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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경 Feb 26. 2023

2월의 도쿄, 청순함

나카메구로에서


아침 햇살 속에 피어오르는 나무들의 멋진 향기


도쿄에 온 지 다섯 번 째 날이다. 여행과 출장으로 자주 오는 도쿄이지만, 일주일을 머무르는 건 처음이다. 여행의 절반을 넘겨 설렘보다 아쉬움이 커지고 있다.


내게 여행은 새로운 세계의 내가 되는 일이다. 도무지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겠고, 앞으로도 모를 것 같아 새로운 세계의 내가 되는 건 신비하면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2월의 도쿄는 제법 봄이 찾아와서 햇살이 잘 드는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으면 따스하여 눈이 부실 정도다. 그렇지만 여느 초봄이 그렇듯 봄은 생각만큼 멀어서 갑작스런 꽃샘추위를 몇 번을 겪어내야 진정 봄이 찾아온다. 지난 이틀은 진눈깨비 같은 것이 내리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하늘은 회색이었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길거리 젤라또를 입에 물고 추워져서 후회했다. 그렇지만 낑깡카라멜 맛 젤라또는 포기할 수 없었다.


도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나카메구로. 나카메구로는 메구로 강 벚꽃길을 따라 눈을 휘둥그레 하게 하는 예쁜 가게들이 즐비하여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젊은 부부들. 크고 작은 세련된 강아지들. 주인을 닮아 강아지들도 패션센스가 좋다. 빨강과 파랑이 섞인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은 작은 비글과 산책하는 센스 좋은 남자와 어여쁘게도 미용을 한 스탠다드 푸들과 연분홍색 맨투맨과 나이키 조던으로 멋을 낸 여자. 그리고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빵 굽는 냄새. 커피 원두 볶는 냄새는 극단적인 행복을 느끼게 한다.


오늘 아침은 갑작스레 새벽 여섯시 반에 눈이 떠져 머무르고 있는 에비스 숙소에서 멀지 않은 나카메구로 강으로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파란 하늘의 일요일 새벽 7시, 나카메구로 강에서 조깅을 하는 아저씨들을 지나쳐 달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만약 그 무렵 내가 긴 포니테일을 갖고 있었다 해도] 라는 챕터를 떠올렸다. 보스턴 찰스 강변을 달리던 하루키는 날씬하게 마른 작은 몸집의 하버드 생 금발의 포니테일로 묶은 신제품의 아이팟을 드는 여자애들에게 추월당하기 일쑤지만, 자기만의 페이스로 달린다고 했다. 내 삶의 속도는 빠른가? 느린가? 적당한가? 자기 페이스에 맞는 속도를 잘 설정하는 건 러너에게 상당히 치명적인 일이다. 잘 먹고 잘 자서 그런지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추었다 달렸다를 반복해도 평소와 그리 차이 나지 않는 페이스로 조깅 했다. 몸과 다리가 더 가벼워진 느낌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몸이 무거운 날 달리기를 해 본 사람은 안다. 그 패배감을…


이제 내 삶의 속도는 빨라질 것 같다. 그동안 나를 무겁게 했던 일들로 나의 겨울은 충분히 느렸고, 몸도 많이 무거웠다. 봄이 오고 앞으로 일주일 뒤면, 새로운 직장이자 전 직장으로 출근을 앞두고 있다. 다시 내 페이스로 돌아가야지. PB(Personal Best)를 기대하며.


청순하다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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