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고 눈이 떠졌다. 일어난 지 5분도 되지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SNS를 보고 싶은 마음에 손끝이 근질거렸다.
'조금만 참자. 딱 일주일이다.'
친구들에게 잊힐 까 무섭고, 세상과 단절될 까 두려웠지만, 사실 20번은 더 고민했지만, 결국 나는 핸드폰을 켜는 것 대신 찬물 세수를 선택했다. 정신이 조금은 뚜렷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언제나 그랬듯 대뜸 아무개가 생각났다.
'아무개는 뭘 하고 있을까, 분명 멋진 순간을 보내고 있을 거야.'
SNS는 끊었지만(고작 하루 차긴 했지만) 아직 아무개는 마음에서 끊을 수 없었다. 언젠가 봤을 사진 속 아무개의 미소가 질투와 열등감을 부르기 시작했다.
'아직 아침이야. 벌써부터 이러면 안 돼.'
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Q. 오늘 하고 싶은 거 있어?
생각나지 않았다. 눈을 감고 한참을 고민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간 열등감에 가려지느라, SNS를 통해 타의적으로 생긴 욕구에만 의지하느라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은 알지 못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어렸을 때의 나를 그려보았다. 어린 시절엔 열등감도, SNS도 없었으니 자의적으로 원하던 것이 있었을 것이다.
'서핑'
어렸던 나는 분명 물놀이를 좋아했다. 어른이 되면 꼭 서핑을 배울 거라며 언젠가 일기장에 적어둔 적도 있었다.그렇게 나는 반나절짜리 서핑 수강을 예약했다.
그날 예약해 그날 수강받은 서핑은 정말이지 좋은 경험이었다. 파도치는 바다 위에서, 흔들리는 보드 위에서 균형 잡기 위해오로지 바다의 흐름에만,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해야 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을 봐야 하는 것. 그것이 서핑이었던 것이었다.
'실패해도 돼, 실수해도 돼, 그저 지금을 잡았다면 이미 나를 느낀 거야'라고 파도가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지금'에 집중했을 때 눈에 들어온 전경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배제된, 하나만을 온전히 누리는 감정은 얼마나 놀라운가.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서핑을 탔을 때보다도 보드 위로 몸을 맡기고 누웠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가벼워진 몸 아래로 일렁이는 바다, 아무런 방해물 없이 트인 하늘, 때 마쳐 구름이 가려준 햇빛. 모든 것이 완벽하고 아름다웠다. 몸에 쌓였던 불안과 걱정이 어둑한 심연 아래로 내려앉는 기분이었다.물론 그것도 잠시, 다시 아무개가 떠오르긴 했지만 말이다.
이참에 천천히 생각해 보자, 이참에 천천히 나에게 질문해 보자.
Q. 열등감을 언제 처음 느꼈던 것 같아?
나는 원래 마음이 참 건강한 사람이었다. 나보다 우등한 사람이 있어도 '부러움'만 가졌을 뿐 내가 열등하다는 생각자체를 하지 못했다. 마음만 먹으면 그 어떤 것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1학년에 왕따를 당하고, 가해자(아무개)의 밝을 앞날을 인지한 순간부터.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절대 아무개를 이길 수 없다는 좌절감을 느낀 순간부터 기어코 '열등감'은깨어나버렸다.
'마음먹어도 극복할 수 없는 게 있다. 마음먹어도 가해자를 이길 수 없다.'
생각의 반복은 굳건한 신념을 만들었다.
Q. 주로 어떤 것에 열등감을 느끼는 것 같아?
학생 신분일 때 누군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공부' 뿐이었고 나는 공부로 아무개를 이길 수 없었다. 연이은 공부의 패배는 '공부'열등감으로, 깊어진 '공부'열등감은 '공부 잘하는 사람'에 대한 열등감으로 전이되었다. 결국 나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공부 잘하는 사람'이면 내게 우등자이자 범접할 수 없는 어려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
Q. 열등감을 극복하고 싶어?
'그렇다.'
과연 누가 열등감에 시달리는 인생을 살고 싶어 할까.
Q. 열등감을 왜 극복하고 싶은데?
난 정확히 어떤 이유로 극복하고 싶은 걸까. 막연히 아무개에게 벗어나고 싶었고, 막연히 내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희한하게 그 안에 숨겨있는 진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미간에 힘을 주고 생각해 보았다.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에 보드가 꼼지락 거렸을 때, 손 끝에 바다의 차가움이 느껴졌을 때, 바람을 타고 있던 진짜 이유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진정한 대화를 하고 싶어서'였다.
열등감은 사람대 사람으로 대화를 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 사람의 조건과 내가 가진 조건을 비교하면서 마음속으로 우등과 하등을 나누게 한다. 벽 없이, 직업 없이, 아무런 조건 없이 '그 사람 자체'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정말 친했던 친구가 있다. 심성이 착하고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였다. 인생에 대한 가치관을 나눌 수 있는 참 사람이었다. 그러나 친구는 교대를 나와 지금은 선생님을 하고 있다. 내가 말한 '공부로 성공한 사람'이었다.
나는 '공부'열등감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친구와 대화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말이 오가다가도 '내가 저 친구보다 못해. 나는 저 친구보다 열등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해 스스로 눈치 보게 했다. 그리고 분명 내가 저 친구보다 어떤 점은 우등할 거야,라며 끝없이 계산하게 만들었다.사랑하는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낀다는 것은, 그로 인해 진정한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참으로 괴롭고 슬픈 일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열등감을 극복해친구와 다시 대화하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열등감을 극복하고 싶은 진짜 이유였다. 목적이 분명해져서일까,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언젠가는 정말 열등감을 이겨낼 것만 같았다.
지금은 친구의 연락도, 만남도 피하고 있는 상태다. 아직은 만나기 힘들고 버거운 상태다.
나는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솜사탕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언젠가 친구는 구름같이 하얀 솜사탕을 참 좋아한다고 말했었다.
'마음이 다시 건강해지면 하얀 솜사탕을 들고 만나러 가야지. 그렇게그간 못다 한 이야기를 실컷 나눠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