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회색이라도
지금도 나쁘지 않지만 앞으로 더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순간 우린 살아가는 동력을 얻는다. 어쩌면 계절도, 감정도, 인연이란 것도 죄다 그러할 것이다.
이기주 [언어의 온도]
3월이다. 이 맘때는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지만, 낮이면 따듯한 온도를 품은 바람이 불어와 드디어 두꺼운 외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른 봄날 오전에는 우아한 상쾌함이 있다. 다소 차분해진 날씨만큼이나 어떤 생각 마저도 밝은 빛을 내는 어른이 되고 만다.
도쿄 여행을 떠나기 전, 무려 세 달 만에 만난 S 언니는 내게 달력을 선물하며 ‘핑크빛’ 2023년을 응원해주었다. 그러니깐 이게 얼마나 오랜만이며 미안한 순간이었냐면, 나는 연말에도 생일에도 나에게 먼저 안부를 묻는 이들에게 만남을 거부하여 가장 가까운 사이인 S 언니 조차 언제를 마지막으로 만났는 지 기억 조차 하지 못 할 정도 였던 거다. 연초에 생일인 나에게 주려고 했던 달력과 생일 선물을 2월 말이나 되어 주게 되었으니 참으로 미안했다.
도쿄 여행 중에 신주쿠에서 로망스카를 타고 1시간 30분을 가면 후지산이 보이는 온천을 즐길 수 있는 하코네를 1박 2일로 다녀오는 일정을 넣었다. 도쿄 시내에서는 도쿄에 사는 한국인 친구와 여러 모로 시간을 보냈다면, 하코네에서는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하코네로 가는 길은 그 전 날과는 다르게 하늘이 온통 회색 빛이고 진눈깨비 같은 것이 내렸다. 왠지 쓸쓸했지만 그 외로움을 즐겼던 것 같다. 로망스카는 원목으로 된 기차인데, 이름에 걸맞게도 어두운 회색 하늘에도 마음 속에 로망스를 품게 했다. 하코네 여행 중에 가장 좋았던 순간도 로망스 기차를 타는 여정이었다. 비록 앞 자리에 탄 아저씨의 맥주 트름 냄새가 함께 했지만 그 또한 추억이라 생각했다.
외로운데 외로운 게 좋아지는 날이었다. 외로워서 텅 빈 생각으로 불안한 마음을 비워낼 수 있었고 평안한 생각들로 채울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졌다. 불안한 내 마음이 들킬까봐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더는 미루지 않고 만나고 싶어져 서둘러 연락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부지런히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 이러다 또 사람 만나는 데 지쳐 잠시 숨을 것도 같지만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예전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웃고 떠드는 게 정말 행복하다. 기다려 준 친구들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잘해야 겠다는 마음.
마음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가 나의 삶 그 자체를 결정한다. 밝고 긍정적인 마음.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이 평안하고 안전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는 마음으로 세상에 좀 더 상냥해야지. 벌써 3월이고, 앞으로 세상 곳곳에 꽃이 피어나겠지. 여러가지로 고단한 세상이지만 노란 개나리도 자주빛 튤립도 새하얀 목련, 핑크빛 벚꽃은 올해도 여전히 피어날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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