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 들어서고 침대 위로 뻗었다. 아직 씻지도 않았지만, 손조차 물에 대지 않았지만 피로가 몰려와 꼼짝도 못 할 것 같았다. 그렇게 5분 정도 가만히 누워있다 문득 지인들의 소식이 궁금했다.
'다들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신기하게도, 손 씻을 기운은 없으면서 핸드폰을 들어 올릴 힘은 있었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SNS를 볼 힘은 있었다. 나는 아침에 눈 떴을 때, 밥 먹을 때, 이동할 때, 잠들기 전에, 그리고 바쁜 와중에도 SNS를 들여다본다.우울한 결말이 있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 마법. 거기에 퐁당 빠져든 것이다.
Q. SNS가 열등감 환자에게 위험한 이유는뭘까?
간단하다. 어쩌면 모두가 이미 알고 있을 이유다. 열등감은 비교로 시작된다. SNS는 비교의 '장'이다. '내가 이렇게 잘 살아요', '내가 이렇게 행복해요' 하고 과시하게 되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SNS를 키는 순간 열등감 스위치도 켜지는 셈이다.
물론 SNS 자체가 열등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SNS는 열등감 환자에게 '이스트'같은 존재라 원래 있던 반죽을 더 부풀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스트를 조절하지 못하는 열등감 환자는 결국 구멍만 송송 남은 풍미 나쁜 빵을 만들게 된다.
Q. 내가 저 사람보단 행복한 것 같은데?
SNS 게시글 중 '내가 이렇게 힘들어요'하는 글도 있다. 이런 글을 보면 열등감이 해소되는 게 아니라 열등감이 부추겨진다. 내가 누군가보다 잘나다는 인식 자체는 누군가보단 분명 못날 거라는 확신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열등감은 타인에게 '나는 열등해'라는 생각도 들게 하지만 동시에 '나는 우등해'라는 개념도 만든다. 즉, 열등감을 갖고 있는 이들은 타인과 자신을 계속 비교하면서 '내가 X보다 열등한지 우등한 지'를 끊임없이 계산한다는 말이다. 매번 열등만을 느끼는 것보다 이렇게 열등과 우등을 반복해서 느끼는 게 더 괴롭다. 타인과 나를, 지인과 나를 심판대에 두고 열심히 본인을 변호하는 듯한, 사랑하는 사람이 비교 대상이 되는 슬픈 아이러니. 열등감을 겪으며 가장 괴로워지는 순간이다.
아뿔싸, SNS스크롤을 내리다 그만 아무개의 소식을 봐 버렸다. 너무나도 환하게 웃고 있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는 게시글이었다. 사진사를 따로 고용한 것처럼 사진의 화질과 구도가 좋았다.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아무개는 어찌 이토록 완벽할까, 공부도 잘하면서 이쁘기까지 한 건 너무한 거 아닌가.'
여기서 그만뒀어야 했지만 내 엄지는 의사를 무시한 채 SNS스크롤을 계속 내렸다. 30분, 1시간, 분명 피곤했을 눈은 전등을 단 채 반짝이고 있었다. 물론 녹슨 스탠드에서 뿜어 나올 법한 탁한 조명이었다.
엄지가 성을 다해 움직인 지 2시간이 넘어가자 머리가 핑하고 돌기 시작했다. 간신히 참으면서 몇 분을 더 넘기긴 했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핸드폰을 내리고 눈을 감았다. 나보다 공부 못했던 A, 나보다 조용했던 B, 한때 친했던 C, 지금도 가끔 만나는 D. 그들 모두 흔히 말하는 '갓생'을 살며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나만 게으르게 사는 듯한, 나만 한심하게 사는 듯한.아아, 또다시 그들과 내 모습이 비교되기 시작했다.
'불 꺼진 침대에 누워 몇 시간을 SNS에 허비하는 동안,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위해 뭔갈 갈고닦고 있겠지?'
역시나 SNS의 결말은 우울이었다.
Q. SNS를 지워보는 건 어때?
열등감을 해결하기 위해선 먼저 SNS를 지워야 한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미 SNS를 지웠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매번 몇 시간버티지 못하고 다시 깔기를 반복한 것도 사실이다.
Q. SNS를 못 지우는 이유는 뭐야?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나열해 보겠다.
-내가 행복하다는 걸 알려야 한다
-친구들과 단절될 것 같다
-친구들이 나를 잊을 것 같다
-유행에 뒤처질 것 같다
-시간을 때워야 할 때 SNS 말고 떠오르는 게 없다
SNS는 암묵적인 사교클럽이다. 직접 연락하진 않지만 서로 팔로워가 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연결된 기분을 준다. 동시에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이해하는 흔히 말하는 'MZ'무리 중 일원이라는 안정감을 준다. 정말 사소하지만 나름 중요한 이유로 SNS는 삶의 일부가 된 것이다.
