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특별한 잡음

2008년의 책들 4. 밤의 피크

by 루빈

간추린 글귀를 보면서 책의 인상을 기억하고, 그에 대한 글을 쓰기 가장 어려운 장르는 아무래도 소설인 것 같다. 2008년경 <밤의 피크닉>을 정리해 둔 구절은 아래와 같았다.


“네가 빨리 훌륭한 어른이 되어 하루라도 빨리 어머니에게 효도하고 싶다, 홀로서기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는 건 잘 알아. 굳이 잡음을 차단하고 얼른 계단을 다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아프리만큼 알지만 말이야. 물론 너의 그런 점, 나는 존경하기도 해. 하지만 잡음 역시 너를 만드는 거야. 잡음은 시끄럽지만 역시 들어두어야 할 때가 있는 거야. 이 잡음이 들리는 건 지금뿐이니까 나중에 테이프를 되감아 들으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들리지 않아. 너, 언젠가 분명히 그때 들어두었더라면 좋았을걸 하고 후회할 날이 올거라 생각해.”

--------물론 진한 글씨로 표시한 구절만으로도 이 소설은 내게 충분히 아름답다. 하지만 누가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잡음이 도대체 뭘 말하는 것인지 위의 구절로 파악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마치 추리소설의 수수께끼를 풀 듯 <밤의 피크닉>을 다시 읽었다.


일단 문제의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니시와키 도오루와 그의 친구 도다 시노부다. 반듯하고 단단하게 더 높이 위로 올라가려는 도오루에게 시노부는 잡음을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3학년이며 보행제라는 행사에 참여하려 하고 있다. 북고 보행제는 ‘아침 8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전교생이 걷는 행사’를 말한다. 무려 36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시간적 배경이 단 24시간인 점도 이 책의 큰 매력이다.


“뭔가 말이야, 조바심이 나. 최근 그 녀석 보고 있으면.”

“어째서?”

“그야 담백하고 감정이 안정되어 있어 항상 마이페이스인 점은 훌륭해. 하지만 아무것도 보지 않는 척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아.”

“보지 않는 척? 뭘?”

“뭐랄까, 청춘의 동요랄까, 번쩍임이랄까, 젊음의 그림자라고나 할까.”

[...]

“잘 표현하진 못하겠지만 그런 거야. 냄새나고 비참하고 부끄럽고 흉한 것, 그 녀석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잡음이라는 것은 위의 대화에서 언급된 ‘청춘의 동요랄까, 번쩍임이랄까, 젊음의 그림자라고나 할까, 냄새나고 비참하고 부끄럽고 흉한 것’에 가까울 것이다.

“좀 더 제대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는 거였는데.”

도오루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응? 뭐라고?”

다카코가 돌아본다.

“손해 봤어. 청춘을 즐겼어야 하는 건데.”

“뭐야, 그건.”

“푸념.”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는 표정의 도오루를 보니, 다카코의 가라앉아 있던 마음 어딘가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시노부의 목소리가 갑자기 뇌리에 되살아난다.

뭐랄까, 청춘의 흔들림이랄까, 번뜩임이랄까, 젊음의 그림자라고나 할까

농담처럼 말하던 시노부의 목소리와, 만사 시시한 듯한 도오루의 얼굴이 포개졌다.


이들의 대화와 책 속의 장면을 되살리는 것으로 잡음이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를 충분히 전달하기는 아마 부족할 것이다. 오늘날의 나에게 고등학교 3학년들이 ‘청춘을 즐겼어야 했는데 손해 봤어’라고 느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등학생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추구하는 목표가 있고 성장을 향한 욕구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지향하는 바가 있고 부단히 성장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성장과 성취에 있어 ‘잡음’이라고 느낄 무언가가 있을지 모른다. 그 ‘잡음’ 비슷한 것이 지금의 나를 억누르고 긴장시키고 충분히 즐기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친구의 충고, 평소 내가 보고 있던 것과는 다른 방향, 신경이 쓰이기는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라고 넘기고 싶은 문제. 그런 것들이 잡음일지 모른다. 그 잡음 속에 어쩌면 아주 중요하고 특별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요즘의 내게도 잡음 같은 무엇이 있을까? 어쩌면 내가 잡음으로 치부하는 무언가가 정말 더 특별한 것은 아닐까? 이번 글은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것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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