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너무 힘들어

내겐 너무 먼 친정엄마



친정 엄마는 전업주부이시다. 어설픈 워킹맘보다 부동산 투자를 통해 더 많은 부를 축적하셨다. 친정아버지는 전직 은행원 출신으로 IMF 때 명예퇴직을 하시고, 그 후 오랫동안 임시직을 맡아오셨다. 착하고 누구에게나 칭찬받고 싶었던 나는 이면에 괴물을 키우고 있었다. 꾸준한 수입을 만들어오지 못했던 아버지. 홀시어머니를 근 50년간 모시고 살면서 오직 오빠와 나 잘 되기만을 바라셨던 어머니. 당신들은 당신들의 인생을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셨겠지만, 어린 내 안에 유교적 사고를 발췌적으로 적용하여 남성의 삶도, 여성의 삶도 왜곡시키는 이 사회와 가족의 문화를 증오하는 괴물이 자라고 있었다.


욕심이 많은 아버지를 닮은 나는 싱글일 때 어느 누구보다 시집 잘 갔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고, 내로라하는 집안의 자제와의 열애가 집안의 차이로 허망하게 끝나버리고 암흑기를 맞이했다. 조건은커녕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결혼이라는 과제를 해치우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남의 집 결혼식에라도 다녀올라치면 언성을 높이고 인상을 쓰며 나를 짐짝 취급하던 아버지에게 한이 맺혔고, 없는 살림에 애면글면 속이 끌탕이 되어 하소연하는 엄마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세상 그 누구보다 착한 딸이 되고 싶었던 나는

결혼도 했고, 임신과 출산도 했고, 박사도 취득하였고, 교수라는 멋진 직업도 갖게 되었다.


그만큼 내 안에 싹 틔웠던 온갖 종류의 '모순'과 '증오심'은 나의 마음의 병을 깊게 만들었다.


비가 온다.

실습지도를 다녀왔다.

휑뎅그러니 정리를 하다 만 연구실이 나를 반겨준다.

속이 아프다. 마음이 멍든 것 같다.

물렁한 내 탓일까, 아니면 이 시대가 우리에게 이렇게 큰 아픔을 주는 것일까.

두 볼을 따라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내려놓는 것이 이리도 힘든 것인 줄 몰랐다.


어릴 적 나는 늘 우상향 하는 인생을 꿈꿔왔다.

어떤 부정적인 삶의 경험도 내 의지를 꺾지 못할 것으로 자신했다.

그것은 성장일 것이라고 원대한 꿈을 잊지 말자고 되뇌며 살았다.


미니멀리즘과 소확행, 힐링이라는 사회적 트렌드를 지나

단군이래 돈을 벌기 가장 쉬운 시대라고들 한다.

성장하라고 확장시키라고, 끊임없이 귓가에 속삭이는 매체 콘텐츠들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20여 년 간 공을 들여 성취한 것들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고, 어느 순간에도 살 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충실하겠다고 다짐해 보건만,

이 사회가 변화하는 속도는 너무 빠르고

빛의 속도로 퇴물이 되는 느낌이다.


연구, 강의, 행정업무 저글링을 하면서

초등학생인 아이와 왕복 3~4시간 출퇴근을 하는 남편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먹이고,

아이 가정학습도 시키면서,

재테크도 잘해야 할 것만 같다.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다.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말이다.


친정엄마는 내가 걸레질을 하고, 손빨래를 하고, 김치를 담가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워킹맘 밑에서 자란 남편은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시간이나 돈을 아끼는 방식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지금은 친정 부모님이 임시로 우리 집에 와계신다.

내 집 같지 않기로는 우리 부부나 친정부모님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아흔다섯이 되시는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시고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우리 집 근처 작은 평수로라도 아파트 전세사시면 좋지 않겠냐고 말씀드렸더니,

평소 침착하신 어머니가 언성을 높이신다.

아파트 여러 채 있으면 뭐 하냐고, 팔려고 내놔도 팔리지도 않고,

아버지도 혼자 계시면 자기 관리가 잘 되지 않으시고,

시골집은 꼭 있어야 한다면서,

당신네들이 일흔이 넘으니

이제 네 마음대로 휘저어도 될 것 같냐고 하신다.

너네가 가끔씩 주는 돈으로 살아지지도 않는다시며, 십 원짜리 한 장도 없는 데 어떻게 전세를 구하나시는데

결국 돈이 문제가 되는구나 싶어 서울에 우리가 빚내어 산 아파트 팔아 전세금 내주고, 남는 돈으로 부모님 사실 집 구해보겠다 해도 막무가내시다.


교수하는 선배 아이들 케어해 주는 다른 여느 어머니들처럼

좀 가까이에서 지원해 주면 안 되냐고 한 번 떼를 써봤다.

어머니는 오히려 이제는 부모 생각도 좀 하고, 기대려고 하지 말라 하신다.


지금까지 한 번도 기댄 적 없는 것 같은데,

나는 나에 대한 믿음이 낮아져서,

그게 무서워서

남은 생을 같이 있어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을 드린 건데

어머니에게는 그마저도 버겁게 느껴지셨나 보다.


어머니도 지금 많이 힘드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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