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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경 Feb 19. 2023

우리 집 식탁으로부터

잘 먹고 잘 자기


일요일이었고, 온 식구가 할머니의 집에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벌써 열네 살도 넘은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학교에서 내준 숙제의 진도가 잘 안나가자 자기는 하는 일마다 모두 엉망이 돼버린다며 투덜거렸다.

"어쩌면 그런 실패에서 뭔가 배울 수도 있겠지." 아버지가 말했다. 하지만 브리다는 그렇지 않다며, 애초에 잘못된 방법으로 일을 시작해버렸으니 이제는 방법이 없다고 우겼다. 아버지는 그녀의 손을 잡고, 주로 할머니가 텔레비전을 보는 거실로 데리고 갔다. 거기에는 커다란 골동품 괘종시계가 걸려있었다. 그 시계는 부속품이 없어 몇 년 전부터 멈춰 있었다. "얘야, 이 세상이 완전히 잘못된 건 없단다." 아버지는 시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멈춰서 있는 시계조차 하루에 두 번은 시간이 맞잖니."

브리다 (파울로 코엘료)



설날 이후로 한 달 여만에 찾은 부모님 집이다. 우리 집은 마산에 있다. 마산을 마산이라고 부르는 데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내가 스무 살이 되어 서울로 대학으로 오고 나서 마산이 창원으로 통합되어 창원으로 부르기로 했다는데, 내 입에는 마산이라고 붙어있으니까 마산이라고 하는 건데, 덧붙여 설명을 해야하는 게 좀 지겹다. 그렇다고 창원이라고 하면, 또 창원 어디요? 라는 질문에 되돌이표 같은 대답을 해줘야 한다. 피곤하다.


할머니 집과 일가 친척은 부산에 계셔서 가족 행사가 있을 때면 휴가를 가는 마음으로 해운대 광안리를 오며 가며 맛있는 것도 먹고 바다 구경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릴 적에는 지금의 휘황찬란한 해운대가 아니라 고즈넉했던 요트 경기장과 동백섬과 아카시아 냄새가 기억에 묻어 있어 따스하기도 하다.


아무튼 고향이 남쪽이라 좋다.



근래에 신변에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건강까지 나빠졌다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그러려니 했다. 고향에 내려온 김에 아빠를 따라 병원에서 재검사를 했고, 다행히도 혈액 검사 결과는 정상으로 나왔다.


이사와 이직을 일주일 사이에 매듭짓고,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 집에 왔다. 왠지 집에 오면 그렇게 잠을 잘 잘 수 밖에 없다.


엄마가 식탁에 한 가득 차려준 고기 반찬을 먹는다. 아빠는 갑작스런 나의 식성에 놀란다. 나도 놀란다.

배를 가득히 채우고, 커다란 소파 위에 누워 있으면 속이 조금은 불편하지만, 두통은 사라졌고 잠이 슬슬 온다.


잘 먹고 잘 자고, 엄마랑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아빠에게 징징대고. 살아가는 힘은 우리집 식탁으로부터 오는 듯.

집밥을 먹고 피둥피둥 살이 찐 얼굴로 곧 있으면 서울로 돌아가야 하지만, 왠지 나에게서 달콤하게 졸인 꿀 냄새 같은 것이 난다.


나도 가족이 생기면 이런 마음을 들게 해줄 수 있을까. 들게 해줘야지.


KTX 3시간을 타고 내려왔다 올라가는 길이 생각만큼 피곤한 여정이지만, 우주의 평화는 이곳에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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