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멘탈리즘
자존심의 승부, 대패
어렸을때 저는 자존감이 높은 편이었어요
초등학교때는 반장, 회장을 하면서
선생님도 인정해주시는 리더십있는 아이로 통했죠
지금 키는 184인데요
중학교 졸업할때 키가 164였어요
왜소하고 안경도 끼고
뭔가 자존감이 낮은 아이였죠
그래서 그런지 저보다 덩치도 크고
힘세게 보이는 녀석들 때문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겠구나 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어요
물론, 굉장히 사소한 시비로 시작된 싸움이었죠
왜 싸웠는지 생각도 안 날 정도로
사실 남자분들은 아시겠지만
중1 첫싸움은 남자의 자존심이 달려 있는 승부인데
그 첫싸움에서 완전히 대패를 하게 된거죠
얼굴 형체를 못알아볼 정도로 무너지면서
그리고 대패 소문과 함께 저의 입지는
완전히 하락하게 되었고
이미 아이들 사이에서 쩌리가 돼 있었어요
싸움이야 초등학교 때에는
나에게 덤빈 친구가 없었으니까
싸움실력은 몰랐다 치지만
공부도 내가 이정도로 못했나 라는
좌절감이 밀려왔어요
하지만 저랑 정말 친했던 친구는
덩치도 더 좋아지고 애들도 건들지도 않고
게다가 첫시험에서 7등을 하는 걸 보곤
멘탈이 나가는걸 느꼈죠
그랬던 것 같아요
생각하고 계획하는 삶이 아니라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모든 걸 매달렸던 삶
성적이 잘 나오면 안도하지만
잘 안나오면 어떻게든 타개하려고 발버둥 치는
중고등학교 생활을 돌아보면
어느 누구도 저한테 꿈이 뭐냐고
질문했던 사람도 없었죠
자발적인 아웃사이더
저는 이과였고
아버지께서도 전기 관련된 일을 하셔서
별 생각없이 전기과를 선택하게 되었어요
다 떨어지고 지방의 국립대를 붙어서
그쪽으로 가게 된 거구요
사실, 지금 생각하면 철없는 푸념이었지만
시골길을 헤쳐서 다니는 것도 싫고
엠티를 가서 끼리끼리 노는 것도 싫었어요
그래서 수업만 끝나면
"나는 집이나 갈래" 하면서 빠지는
자발적인 아웃사이더로 살아가게 된거죠
그게 군대까지 이어졌고
그렇게 학교와의 연은 아예 끊겼어요
아시겠지만 저희 역시
갈팡질팡의 연속이었어요
야 우리 이 돈으로 중고차도 살 수 있어
그런데 여행으로 다 써 버리는게 맞을까?
여행 가기 전날 까지도 그랬던 것 같아요
게다가 영어도 못하는 우리가 가서
말이나 통하기나 할까 라는 두려움도 있었죠
하지만 갔다오고 나니 이제야 알겠더라구요
우리가 하는 걱정이란거 별게 아니구나
함께 어울리다보니
대외활동을 할 기회가 생기더라구요
그런데 대외활동은 당시
대부분 서울에서 진행되어서
천안에서 2시간 걸려서 올라와서 활동하곤
다시 2시간에 걸쳐 내려와야 했어요
그런데 그 활동을 하다보니
뭔가 모를 성취감이 들게 하더라구요
그리고 그 성취감이 저에게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했어요
그 욕구는 어떻하면 해소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하다보니 이 녀석이 나오더라구요
세.계.여.행
저 어학연수하러 가요
25살이 되던 해
"아 나도 세계여행이라는 걸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버렸어요
돈이 없는데 어떻하지 라는 생각에
그래 무전 여행 책을 독파해 보자
거기에 분명히 방법이 있을꺼야 라는
대책없는 긍정이 튀어나왔죠
그런데 정말 책에는
어느 정도 경비만 갖춰져도
여행을 할 수 있는 팁들이 가득하더라구요
하나둘씩 계획을 세워 나갔어요
그리곤 500만원만 모으면
무전 여행이라는 걸 나도 해볼 수 있겠구나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거죠
한달에 용돈으로 60만원 정도를 받았으니까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
그 정도만 주시면 어학연수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 드렸어요
그렇게 뭘 얻겠다 라는 거창한 여행이 아니라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애라는 심정으로
무작정 해보자 라는 마음이 컷던 것 같아요
떠나기 2주전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님께서 걸어서 세계를 여행한 사람의 이야기를
설교로 해주시는 거에요
캐나다 사람이었던 "장델리모"라는 사람
44살에 사업에 실패하고 우울증까지 심하게 겪다가
"떠나자" 라는 마음에 걸어서 세계를 여행한 이야기
자그마치 11년 6개월에 걸쳐
목사님은 "도전하라 세계를 품으라" 라고 메세지를 전하셨고
교회친구들은 다 절 쳐다보면서
"너를 위한 메세지야" 라는 눈빛을 보냈죠
저는 4월 6일 이스탄불로 가는
터키행 비행기티켓을 편도로 끊어 놓은 상태였어요
그런데 산티아고가 있는 곳은
유럽의 서쪽 끝이더라구요
결국 이곳을 가게 되면
유럽의 동쪽끝에서 서쪽 끝을 가는 루트가 되는데
아무리 퍼즐을 맞춰봐도 최단거리가 5천킬로 인거에요
서울에서 북한을 거쳐
베이징까지 가는 거리가 2천길로인데
이걸 두번해야하는 거리인거죠
여행을 가르쳐준 은인
서울예고에 부임하셨던
이중길 교장선생님의 기사였어요
세계사를 전공하셨던 분이 셨는데
