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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가람 Feb 19. 2016

둑을 막은 소년

삶의 파편들







어렸을 적 읽은 이야기 중에 둑을 막은 소년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해수면보다 지면이 낮은 곳이 많아 여기저기 둑이 많은 네덜란드.

그런 네덜란드의 한 소년이 추운 겨울 어느 날 둑이 조금씩 새는걸 발견하고 

자신의 두 주먹으로  밤새 빈틈을 막아 얼어붙은 몸으로 나라를 지켜냈다는 이야기.


몇 해 전부터 내가 갈수록 둑을 막는 소년 같다고 말하고 다녔다.

현실의 지표면은 낮아지는데 삶이 선사하는 고통의 해수면은 점점 높아져서

자존감과 각종 희망으로 쌓아 올려진 둑에 구멍이 생기고

그곳을 억지로 내 두 주먹으로 틀어막고 살아가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 내 현실은  이래.라고 인정해 버리며 주먹을 빼 버리는 순간

내 현실이 삶의 고통의 물살에 익사해 버릴 것 같아서.

그러면 내가 죽어버린 것처럼 살아갈 것 같아서.

꿈도 없고 희망도 없이 초점 없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게 나는 너무 무섭다.

그래서 열심히 버티고 살아가는데

 요즘은 이렇게 버티고 사는 것도 주먹이 너무 시리다.


항암치료에 고통받는 아빠의 모습도

환희 미소 짓는 순간조차 나를 슬프게 만드는 엄마의 빠져버린 치아의 빈틈도

불확실한 내 미래와 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들도

하나같이 내 주먹을 시리게 한다.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누가 발견해주기도 전에 얼어 죽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아빠는 오늘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머리가 너무 많이 빠져서 

머리를 바리깡으로 빡빡 밀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내 눈가에 둑도 빡빡 밀려버리는 느낌

그런 느낌을 받으면서도 아빠에게는

무심하게 "머리 미니까 깡패 같네."라고 말했다.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최고의 위로라고 생각해서.

우리는 늘 그렇게 위로하고  살아왔으니까.



둑을 막은 소년 이야기는 사실 실화가 아니라

미국인이 지어낸 동화라고 한다.

가끔은 지금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

누군가 써나가는 동화였으면 싶기도 하다

결말이 반드시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로 끝날수 있게.


뭐 그런 게 아니면 남은 이야기는 내가 최대한 잘 써 나가 보고 싶다.

나를 슬프게 하는 엄마의 빈틈을 채워주고

아빠의 머리카락과 건강을 다시 찾아오고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내가 된 뒤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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