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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빈 Mar 24. 2024

내게 이런 실행력이?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다.

3월에도 네 가지 낯선 일을 했다. 3월 첫째주에는 난생 처음 오락실에 가보았고, 둘째주에는 한남동의 북파크 라운지에 가 보았다. 셋째주, 넷째주의 경험에 대해서는 한꼭지씩 적어볼까 한다.    


자꾸 살이 찌는 것이 고민인데, 나를 살찌게 하는 두 가지 요인은 술과 간식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술과 간식을 찾는 것이다. 특히 마감에 쫓길 때. 그래서 번역가 생활 중반에 접어들면서부터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을 찾는 것이 나의 주요 과제가 되었다.      


스트레스를 풀어줄 대안으로 새로운 취미를 찾아보기로 했다. 3월 첫 주에 오락실을 찾은 것도 마침 번역가가 주인공인 드라마 <런온>에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오락실을 찾는 장면을 보고나서였다. 사격과 펀치로 스트레스가 풀릴까 해서. 그러나 나의 첫 시도는 어설프고 그렇게 오락실은 내 대안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대안을 찾아보겠다는 노력 자체를 접은 것은 아니다. 2023년 초부터 활동하던 단톡방에서 한 멤버가 합창단 활동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고, ‘합창단이다!’라고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당시 살고 있던 용인의 합창단을 찾아냈고, 단장님께 전화를 걸어 연습 참관 날짜를 잡았다. 내게 이런 실행력이?     


다음 단계는 참관 및 오디션이다. 오디션을 본다는 말을 들을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순 없다! 유투브에서 가곡 영상 등을 찾아보고 ‘님이 오시는지’를 골랐다. 코인 노래방에서 가서 연습까지 했다.     

 

필라테스를 하고 오는 길에 코인노래방에서 가곡을 부르고 있노라니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더 어처구니없는 건 오디션 실전이었어! 입만 뻥긋뻥긋한 연습이 끝나고 오디션을 보려고 하니 갑자기 너무 떨렸다. 와들와들 떨리는 무릎을 보니 더 정신이 아득해졌다. 노래를 어떻게 불렀는지는 기억 나지도 않는다.     


한 주가 끝나고 다행스레 알토에 배정되었다. 그렇게 용인 시민 합창단 단원이 되어 매수 수요일 오후에 3시간 동안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합창단원이 되어 노래를 부르는 것이 과연 내 스트레스 해소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 것인가? 작년 봄의 나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나는 실행을, 그것도 빠르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몸소 부딪혀서 해내는 사람이 되었다. 실행력을 높이는 데는 성공 경험이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이때 나는 하나의 성공 경험을 쌓은 것이다.     


그렇게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크게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당시의 나는 어떤 결과를 예상하지 않았다. 그저 시도했고, 계속 그 시도를 따라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합창단 합류는 2023년의 가장 선명한 경험으로 남았다. 버스킹도 하고, 공연도 하고, 드레스도 입어보고, 오랜만에 풀메도 하고, 다양한 낯선 활동을 겪게 되었기 때문이다.      


합창단에서 만난 분들도 물론 기억에 남는다. 나와 가장 나이가 비슷했던, 유쾌하고 열정적이신 지휘자님. 나를 챙겨주셨던 알토 파트장님과 부단장님, 나를 매번 차로 태워다주셨던 분들, 함께 즐겼던 엠티의 기억, 오고 가는 길에 들었던 말들, 소소한 에피소들, 합창단 경험은 나의 작년에 여러 가지 풍성한 색채를 입혀주었다. 

    

무엇보다 가장 즐거웠던 일은 노래를 다시 부르게 되었다는 것. 라틴어 미사곡을 달달 외어 무대에 오른 경험은 소소하기보다는 자못 대단한, 어쩌면 대견한? 도전이었다. 저녁마다 30분씩 노래를 연습(물론 작은 소리로)하곤 했던 시간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결국 나는 작년 10월 말의 정기 공연을 끝으로 합창단을 그만두었다. 애초부터 정기 공연까지 함께 가겠다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기도 했고, 11월부터 3월까지 이어지는 현생의 일정을 소화하면서 합창단을 병행하기가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창단원으로 살았던 시간은 내게 뿌듯하고 생기로운 시간이었다. 여러 사람과 마음과 소리를 맞춰 노래를 하나로 완성하는 일에는 생각보다 더 큰 감동이 있다. 그리고 나는 줄곧 소년소녀 합창단과 성가단 단원으로 활동하던 10대 시절을 그리워했던 것 같다. 그리워했던 일을 다시 해 볼 수 있다는 점도 나를 뭉클하게 했던 것 같다.      


어쩌면 앞으로 다시 합창에, 음악과 무대에 다시 도전해 볼 기회가 생길지 모르겠다. 아니,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다시 찾아 나서야겠다. 막연히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그렇게 하겠어’라고 결심하고 실천하는 내가 되어야지. 실행력이 조금 올라간 것도 같은 선언을 끝으로 이번주의 글을 마친다.     

 

마치려다 말고...... 그래서 스트레스 해소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었냐고? 스트레스 해소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된 부분이 있다. 다이어트는 굳이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대안을 찾아보려는 노력은 계속된다.      


          

오디션을 앞두고 커져가는 긴장감에 잠시 커피 타임.


첫 합창 연습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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