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친구를 만나는 날은 늘 한 시간 일찍 나와서 편지를 썼다
낙엽들이 여름내 묻은 초록을 당연히 지우듯
나는 내 위의 사람을 늘 아무렇지 않게 지웠다
그렇게 언제나 쉽게 쉽게 지우고 칠해가며
다른 사람의 색을 받아들였지만
인간은 색이 아닌 세계라
내가 세계들의 색만 받아들이려 굴때마다
세계는 자기들의 무게를 내 위에 들이밀었고
그때마다 나는 늘 낙엽처럼 추락할 뿐이었다
내게 사랑은 그제야 급하게 펼치는 날개였지만
벌린 팔에는 늘 안긴 것이 없어, 한없이 가볍게 추락하는 순간들 뿐이었다.
그리하여 사랑이란 내가 약을 먹게 하는 다양한 불안들 중
가장 아낌없이 타오르던 불안.
이 타오르는 불안 속에 사랑은 늘 지루한 미온의 단어였고
언제나 화력이 약했다.
그래서 나는 늘 죽음에 대한 생각을 깊게 했다.
다들 사랑이 최고의 행복이라는데 내겐 이리도 미적지근한 불안일 뿐이라서
사람 인생 최고의 행복이 이리도 미적지근한 불안일 뿐이라면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사랑을 멀리 두는 게 차라리 편하겠구나
행복이라는 감정에 대해 환상을 품고 살 필요가 없으니..
언젠가 컴퓨터처럼 꺼져버릴 순간만 그냥 조용히 기다리면 되니까, 아무 불안 없이.
어차피 잘 생각해보면 주어진 길이가 다를 뿐 모두가 시한부를 살고 있으니
끝나는 순간을 잘 기다리는 게 덜 불안하고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다.
난 그냥 불안한 것들이 너무 싫었다.
그러나 너를 만난 뒤로 나는 멀리 떨어지고 싶은 것과 가까이 두고 싶은 것의 위치가 바뀌었다.
네 입에서 나오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네 불안 속에서 화력이 가장 강했고
늘 차갑게 활활 타오르던 내 불안들을 따스하게 녹여주었다.
나는 너무 많은 시간을 떠난 사람들을 생각하는 데에 써버렸고
이제 남은 모든 시간을 내게 와준 너를 생각하는데 쓰려고 한다.
여전히 가끔 불안에 약을 먹지만
네 사랑한다는 말은 내 안에서 가장 화력이 세고
그 덕에 마음의 겨울이 없어
나는 더 이상 이 겨울의 손발이 차지 않다
내가 만약 추락하게 된다면 그 장소는 아마 네 옆이겠지.
너는 내가 늘 원하던 어떤 지점이니까.
천국이 하늘 위에만 있다는 건 지독한 고정관념이다.
네가 가장 낮은 곳에 있다면 천국은 가장 낮은 곳에 있다.
여자 친구를 만나는 날은 늘 한 시간 일찍 나와 편지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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