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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빈 Aug 24. 2023

1월의 기록

일상기록과 낯선 일 기록

코로나 시대부터였을까, 기록을 향한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기록 열풍이라고 하면 과장이려나? SNS에는 독서기록과 운동기록, 소비기록 등 기록 인증샷이 올라온다. 올해 초, 교보문고 핫트랙스를 찾았을 때도 수많은 노트와 다이어리, 메모지 컬렉션 앞에서 어질어질해질 정도였다. 인스타에서 보고 흥미가 생긴 ‘Goal Tracker’라는 수첩을 사려고 찾아간 곳이었다. 한참 뒤진 후에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온 후 수첩 인증샷을 찍었다. 새해부터 시작한 모임 단톡방에 보내기 위해서였다.


1월 1일부터 시작하는 기록모임에 들어갔다. 혼자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다 보니 일이 뜸해질 때는 소통 욕구가 치밀어오른다. 욕구를 부담 없이 채우는 방법 중 하나가 온라인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번에 참여하는 모임에서는 매일 사진 한 장을 찍어서 보내는 ‘사진 기록’이 중심이다. 각자 자신만의 주제를 정해야 하는데, 나는 (매일) 일상기록과 (주 1회)‘소소하지만 낯선 일 해보기’를 주제로 정했다. 낯설고 새로운 일을 꺼리는 성향을 잡아보기 위해 세운 주제다. 매일 단톡방에 올라오는 모닝기록, 육아기록, 감정기록 등의 사진을 보면서 ‘이제는 서로의 기록을 나누고 소통하는 시대구나’라고 느낀다. 


기록모임의 시작은 새해 첫날 아침 6시에 줌으로 진행되는 새해 목표 세우기였다. 다소 얼떨떨한 상태로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함께 다이어리에 목표를 끄적거리는 경험은 꽤 신선했다. 이 모임에서는 운영자가 채팅창에서 진행 규칙을 알려준 외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른 아침의 고요한 어울림이 낯설면서도 썩 마음에 들었다. 


낯선 점은 고요한 줌모임만이 아니었다. 한주에 두 번씩은 목소리를 녹음하여 단톡창에 보내야 했다.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본 없이 중얼중얼(?)해서 보내는 매주의 미션은........ 현재 적응 중이다. 새로운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 역시 재미있는 경험이다. 어쩌면 멀리 있을지도 모르지만(실은 어딨는지 잘 모른다) 누군가의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잠시 연결된 듯한 착각도 든다. 


모임에서 한 달의 시작을 그달의 목표 세우기로 시작한다면 한 달의 끝은 그달의 기록을 정리하며 마무리한다. 첫 달에는 운영자가 보내준 템플릿에 각자 고른 사진을 넣어서 릴스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이로써 나는 처음으로 릴스도 완성해 보았다. 하지만 지금도 템플릿은 어떻게 만드는지 모른다. 


1월에는 베트남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제법 새로운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베트남에서 걷는 길과 그 풍경, 베트남에서 가 본 식당들, 조카가 추천한 맥주 등이 그날그날의 일상과 더러는 낯선 일이 되곤 했다. 

모임 단톡방에 매일 인증을 하면서 1월에 해 본 낯선 일들을 정리해보기도 했다.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심리도식 스터디를 들으며 빈의자 기법과 플래쉬 카드 써보기를 했다. 빈의자는 두 개의 빈의자를 오가며 내 안의 나를 힘들게 하는 자아와 도와주려는 자아 사이의 대화를 진행하게 해주는 기법인 듯 하다. 플래쉬 카드는 나의 괴로움, 나를 힘들게 하는 트라우마(덫)에 도움이 되는 글귀를 정리해 두는 카드다. 몇 번 써보았지만 맘에 안 들어서 다시 쓸 거임!

2. 새로운 글방에 들어갔다. 이슬아도 거쳐갔다는 어딘의 글방이다. 글쓰기 능력자들 사이에서 두들겨 맞는 중?

3. 친구와 새로운 모임을 시작했다. 매주 한 주의 행복한 순간을 정리하는 글을 쓰는 모임이다. 우리는 행복한 순간을 더 많이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

4. 에코 패스 산책이 루틴이 되어간다. 에코패스는 하노이 집 근처의 초록초록(나무+ 길바닥?) 한 산책길을 말한다.     


1월의 낯선 일을 확인하면서 빈의자 기법도 한 두 번 해 보고 치우고, 플래쉬 카드는 여전히 쓰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어딘의 글방은 한 달 하다가 말았는데, 다시 들어가지는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내게는 새로운 글터가 생겼다.     


이 기록모임도 어느새 8개월차다. 한 가지 주제로 계속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계속 주제를 바꾸고 있다.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재미도 있고, 이거다 싶은 걸 찾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6월부터는 아카이빙(기록 정리)을 이어가고 있다. 꾸준히 아카이빙을 하는 습관을 몸에 붙였으면 한다. 어쩌면 지금 쓰는 글도 아카이빙의 일환일지도 모른다. 지난 1월의 기록을 돌아보고 정리하고 있으니까. 

    

별생각 없이 그냥 취미 삼아 끄적끄적 해오던 기록을 몇 년 전부터 정리해오기 시작했다. 두서없이 글이 긴 편이라 정리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꼭 명쾌하고 깔끔하게 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한다. 일도, 글쓰기도, 기록 정리도, 어쩌면 살아감 자체도.           

     1월의 나는 베트남에 있었다. 설 연휴 즈음, 베트남의 어느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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