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눈치 없는 기자가 회식에 참석하면

이렇게 눈치 없는 게 가능해?

by 목짧은 두루미

옛날에 신입 기자 시절.

라때는 마감 때 편집장도 기자도 디자이너도 어시도 거의 매일 같이 고기를 구워 먹거나 회를 먹거나, 요리를 먹거나 했다.

회식 참석은 필수였다.

근데 난 직장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이고

그냥 빨리 집에 가고만 싶어서, 혹은 영화를 보러 가고 싶어서 초스피드로 내 일을 해버리고 거의 정시에 퇴근해 버리곤 했다.

단신을 정리하거나, 사진을 분류하는 일이 내 몫이라 마음 먹으면 정말 빨리 일을 마칠 수 있었고, 너무 빨리 일을 끝내버리니 날 싫어하는 선배 조차 아무말 하지 않았다.

쟨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하면서.

그날도 쏜살같이 내 몫의 일을 마치고 집에 오려는데, 선배들이 한 마디씩 했다.

- 또 가?

- 오늘은 회식에 참석하지?

- 고기 한 점만 먹고 가~

라때는 신입이 눈치를 볼 상황이긴 했는데

난 그놈의 눈치가 정말이지 1도 없었다.

그래서 뇌맑게 인사를 했다.

"아니요. 저 피곤해서 집에 가려구요. 안녕히 계세요."

인사하고 나서는데 보다 못한 주간이 나를 불러 세웠다.

"최기자도 오늘은 같이 회식하고 가지?"

"아니요. 전 그냥 집에... ..."

"회먹자. 회."

멀뚱멀뚱 바라보자 주간이 못을 박았다.

"오늘은 꼭 참석 해야해."

아, 꼭 참석해야 하는 날이 따로 있나?

"네."

당시 눈치라곤 빗자루로 쓸어도 먼지 하나 만큼도 안 나올 만큼 없던 나는

자리를 잡을 때 하필이면 주간과 실장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내가 앉고 나니, 내 옆에 선배들이 우르르 앉았다.

별로 생각이 없었다. 그냥 빈 자리라 앉았다.

근데 한참 먹다 보니 뭔가 좀 이상했다.

나혼자 먹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알았냐면,

채 같은 것 무더기 위에 올려진 회가, 딱 내 앞 부분만 동그랗게 비어 있고 (내가 먹어서)

남들 앞자리에 있는 건 거의 그대로 길래.

보통 사람이라면 남이 먹지 않을 때쯤 대충 알았을텐데

난 빨리 먹고 빨리 가야지 하는 일념 + 워낙 눈치 없음으로 똘똘 뭉쳐서

정말, 몰랐다.

고개를 들고 계속 먹다보니 정말로, 먹는 사람이 나 혼자였다.

"선배, 왜 안 먹어요?"

선배는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최기자가 하도 많이 먹어서 내가 못 먹겠어."

듣다가 그건 틀린 말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저렇게 회가 많은데 왜 안먹어? 난 내 앞에 있는 것만 먹었는데? 뭔가 이해도 안되고 말 도 안 되는 소리네.

라고 생각하고 신경 껐다.

눈치 주는 거란 생각은 1도 못했다.

그리고 먹을만큼 먹고,

아까부터 내 바로 옆자리에서 서로 싸우고 있던 주간과 실장에게 인사를 하고 일어나

집에 왔다.

인사를 잘 안 받는 것 같아 인사를 두 번이나 하고 나왔다.

그래. 아까부터 말다툼이 좀 심하긴 했는데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지금은 알 것 같다.

그때 왜 선배들이 아무도 안 먹고 있었는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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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그때 실장에게 기자들 거의 빼앗기고

전반적으로 싸움에 밀렸던 주간이

뇌맑게 자기 말도 잘듣는 내게

다음날 따로 점심을 사주었는데

내가 고른 메뉴는 회정식이었다.

나 왜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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