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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REAL Life Oct 15. 2020

계획은 없어야 한다는 철학

Feat.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흐를 때가 있잖아요




#1.

뒤돌아보면 계획대로 삶이 풀렸던 적은

손 꼽을만 했다.


생각지도 못한 일 들은 삶의 주요 고비마다 터졌고,

코로나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들의 연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 여정을 걷고 있노라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들을 이따금씩 만나곤 한다.

이리 저리 흔들어 보고 달래도 보지만 열리길

거부하고 꿈쩍도 않는 문.


그렇게 두 손을 들어버린 난 희망 고문에 지쳐

그 문 앞을 서성인 채 오늘을 살 뿐이다.



#2.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황금종려나무상 수상에 

쾌거를 이룬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디테일하게 솎아져 있는 연계와 배우들의 명대사는

지극히 한국적인 스멜과 함께 사회적 메타포를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었다.


특히, 자신의 계획대로 모든 이를 조종하는

언변술사 같은 부자지간의 대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무릎을 탁 !!

치게 하는데


특히, 체육관에서 아버지의 계획을 채근하던

아들과의 대화는 지금껏 삶에서 풀지 못하고

덩그러니 내버려둔 고민들을


다시금 곱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버지, 아까 계획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말하셨던 계획이 뭐에요”

“아들아,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니?

  무계획이야 무계획 NO플랜.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되는게 인생이거든.


그러니까 계획은 없어야돼.”


듣는 순간, 처음에는 껄껄 웃었지만,

머리에 큰 바위가 떨어진 듯 진한 여운이 감돌았다.


그동안 나는 왜 내 노력에 비해 성취되는 것이

없을까 항상 비관하고 자책했던 것 같다.


“왜 계획대로 안되지. 왜 계획이 지켜지지 않지.

 왜 나는 내가 세운 계획조차 이루지 못하지”

라는 무게로 날

 

지.긋.이.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무게를 덜기 위해 “플랜 of 플랜”을 세우며

효율적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 채찍질 했던 나는


더 가열차게 내 계획에 목을 매 가며

그 실패의 무력감을 동시에 맛보고 있었다.



#3.

“그림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말하는

드로잉프렌즈 장진천 대표는


그림은 자신의 인생 계획에 전혀 있지 않던

선택지라고 이야기했다.


뒤돌아보니 사는게 그저

“잔 펀치에 K.O되는 느낌”이라던 그는

17년 동안 이어가던 직장생활에 돌연

사표를 내던졌다.


그때는 몰랐지만 돌아보면 공황장애 같았다는 그는

이를 계기로 자신의 삶을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인생 그리고 살아갈 날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동안 자기가 아닌 체 하며 삶을 살았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됬다는 장진천 대표는


“아마도 내 인생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런 마음의 병이 왔던게 아니었을까”

생각했을 즈음, 그림이라는 것이

그에게 다가왔다고 했다.


마치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운명처럼.


물론, 그 역시 걱정이 없던 것이 아니다.

주변에 만류도 없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취미로 시작한 그림은

800명이 넘는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었고

함께 꿈을 키워가는  <드로잉프렌즈> 를

이루게 된다.


바램은 있어도 목표로 삼지 않는다는 자유함으로,

프로 작가 목표가 아닌 드로잉을 원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치유의 커뮤니티를 이루며 말이다.



#4.

우리는 삶이라는 것 앞에서 너무나

깊은 조바심에 빠져 사는게 아닌가 싶다.


혹은 어떻게든지 뭐라도 이뤄내야 말겠다는

진한 사명감으로 삶을 녹여내고 있거나.


“잘 못 탄 열차가 목적지를 더 빨리 데려준다는”

속담은 삶이 품은 우연의 기술을 귀뜸해 준다.


그러나 우리는 그 TIP에도 불구하고

돌발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면, 신경을 곤두세우며

어떻게든 뉴 솔류션을 찾으려

계획표부터 꺼내든다.


어떻게든 내 삶이 멘붕에 허우적 되지 않게,

삶의 궤도가 이탈되지 않게

또다른 계획을 집착적으로 이어가며 말이다. 



#5.

매번 방학 때마다

<슬기로운생활> 첫 페이지에 있던 계획표를

욕심으로 가득 채우고는 일주일도 채 안돼서

나가 떨어지거나


또 다른 계획표를 다시 고안해 내던

어릴 쩍 슬기롭지 않던 계획표와의 씨름이

아른 거린다.


어찌보면 삶이

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행여, 삶의 태풍이 나를 휩쓸더라도

자신이 세운 계획이 무너지더라도


계획이라 불리는 삶의 집착에 현혹되지 말자.


그 집착으로 당신 주변에 숨어 있는

수많은 시도의 기회를 놓쳐버리지 말자.


기생충의 송강호도

아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무계획도 계획이라고.


그것도 ‘절대 실패하지 않는’

절.대.반.지. 같은 계획이라고.



*데일리경제 칼럼 [윤한득의 안테나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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