유럽을 걸어보면서 공부하는게
한평생 꿈이었다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임기가 마친 70살에
무작정 베낭을 메고 5년에 걸쳐
유럽을 걸어서 횡단하셨더라구요
그래서 여행을 가기 전에 이분을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생생한데요
현충원 주변에서 선생님을 만나 뵈었어요
제가 왜 여행을 가려는지
그리고 도보로 여행을 하려는 이유를 말씀 드리니
A4용지로 200장이되는 자료집을
보여주시더라구요
거기에는 형광펜으로 칠한 거리가 보였고
그 길 주변으로 선생님께서 느끼셨던 감정과 느낌
행동들과 생각들 그리고 숙박지 같은
세세한 스토리가 적혀 있었어요
그리고 그 자료집을 주시면서
꼭 다녀오라고 말씀해 주시는 거에요
너무 감사하고 감격을 해서 들고 왔는데
집에 와서 정신을 차려보니까
일이 너무 커진거에요
걷는걸 포기하면 안되는
완전 빼박인 상황이 된 거죠
여행의 시작, 노숙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는데
발이 떼지지가 않는 거에요
어디서부터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설상가상으로 비도 오기 시작했고
그래서 공항에서 노숙을 하면서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을 했어요
정말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좋은 분들의 친절과 응원으로
너무나도 좋은 여행을 할 수 있었어요
결론적으로는 비행기값을 제하니
저에게는 4백만원 정도가 있었는데요
70일 정도를 걸어서 여행을 했는데
제가 쓴 돈이 100만원이 채 안되는거에요
오히려 사람들의 도움과 초대로
돈을 쓸 겨를이 없었어요
정말 기적이죠
아프리카라는 곳을 처음 가봤어요
그리고 아무것도 없다는 사하라 사막도 갔구요
그곳에서 네팔 자원봉사를하는 코이카 단원을 만났는데요
저의 이야기를 듣고는 절 초대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네팔로가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경험하고
기차를 타고 5주 동안 인도에 있다가 이후에는 한국으로 돌아왔죠
사실 모로코, 네팔, 인도는 계획에도 없던 곳이었어요
사람의 인연이 절 그곳으로 인도한거죠
동유럽은 한국인을 처음 봤던 터라
엄청난 환대문화로
저희를 따듯하게 맞아주었는데요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유럽으로 들어오니
저희는 그저 돈없는 여행객으로 전락하게 된거죠
프랑스 뚤레쥬에 도착했을때는
물가가 더 비쌌을 뿐만 아니라 모두 콘크리트 바닥인 도시였던 터라
텐트를 칠만한 곳이 없었어요
밤 11시 부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이대로 뒀다가는 다 떠내려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짐을 텐트 안에다 놓고는 쪽잠을 자면서 버텼죠
다음날 말그대로 정말 거지꼴이 되었는데
일요일이었던 터라 저희는 한인교회를 찾기 시작했어요
물론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사실 저희를 도와줄 분들을 찾아야겠다는
생존의 절박함이 있었던거죠
그래서 걸어서 한시간 거리의 한인교회를 찾았는데
예배를 드리시고 나서 저희를 보시고는
흔쾌히 자신의 집에 와서 묵으라고 말씀해주신 분이 계셨어요
삶으로 살아내는 사람
사실 그분도 불규칙한 스케쥴로 일을 하시는터라
바쁘신게 느껴 졌어요
음식도 급하게 드시거나 잘 안드시는 것 같으셨구요
하지만 편안히 묵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고
저희가 나가는 날에는
아침에 직접 밥을 지어서 주먹밥을 만드시곤
락앤락에다가 넣어주시기까지 하셨더라구요
게다가 그 귀한 라면을 8개나 테이블에 올려 놓고는
가저가라는 메모도 남겨 주셨어요
저희가 볼 때 거의 라면 전재산인 것 같았는데
저희한테 모두 주신거죠
성경에보면 예수님이
"도적과 같이 나타나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나는 너희가 예수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너희를 섬기고 있는거야
나한테 감사하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하렴
그 말씀을 팩트로 살아내고 계신 분이
계시는 구나 라는 사실에 놀라움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말씀을 시작으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메세지를
인격적으로 다가가는 계기를 심어 주었구요
일주일의 단기선교
알고 싶었어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
그리고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의 시간을 갖게 되었죠
그리고 궁금했어요
하나님은 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나에게 기회를 주신거죠?