Q. SNS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뭐야?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나열했던 'SNS를 못 지우는 이유'의 반대가 되겠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행복하다는 걸 알려야 한다
(굳이 알려야 하는 이유는 뭘까?)
-친구들과 단절될 것 같다
(정말 친한 사이라면 SNS를 지워도 따로 연락이 온다)
-친구들이 나를 잊을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 친한 사이라면 나를 잊지 않을 것이다)
-유행에 뒤처질 것 같다
(이미 뒤처졌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매번 따라잡을 순 없다)
-시간을 때워야 할 때 SNS 말고 떠오르는 게 없다
(SNS는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시간 버리기'용이다. 동시에 내 마음도 버리게 된다. 적당히 시간 때울 다른 방안을 생각해 보자)
Q. SNS를 지워야 하는 이유는 뭐야?
모든 것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한다. 어떤 이에겐 SNS가 도움이 되고, 어떤 이에겐 그렇지 않다. 물론 내게 SNS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다. 어쩌면 부정적인 면 만이 존재할지 모른다.
-지인과 내 삶을 비교하지 않기 위해
('아는 사람'에 대한 열등은 '모르는 사람'에 대한 열등보다 훨씬 괴롭다)
-사진 찍는 의미를 바꾸기 위해
(모든 사진을 SNS용으로 찍고 있는 본인을, 아무리 잘 나온 사진이어도 하루 종일 보정하고 고민하는 본인을 볼 수 있다. 보기에 이쁜 사진이 아닌, 간직하고 싶은 사진을 찍고 싶다)
-아무개와 단절되기 위해
(안 그래도 떠오르는 아무개. SNS에서 아무개 사진을 보면 더 고된 하루가 된다. 우선 시야에서 멀어져야 한다)
-그 순간을 누리기 위해
(SNS를 하다 보면 매 순간 '지금은 어떤 게시글이 될까'하고 고민하게 된다. 게시글에 남길 문구를 생각하기보단지금 이 순간에 남겨질 감정을 기억하고 싶다. 핸드폰을 들여다보기보단고개 들어 그날의 경치를 보고 싶다)
-과시용 행복을 버리기 위해
(누군가에게 보이는 행복이 아닌 내가 정말 원하는 행복을 찾기 위해)
-내가 원하는 것을 알기 위해
(게시글을 보다 보면 관심도 없던 옷을 입고 싶거나, 생각지도 않던 음식을 먹고 싶어 질 때가 있다. 내가 원하지 않던 걸 원하게 된 거다. 즉, 타의적으로욕구가 형성된 것이다. 이제는 자의적인 욕구를 갖고 싶다)
-삶에 집중하기 위해
(SNS를 하면 삶의 줏대가 타인으로 옮겨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 삶이 내 삶이 아니게 된 묘한 느낌이 있다. 이제는 삶의 주인을 찾아야 한다)
눈 딱 감고 SNS를 지우자
SNS는 내게 열등감뿐만 아니라 '나로서의 존재'에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무의식적으로 스며든 타인의 시선, 타인의 의견, 타인의 기준이 곧 내 인생의 중심이 되어 삶이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SNS를 지우면 자존감도 올라가지 않을까?'
나에게 SNS의 장점은 너무나 흐렸고 단점은 너무나 선명했다. 그래서 난 또다시 눈 딱 감고 SNS를 지웠다. 그새지운 SNS에 불안감이 몰려왔지만 고개를 젓고 노트를 꺼냈다.
SNS 없이 딱 일주일만 버텨보자. 딱 일주일이다.
그동안 'SNS 삭제'를 실패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영원히 하지 말자'라는 각오 때문이었던 것 같다. 청개구리 같은 심보, 그리고 영원히 끊어야 한다는 막막함. 그래서 이번 도전에는 기간을 둬봤다. 딱 일주일만 버티면 성공인 미션이었다.
'실패한 전적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다시 해보자. 작심삼일도 120번 하면 1년이다.'
나는 핸드폰을 덮고 바르게 누워 눈을 감았다. 보통 때라면 감은 눈 아래로 SNS의 잔상이 떠돌았겠지만 오늘 만큼은 평온한 암흑이 보였다. 나는 펼쳐진 검은 도화지앞으로 하얀 색연필을 들었다. 오늘 나에게 건넨 질문을 떠올리며 별 6개를, 답변을 떠올리며 별 6개를, 방금 시작한 도전을 떠올리며 별 한 개를 그렸다. 검은 도화지는 어느새 이쁜 밤하늘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