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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May 23. 2024

너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어?

[잡담술집] 2화

그는 입술을 엄지로 쓸며 말했다.

"음, 저는 고독의 두 번째 면이 가장 끌리네요."

"고독을 통해 만든 자신만의 매력이 있나요?"


그는 위스키를 머금고 왼손으로 턱을 괴었다. 식도를 아슬하게 넘으려는 위스키는 그의 잇몸을 조금씩 마비시켰다. 그는 위스키를 삼키고 눈을 감았다.

"설명하려면 제가 처음으로 고독을 느꼈을 때를 말씀드려야겠어요."


검지로 테이블을 두 번 두드렸다. 손가락 끝의 굳은살과 오래된 나무 테이블이 닿아 둔탁한 소리가 났다.

"한때 저는 단 한 번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려 할 때면 억지로라도 약속을 만들거나 동호회 모임에 나갔어요. 고독감을 느끼는 게 싫었고 사람을 만나야만 쉬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는 젝스의 오른편을 바라보았다. 모든 잔이 잘 닦여진 모양이었다. 나란히 놓인 잔들 중에서 한 유리잔의 림이 빨간색으로 동그란 띠를 보였다. 마치 바다 위로 해가 내린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언젠가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퍼져 한동안 밖에 나가지 못했을 때가 있었어요."

"그랬었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되면서 우울감에 빠졌어요. 스스로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니 막연하게 사람 만날 날만을 기다렸죠. 그렇게 한 달, 두 달, 공백이 길어지면서 우울감이 심해지기 시작했고 매일 밤마다 오지도 않는 잠을 청하려 안간힘을 썼어요. 그러다 언젠가 가만히 침대에 기대 창문 밖에 뜬 달을 바라봤."


그의 앞에 놓인 2개의 초콜릿 포장지는 모두 비어 있었다.

"달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흘렀어요. 별 없이 홀로 빛나고 있는 달이 너무 예뻤거든요. 동시에 혼자 빛낼 생각도 안 한 채 별에 의지했던 자신의 모습 알게 되었어요."

그는 한 번의 숨을 보내고 다시 말을 이었다.

“처음 맞아 보는 고독을 통해, 그동안 자신의 모든 시간을 타인에게 의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였."


젝스는 플라스틱 잔에 얼음을 넣고 위스키를 부었다. 물 잔을 동그랗게 흔들며 향을 맡았을 때, 공기를 타고 들어오는 위스키의 입김이 좋아 그대로 한 모금 들이켰다.

"이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일하면서 술 마셔도 되나요?"

웃으며 묻는 그에게 젝스는 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말하는 이가 취해 있다면 듣는 이도 취해야겠지요."

"말은 참 잘하시네요."


그는 플라스틱 잔을 가리켰다.

"그래도 이왕이면 고급진 유리잔에 따라 마시지 그래요?"

"싸구려 잔에 마셔야 궁상맞아 보이잖아요. 가끔은 처량해 보이고 싶어서요. 그건 그렇고 계속 말해줘요."

그는 피식 웃으며 잔을 들어 젝스의 플라스틱 잔에 가볍게 부딪혔다. 검은색 잔 안의 위스키는 파동을 일으키며 출렁거렸다.


"며칠이 지났을 까, 신기하게도 혼자 있는 시간이 재밌어지고 지루하지 않게 되었어요. 전환점이 있었다면, 우울감의 원인을 깨닫고 그걸 토대로 스스로에게 말을 걸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저에게 한 질문이었죠."

"어떤 질문이었나요?"

"너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는 소리 내어 웃었다. 젝스는 그의 말을 들으며 빈 플라스틱 잔을 다시 채웠다.  


"웃긴 질문이죠? 그런데 저에게는 이 질문의 의미가 컸어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을 받아들인 거였거든요. 타인 없이는 쉬지도 못하는 한심한 본인을 인정한 거죠. 그러고 나서 다시 물었어요."


그는 입 가장자리에 손을 붙이고 작게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다만,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없다는 건 슬픈 일이야. 우리 네가 뭘 좋아하는지부터 찾아보는 건 어때?"

그는 입에 붙였던 손을 떼며 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타인이 아닌, 네가 좋아하는 것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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