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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유 Aug 24. 2018

세계여행, 막상 해보니 어때? 행복해?

[Day 130] 더 이상 여행이 아닌 여행에 대한 이야기

* 이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도, 글을 써내려가는 데에도, 윤문을 하는 데에도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꼭 이 글 만큼 되는 문장들을 쓰고 지웠다.

* 나에게 이 질문을 던져준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요즘 들어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꿈꾸던 세계여행을 해보니 어떻냐고. 정말 행복하냐고.


그 질문을 받으면 머릿속에서 말들이 맴돈다.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어떠해야하는 걸까? 매일이 가슴 벅차고 즐거워야 하는 걸까? 행복이 뭘까? 이렇게 사는 것이 꽤 나쁘지 않은 편인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이유가 딱히 없으니 나는 행복한 건가? 매일 매 순간 행복한 사람이 어딨어, 가끔 컨디션이 저조할 때나 기분이 별로인 날도 있지만 벅차도록 행복한 날도 있으니 나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가? 근데 내가 '행복하려고' 세계여행 하나? 원래는 안 행복한 사람인데 세계여행을 하면 행복해질 것만 같아서 하기로 했던가? 이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꿈꾸던 순간 속에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걸까, 아님 '세계여행도 결국 해보니 별 거 아니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걸까?





오늘 프라하에 도착했다.


프라하에 오니 우리가 정말 '유럽의 중심에 왔구나' 하는 것이 실감났다. 관광객이 정말 많았고, 그중 한국인도 정말 많았다. 지금까지도 여행지에서 한국인들을 보아오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많이 본 것은 처음이었다. 타워를 올라가려고 줄을 섰는데 앞 팀도 한국인이었고 뒷 팀도 한국인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저들은 참 좋겠다. 한국을 떠나와 이렇게 예쁜 곳에 있을 수 있어서, 그리고 조만간 집에 돌아가 쉴 수 있어서.


현재까지 21개국 58개 도시를 돌았다. 짧게 여행 온 여행객들을 보았을 때, 자주는 아니지만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도 여행 중인데 여행하는 사람들이 부럽다니, 참 우스운 일이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여행을 한다. 가장 예쁜 옷을 챙겨 입고 여행하고 있는 이들은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만큼은 매일 똑같은 루틴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는 여행이 일상이다. 매일 똑같은 후줄근한 옷을 입고, 잘 곳을 찾아 다니고,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보는 것, 이것이 우리의 루틴이다. 다섯 달 째 같은 삶을 살다보니 나도 가끔 일상에서의 일탈을 원하게 된다. 그 일탈은 바로 '익숙한 것'과 '정착'이다.



3~4일에 한 번씩 자는 곳이 바뀐다. 새로 자는 곳을 찾아갈 때마다 약간의 긴장감이 감돈다. 이곳은 어떤 곳일까? 잠자리가 편안해야 하는데. 샤워 시설은 편리할까? 호스트는 친절할까? 도심 까지 대중교통으로 다니기에 편리한 곳일까? 베드버그는 없으려나? 최대한 많은 정보를 찾아 보고 숙소를 정하지만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법이다.


숙소에 도착해서 그곳의 공기에 적응하까지는 적게는 반나절에서 많게는 하루 정도 까지 걸린다. 그렇게 겨우 적응해서 하루 이틀 정도 있다 보면 다시 짐을 꾸려 다른 도시로, 다른 숙소로 이동한다. 뭐라도 두고 가면 찾을 수 없을 텐데, 혹시나 잊은 것은 없을까, 걱정하며 길을 나선다. 에이, 잃어버리면 그 물건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던 거 겠지.



반팔 티 한 장, 나시 티 한 장, 원피스 두 장.

반바지 두 장, 칠부 바지 한 장, 긴 바지 한 장.


이 옷들을 돌려가며 입는다.

입던 옷이 헤지거나, 가끔 새 옷이 입고 싶어질 때에는 새 옷을 사고 가방 속의 옷 하나를 버린다. 배낭여행자는 짐이 늘면 불편해지는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짐은 무조건 현상유지이거나 줄어야 한다. 물론 두 쪽 다 매우 어렵다.



나는 매일 새로운 도시에 있다. 새롭다는  다른 말로 하면 낯설다는 것이다. 처음 보는 길 위에 있으면 나도 이 길이 낯설지만 이 길도 나를 낯설어하는 것이 느껴진다. 공간이 나에게 말한다. "너도 나 처음 보지? 나도 너 처음 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설레고 재밌는 일이지만 너무 새로운 사람만 계속 만나면 피곤하고 지친다. 그럴 때면 공기와 같이 존재하는 오래된 친구가 그리워지는 것처럼, 공간도 마찬가지다. 아무 거리낌 없이 누비던 학교 앞 신촌 거리,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어디든 편하게 다녔던 서울이 그립다. 서울은 말한다. "너 나 알지? 나도 너 알아."



친구들이 보고 싶다. 학교 근처 술집에서 맥주에 치킨을 곁들여 먹으며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나누던 것이 그립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힘든 일이 있거나, 좋은 일이 있거나, 아무 일도 없어도 시시콜콜 수다 떨고 싶을 때, 나는 너무 멀리 있다.



집에 들어가면 긴장할 것도, 불안할 것도, 두려울 것도 없이 온전히 편안했던 때가 그립다.

