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의 책들 1. 청춘의 문장들
221권을 읽었던 2009년, 이 중에서 5권 정도의 책을 골라 되새겨볼까 한다. 그 중 첫 번째 책은 김연수 작가님의 <청춘의 문장들>. 그렇다. 내게는 김연수 작가님 덕후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덕후라는 표현도 없었겠지만. ‘김연수’라는 이름의 파일도 따로 있다.
<밤의 피크닉>을 다루며 청춘의 일렁임, 번뜩임 같은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적었다. 잡음일지도 모를 그런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청춘의 문장들> 같은 책을 쓰는 작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청춘의 문장들>에도 이와 결이 맞닿아 보이는 구절이 등장한다.
사이에 있는 것들, 쉽게 바뀌는 것들,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여전히 내 마음을 잡아끈다. 내게도 꿈이라는 게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마음을 잡아끄는 그 절실함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
어떤 절실함이 어떤 문장으로 옮겨졌을까?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1)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때 바라본 밤하늘을, 그때 느꼈던 따뜻한 고독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왜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그건 우리가 살면서, 또 사랑하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모세를 닮은 재벌 3세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내 이름을 새긴 기념비를 남산 꼭대기에 세워 준다고 해도 나는 그 일들과 맞바꾸지 않을 것이다. 때로 너무나 행복하므로, 그 일들을 잊을 수 없으므로 우리는 살아가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나는 때로 너무나 행복하므로 문학을 한다. 그 정도면 인간은 충분히 살아가고 사랑하고 글을 쓸 수 있다.
1968년 프랑스에서 학생운동이 극에 달했던 시절, 바리케이드 안쪽에 씌어진 여러 낙서 중에 “Ten days of Happiness” 는 글귀가 있었다고 한다. 열흘 동안의 행복. 그 정도면 충분하다. 문학을 하는 이유로도. 살아가거나 사랑하는 이유로도.
------ 그 정도면 충분하다 싶은 행복의 장면이 내게도 있었을까? 물론 있었다. 2009년 즈음, 내게 참으로 운이 좋다 싶은 기회가 찾아왔는데 그런 기회 속에서 나는 많이 울고 많이 힘들어했다. 기회 자체는 좋았는데 내가 감당을 못했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예전의 나에게는 참 쓰라렸던 것 같다.
어느 동네인지 정확히 기억도 안 나지만 마음속의 깊은 힘듦을 친구에게 털어놓으며 나는 펑펑 울었다. 친구는 힘들겠다고 하면서 나를 다독다독해주다가 함께 울었다. 버스 정류장 의자에 나란히 앉아 울다가 ‘이제 따뜻한 국물을 먹으러 가자’는 친구의 말에 함께 우동을 먹으러 갔다.
그렇게 울던 장면이 행복하고 따듯한 장면처럼 느껴진다는 것이, 인생이란 참 신기하고 묘하지. 그냥 함께 울어줄 사람이 있다는 게 내게 ‘충분히 살아가고 사랑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로 다가왔던 것 같다.
2)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 제비꽃이 완전히 죽어가는 동안, 대학까지 졸업한 내가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어떤 힘이 제비꽃의 가느다란 줄기를 꼿꼿하게 세우는 것일까? 어떤 힘이 있어 나는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날 밤, 내 머릿속에는 뒷산에 꽂아두고 온 모종삽이 떠올랐다. 어둠 속에서 비스듬하게 땅에 꽂혀 있을 모종삽. 그 모종삽처럼 살아오는 동안, 내가 어딘가에 비스듬하게 꽂아두고 온 것들. 원래 나를 살아가게 만들었던 것들. 그런 것들. 누구에게나, 무슨 일이거나 처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갓 태어난 아이의 눈과 귀처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시간이 있다. DJ 인혁의 강의를 듣던 그때가 바로 내게는 처음 마음이었다. 그런 처음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흘러나오는 모든 노래가 경이롭게 들린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세월은 흐르고 흘러 서리 내린 연잎은 그 푸르렀던 빛을 따라 주름져 갈 테지만 한때 그 푸르렀던 말들이 잊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내게도 그처럼 푸르렀던 말들이 있었다. 예컨대 “글을 잘 읽었다” 라든가, “그저 좋은 생각이구나, 네가 어떤 시를 쓰면 꼭 보고 싶다” 같은 말들. 그런 말들이 있어 삶은 계속되는 듯하다.
--------이런 글을 읽을 수 있다면, 다시 곱씹을 수 있다면, 처음 마음과 같은 말이 경이롭게 들린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나를 살아가게 하는 이유가 되기에.
그리고 내 삶에도 푸르렀던 말들이 있었다. ‘좋은 글을 써서 보내줘’와 같은 말. 나는 좋은 글을 써서 보내지도 못했고, 앞으로도 보낼 수 없겠지만 그런 말을 들었다는 것 자체로 살아갈 이유를 찾고, 삶이 계속되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나는 청춘과 멀어졌지만 청춘처럼 푸르고 아름다운 문장들을 되감아본다. 그리고 이런 바람을 품는다. 내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 아름다운 장면을 더 많이 쌓고 싶다고. 누군가에게 어떤 푸르른 말을 해 줄 수 있다면 더욱 값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