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단상 2

[Day 140-201] 여섯 가지 짧은 이야기

by 시소유

#1 Kids Thing


지하철 옆자리에 아이들이 있었다. 네 명의 아이들이 서로 닮아있는 것을 보니 4남매인 것 같았다. 여덟 살쯤 되어보이는 여자아이가 열 살쯤 되어보이는 그녀의 언니를 툭툭 건드리더니 우리 남편의 발 쪽을 가리켰다. 그들은 무언가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우리 남편 발이 커서 그런가? 발 뒤에 뭐가 묻어있나? 하고 나도 그쪽을 쳐다보았는데 별다를 게 없어보였다. 이들 둘은 놀라는 것 같은 표정이었는데, 이윽고 핸드폰을 꺼내 남편 발 쪽을 카메라로 찍기 까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기분이 그래서 아이가 휴대폰 화면에 뜬 사진을 확인하고 있을 때 나도 그녀의 화면에로 고개를 기웃거렸다. 아무리 기웃거려도 잘 보이지 않기에 옆에 있던 그녀의 엄마에게 아이가 찍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엄마는 'The shoes. Balenciaga. Kids thing... (저 신발이요. 발렌시아가. 애들이란...)' 하고 말하며 웃었다. 그제서야 남편 바로 옆에 서있는 여자의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새하얀 색깔의 신발에 까만색으로 BALENCIAGA라고 쓰인 글자만 홀로 돋보였다. 아이들의 엄마가 허탈한듯 웃었다.

나는 차라리 남편의 큰 발이 신기해서 사진을 찍은 것이었다면 좋았겠더라고 생각했다.



2018.08.27.

@ 부다페스트





# 2 행복

피렌체에서 유명하다는 티본스테이크를 먹어 본 다음날, 우리는 긴축재정에 돌입했다. 한끼 식사로 너무 많은 돈을 지출한 것이다. 우리는 마트에 가서 2유로에 머핀 여섯 개가 들어있는 것을 샀다. 그리고 바나나를 샀다. 머핀을 뜯어 입안 가득 물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행복했다. 60유로 어치 티본스테이크를 먹을 때에도 지금보다 더 행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오빠, 나는 날 잡고 어디 가서 좋은 거 먹는 것두 좋지만 이렇게 오빠랑 거리 아무데서나 주저 앉아서 먹는 짠내나는 식사도 참 좋다."



2018.09.06.

@ 피렌체





#3 메디치 가문의 예배당

"오빠, 생각해보면 있잖아, 하나님은 분명 사치부리는 걸 싫어하시고 재물을 뽐내는 걸 싫어하시잖아."
"응, 그렇지."
"그런데 이렇게 자기 가문의 부를 드러내기 위해 예배당을 이렇게 화려하게 짓고는 가문의 이름을 붙여놓는 건 부를 자랑하는 기능도 있잖아."
"응, 그런 의미가 컸지."
"근데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 돈을 다른 데 쓴 게 아니라 예배당 짓는 데 쓴 거고, 예술가들 먹여살려주면서 하나님 알리는 작품 제작하게 하고 그런 거잖아."
"그렇지."
"그래서 지금까지도 수많은 후손들이 와서 성경이야기가 그려진 미술작품들을 감상하고 있잖아."
"맞아."
"그럼 하나님은 메디치 가문을 예뻐하셨을까, 혼내키고 싶으셨을까?"
"음... 그래도 예뻐하지 않으셨을까?"
"그러려나?"
"메디치 가문이 이 예배당을 짓고 자기 가문 사람들만 이곳을 이용한게 아니라 돈 없는 일반 평민들에게도 개방해서 누구나 예배드릴 수 있게 했대. 그러니 부를 자랑하려던 마음은 살짝 눈감아주지 않으셨을까?"
"아, 그랬구나...! 그럴 것 같다!"
"응. ㅎㅎ"
"기뻐하셨겠다."
"그치?"
"하나님이 허락하신 돈으로 사람들이 좀 더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는 곳에 사용한 거네."
"그렇지!"



2018.09.06.

@ 피렌체





#4 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꿈속 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내 눈이 담고 있는 것들, 귀가 듣고 있는 것들이 비현실적이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꼭 구름 위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때가 있다.

오늘 같은 날 바로 그렇다. 나는 아직 이 꿈 안에 있는데, 옆에 있던 누군가가 꿈에서 깨어나 영영 이곳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영원의 세계로 떠났는데 나는 아직 이 유한한 꿈 속에 있을 때. 유한하지만서도 영원할 거라 믿으며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나의 이야기가, 나의 삶이... 그래 결국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 그것이 처절하게 가슴으로 느껴질 때.

꿈에서 깨면 어떤 세상이 있을지 깨어보지 않는 한은 알 길이 없지만,
단 한 가지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이곳에서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도 꼭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2018.10.09.

@ 아이슬란드





#5 캘거리에서 만난 소확행부부에 대하여


카톡 이름을 가감 없이 딱 이름 석 자로 설정해놓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사실은 그 무엇보다도 이름 석 자 목에 걸고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나답게 살고, 나를 지켜내며 사는 것이 어렵지만 가장 해내고 싶은 일인, 그런 사람들이었다.



2018.10.27.

@ 캘거리





#6 사랑이란


사랑이란,
내가 방구를 뀌었는데 냄새가 아주 구체적으로 고약할 때, 남편이 하나하나 그 냄새들을 읊어주는 것.
"아, 김치! 수육도 있는데? 아, 무말랭이!"

사랑이란,
그러다가 배가 다시 부글거려서 '나 배에 계속 가스 차...'라고 말했을 때, 남편이 "방구 뀌어~! 아까 사실 냄새 하나도 안 났어!"라고 말해주는 것.


2018.10.28.

@ 시애틀




2018.11.25.

세계여행 단상 모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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