우리말이 그립고, 서울의 복잡함 속에서 아무 카페나 기어들어가 오직 혼자 아늑했던 그 순간들이 그립다.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했던 그 시간들이 그립다.

떡볶이, 곱창, 냉면, 광어회, 감자탕, 김치찌개, 찜닭이 그립다.


알 수 없는 음식들이 가득한 메뉴판에서 무엇을 골라야할지 몰라 결국은 익숙한 버거킹을 들어가버리고 말 때,

나는 한국이 그립다.






나는 계속해서 먼 곳으로 떠나고싶어 했다. 아무도 나를 알아볼 수 없는 곳, 내가 무엇을 하고 살든 어떻게 살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들에서 멀어져보고 싶었다.


나는 예쁜 것들을 원 없이 보고 싶었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다. '해야할 것'들만 넘쳐나는 이 땅을 떠나 한동안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보고 싶었다. 내가 살아온 이 우물 속을 벗어나보고 싶었다. 더욱 크고 넓은 에너지를 느끼고 싶었다. 자연의 힘에 경탄해보고 싶었다.


내 중심을 확실하게 세우고 싶었다. 사랑, 믿음, 아름다움, 삶, 죽음, 성공... 그동안 그 모든 추상에 대해 세상의 기준만 받아들였던 것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각성하고 나서는 세상의 기준과 상관 없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을 살고 싶었다. 삶에 대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떠나왔다. 몇 년을 벼르면서 이것만을 위해서 돈을 벌었고, 작정하고 떠나왔다.


막상 와보니 그리운 것도 참 많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내 선택에 후회가 없다. 이 경험을 통해 잃는 것이 많은가 얻는 것이 많은가 하는 것은 생각하기에 달린 문제일 것이다. 아무 것도 잃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도 얻는 쪽이 조금은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중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이십 대의 내 자신이 가장 원했던 것을 내가 나에게 해주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다. 내가 내 자신에게 솔직했던 그 순간에 내가 내 자신에게 충실했다는 것이고, 다른 어떤 외적인 이유로도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는 이다. 그건 바로, 평생을 함께 할 내 자신에 대한 떳떳함이다.






오늘 프라하에 도착했다.


곧바로 우체국으로 가서 배낭에 있던 짐 7.5키로 어치를 한국의 엄마집으로 보냈다. 어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짐을 다시 쌌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부쳤다. 짐이 많이 줄었다.


천문 시계 탑에 올라 프라하의 올드 타운 전경을 바라보았고, 미니어쳐 같이 작고 귀엽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이곳 탑은 유럽의 대부분의 탑들과 달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수 있어 참 좋았다. 여행하며 전망대만 벌써 몇 번째 올라온 건지 모르겠지만, 도시마다 풍경이 다 다르고, 또 다 비슷한 것이 재미있다.


내려와서는 뜨르들로를 먹었다. 바삭한 빵 겉면에는 까끌까끌한 설탕이 듬뿍 발라져있었고, 속은 부드럽고 촉촉하게 한 결씩 뜯어졌다. 그 속에 넣어준 아이스크림은 빵과 최고로 잘 어울렸다. 내일 이거 또 먹어야지.


쌀국수가 먹고 싶어 베트남음식점을 검색해보았는데 꽤 멀리 있었다. 남편이 트램 타고서라도 네가 먹고 싶은 거 먹으러 가자는 것을 배 많이 고프고 다리도 아프니 그러지 말자고, 이 근처에서 아무 거나 먹자고 하고서는 몇 발자국 걷자마자 눈 앞에서 'pho'라고 쓰인 글자를 발견하고 말았다. 우리는 둘 다 눈이 똥그래져서는 '오!'하고 외치며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베트남 교민들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그래서 가격도 다른 곳보다 저렴했고 맛은 보장된 것이었다. 식당 내부는 마치 베트남 현지에서 먹는 것만 같았는데 창 밖으로는 프라하의 유럽식 건물들이 보였다. 1년 전 베트남 다낭으로 다녀왔던 신혼여행이 떠올랐다. 그때도 숙소 앞에서 우연히 발견한 현지 음식점에서 너무나 맛있는 쌀국수를 먹었던 것을 회상하며 함께 웃었다.


해가 질 때 즈음에는 까를교를 걸으며 프라하의 야경을 감상했다. 세계 3대 야경이 다 뭐야 내 눈에 예쁜 게 최고지, 하며 콧대 세우고 있었는데 세상에나, 프라하 네가 이겼다. 이곳의 분위기, 이 야경이 만들어내는 아늑하고 로맨틱한 분위기에 나는 아주 거나하게 취해버렸다. 까를교를 위에서 바라본 프라하성이, 까만 강물에 넘실거리는 노란 빛들과 다리 위에 넘실거리는 사람들이, 이 거리에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가, 강에 수놓아진 통통배들이, 천천히 내 몸을 녹였다. 결국 나는 온 몸에 힘을 풀고 한껏 흐느적거리며 바람에 몸을 맡겨 춤을 추었다.




나는 행복하다.


'세계여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행복한 사람이라서 행복하다.


행복해지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서,

일상을 사랑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서,


그리움 짙게 묻은 이 여행 일상 속에서도

나는 행복하다.





2018.08.17.

세계여행 Day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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