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의 책들 4. 노란 눈의 물고기
007년의 책들 중 이야기하고 싶었던 마지막 작품 <노란 눈의 물고기>는 별로 유명한 책이 아닌 듯해 약간의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직접 설명하기보다 검색 찬스를 써 본다.
‘그림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풋풋한 첫사랑의 이야기이자,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성장통을 겪는 청춘들의 이야기이며, 그림을 통해 세상에 마음을 열어가는 소통에 관한 이야기. 지은이가 20년에 걸쳐 쓴 소설로 두 주인공들의 서로 다른 시점으로 전개된다.’
노란 눈의 물고기(2004) - 왓챠피디아
아, 이게 풋풋한 첫사랑의 이야기였나? 무척 새삼스럽네. 아무튼 지은이가 20년에 걸쳐 쓴 소설이라는 점과 서로 다른 시점으로 전개된다는 라는 점이 이 소설의 매력인 듯하다. 20년에 걸쳐 쓴 게 왜 매력인지? 남다른 개성인가 내공인가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다음 같은 구절 속에서........
도오루짱이 작업용 책상에서 쓱쓱 삭삭 펜 움직이는 것을 마룻바닥에서 무릎을 감싸고 앉아 바라본다. 경이로운 집중력을 자랑하는 도오루짱은 내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다. 더 가까이 가도 괜찮다. ‘삼각’의 눈동자 그리는 것을 보고 있어도 틀림없이 무시해 줄 거다.
하지만 난 가만히 있었다. 망고와 바나나색의 둥근 점보 쿠션 위에서. 옆에는 벤케이가 배에 머리를 붙인 채 e자로 자고 있다. 굉장히 행복한 기분. 밤 시간은 낮 시간보다 느리게 흐른다. 밤바람은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고, 바다 냄새는 강렬하고, 왠지 가슴이 꼬옥 조여온다. 눈에 익은 아틀리에가 마치 미지의 별세계 같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졸리지 않다. 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도오루짱의 펜소리. 쓱쓱.
배경음악 없음. 굉장히 조용하다. 파도 소리라도 들려올 거 같다. 이런 시간이 제일 좋다. 중학생 때부터 쭉 그랬다. 도오루짱 집에서 도오루 짱이 그림 그리는 걸 가만히 보고 있는 게 좋다. 기분 나빴던 일들이 몸과 마음속으로부터 천천히 천천히 씻겨 내려간다. ‘학교’ 가 사라져간다. 나와 도오루 짱 이외의 사람이 사라져간다. 숨이 놓인다.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천천히 위의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도오루 짱은 주인공의 삼촌이다. 직업은 만화가. 나도 미지의 별세계 같은 데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내가 조카들에게 미지의 별세계 같은 경험을 하게 해 줄 수 있는 이모와 고모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인상적인 구절.
좋아한다는 말을 발견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림을 좋아한다. 무지 좋다. 미술시간. 기지마의 그림을 보며 줄곧 느끼고 있었다.
싫은 것투성이인 마음속에 이처럼 커다랗게 ‘좋아하는 마음’ 이 있었던 걸까. 마그마처럼 뜨겁고 질퍽질퍽해서 두렵지만. 구름처럼 붙잡을 수 없어 든든히 발 디디고 설 장소는 못 되지만. 뜨겁고 불안정한 기분에 흔들려 몸까지 휘청거릴 것 같았다.
------- 이 책은 몇 년 전 다시 읽었다.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 아무래도 느낌이 사뭇 다르다. ‘내가 왜 이 책을 좋아했지?’ 하면서 당혹스러울 때도 있고, 예전에 잘 몰랐던 것들이 보여서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이렇게 다르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될 때도 있다.
<노란 눈의 물고기> 도 다시 읽으면서 어떤 부분(예를 들어 인용한 부분)은 아직도 무척 좋지만 어떤 부분은 좀 아쉽거나 공감이 잘 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처음 읽고 어쩐지 두근거렸던 순간은 여전히 기억이 난다. 도오루 짱의 아뜰리에를 상상하며 나른해졌던 느낌도. 아마 책 대여점에 있던 책을 우연히 빌렸던 것 같은데.
요새는 책과의 우연한 만남이 좀 드물어진 것도 같다. 다 찾아보고 추천받은 책들 위주로 본다. 그나마 볼 시간이 있다면 다행이고. 조만간 도서관 같은 데 가서 우연히 제목이 눈에 들어온 책을 빌려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래, 나는 그런 재미도 즐기는 사람이었지. 이렇게 과거의 취미 혹은 재미를 새삼 확인하며 2007년의 책들을 마무리한다. 다음 글에서는 2008년으로 가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