그렇게 고민의 시간을 보내다가
복학을 하는 시간을 놓쳤어요
엄밀하게 말하면 복학을 피한거죠
복학을 하면 그저 그렇게 흐르는대로 살까봐
집안의 비난을 감수하면서 복학하기를 포기한거에요
8월이었어요
일주일 정도 거제도에 있는 "산달도"라는 섬에
평균연령 65세의 마을에 가서
마을 보수공사도 하고 벽화를 그리는 활동을 했죠
처음에는 "뭐하는 거냐"는 듯 시큰둥하게 말씀 하셨지만
나중에 저희가 갈 때는 좀 더 있다가 라고 하시면서
손을 잡아 끄셨어요
저야 시간이 많은 휴학생이었지만
사실 나머지 3명은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어요
특히, 21살의 미술을 전공한 친구는
재수를 실패해서 이번에 삼수를 준비하는 학생이었구요
여자였던 터라 남자 세명과 섬으로 들어가서
세달동안 있어야 하는데...
어느 부모님이 보내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게다가 한명은 장학금으로 미국 유학에 합격했는데
그 시기가 입학시기와 겹치게 된거죠
그런데도 함께 기도하면 기도할 수록
"그곳에 다시가자" 라는 마음이 더 커졌어요
교회 옆 컨테이너에서 사는 동안
오히려 삶의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마을 어르신분들도
벽화를 그리는 저희들에게
"밥이나 같이 먹자"고 초대를 해주셨고
식사를하면서 살아오시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렇게 마음을 터놓은 분을 교회에서 뵐 수 있게 되었고
반가움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죠
세월호와 도보순례
여행과 선교활동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겠다는 방향을
어스름 하게는 잡았던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이런 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단체를 만들고 나서도
비전은 있는데 뭔가 액션플랜이 없다보니
뭔가 방향이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일이 터진거에요
세월호 사고가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안산에서 걸어서 팽목항으로 간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그 아이들이 세월호 생존자 였던 거에요
법을 제정 할 수도
배를 건저올릴수도 없기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건
걸어서 그곳을 가는 것 밖에 없다는 기사에
나도 이들과 함께 걷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팽목항에서 아이들이 돌아올 때
함께 배웅한다는 마음으로 같이 걷자
아이들과의 걷는 이야기를
일기쓰는 것 처럼 페북에 남겼어요
그런데 다들 공감해 주시면서
하루라도 이 아이들과 함께 걷고 싶다는 피드가
계속 올라오더라구요
그래서 함께 걷기 시작한 행렬이
천안과 수원을 거쳐 안산으로 돌아올때 쯤에는
천명이 넘게 되었어요
기적이 일어 난거죠
정해놓지 않았으면 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표를 정해놓고 시작해요
그리곤 그것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지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살아내죠
저에게 있어서 시련과 삶의 시간은
내가 무엇을 하면 좋을까
무엇을 하면서 사는게 가치있을까를
알게 해주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알게되면
이후에는 내가 잘하는 것으로 삶을 연결하는
좋게 말하면 자연스러운 과정이자
있는 그대로 말하면 무작정의 삶 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상황을 직면하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니 오히려 많은 계획과 다짐으로
나의 가능성을 묶어두지 말고
상황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대로 반응하면서
삶을 알아가는 것도
꽤 매력적인 삶을 선물해 준답니다.
Q. 청년을 위한 DREAM 매뉴얼
뭘 얻겠다 라는 거창함이 아니라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애라는
대책없는 긍정이
오히려 삶의 오아시스같은 길을
만들어 줄거에요
괜찮아요
함께 시작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