입니다. 숫자 9는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완벽함을 의미합니다.
끝으로 이 영화 자체가 그런 문제의식을 계속해 관객을 향해 여러 방면으로 찌르고 있지만, 사실은 인간에 대한 감독의 지극한 긍정적 시선이 담겼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영화의 논리대로 캣이 바다로 뛰어내린 시점에 영화는 끝났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클리앙에 게시한 글을 2020년 12월 클리앙에 최초 게시 후 다시 다듬어 올립니다. 이 공간에서 클리앙에 올린 글을 차차 다듬어 올리는 동시에 앞으로 여러 감상문을 올릴 예정입니다.
** 여러분의 라이킷은 다음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됩니다. 라이킷을 먹고 자라는 호덕 올림.
1. 테넷 제작비는 2억 달러로, 환율 1179원을 기준으로 한화 약 2359억에 해당합니다. 테넷의 총 러닝타임은 150분 즉 총 9000초입니다. 따라서 초당 제작비는 약 2621만 원입니다. 기획부터 시나리오 구성, 인물과 장소 섭외, 촬영 스케줄, 촬영 장비 선택, 촬영, 편집 등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걸쳐 만들어낸 결과물(우리가 보는 영화)에 우연의 요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23년 10월 2일 기준 환율 1356원 입니다. 테넷 제작비가 2712억으로 위 각주를 달던 시기보다 353억 증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