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는 무엇하나 해 본 적이 없었다. 노는 것도, 보는 것도, 하물며 쉬는 것마저 혼자 해 본 적이 없었다. 이유는 단순하고도 복잡했다. 홀로 있을 때 찾아오는 고독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고독할 때열등감이 더 자세히 나를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열등감을 느낀다고?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도 왕따 가해자였던 아무개(편의상 앞으로도 아무개라 말하겠다)에게 열등감을 느낀다는 사실은 더욱이 해석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가급적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피했다. 그래서 고독을 피했고, 혼자만의 시간을 피했다. 그래서 늘 사람을 옆에 끼며 타인에게 시간을 의지했다. 하지만 그러던 중 갑작스레 찾아온 코로나 19. 알다시피 우리는 서로의 만남을 쉬쉬하며 집에 틀어박힌 시간을 보냈다. 이 말은 즉, 내가 그토록 피해왔던 고독을 맞닥뜨리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침대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본인을 보며 딱히 생각이 없었다. 우울하긴 했지만 그저 사람을 만나지 못해 그런 거라 여겼다. 그러나 하루 이틀, 2주 3주가 지나면서 우울감은 우울증으로 진화되었다. 새벽하늘을 보며 울기도 했고 혼자 실실 대다 미친 사람처럼 소리 지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이 되었을 때 뭔가 잘 못 되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어찌 보면 처음으로 본인에게 질문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뭐가 너를 그렇게 힘들게 하니?"
하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뭐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뭐 때문에 우울해하는지 초자 모르는 사람, 나에 대해 모든 게 무지한 사람이었다. 너무나 슬프고 어리석은 사람, 수많은 눈물을 흘리지만 닦을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손을 뻗었다. 이대로면 죽어버릴 것만 같아 일으켜 세워야 했다.
마음의 심연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불안정'이라는 질척이는 바닥, '불안함'이라는 좁혀오는 벽. 무척이나 아프고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눈을 감고 귀를 닫아 마음의 암흑을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어?'
그 안에 존재했던 건 다름 아닌 열등감이었다.
'내가 열등감이 있다고? 그것도 왕따 가해자에게?'
어이없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받아들여야 했다.
열등감을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 본인이 열등감을 느낀다는 것부터 인정해야 한다. 깔끔하게, 자존심 내려놓고, 어쩔 수 없이 나약한 자신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난 인정했다.
화났지만, 불쾌했지만, 억울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볼에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본인에게 건넨 나의 손을 드디어 잡았다는 환호성의 눈물이었다.
'결국 나는 자신을 위해 아플 걸 알면서도 문제를 헤집었구나. 해냈다.'
적어도 지금부터는 뭔가 달라질 거란 예감이 들었다.
왕따 가해자에게 열등감을 느낀다고?
나는 고등학교 1학년에 왕따를 당했다. 왕따를 도우려나 되레 왕따가 되어버린 조금은 히어로적인 왕따였다. 아무튼, 왕따 주동 무리 중에 일원으로 아무개가 있었다. 아무개는 공부를 무척이나 잘했고 지금은 약대를 다니고 있다. 즉 앞길이 창창한 상태이다.
반면에 나는 회사에 취직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퇴사해 부모님 등에 업혀 산지 1년 반이 넘어가고 있는 백수다. 조금씩 시작된 대인기피증과 공황 증세는 웬만한 사회생활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일 자체는 잘 맞았지만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어 퇴사한 상황. 즉 앞길이 막혀있는 상태이다.
학창 시절, 아무개는 공부를 정말 잘해 모든 선생님과 학우들이 좋아했다. 나는 아무개를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의식 속으로 나를 왕따 시킨 아무개보다 성공하고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코피 터지도록 이명이 들릴 정도로 밤낮 가리지 않고 공부해 댔다. 그러나 공부도 재능의 영역이었던 걸까, 결국 한 번도 아무개를 이길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성적이 낮아 지방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했다.
분명 내가 가해자보다 행복해야 하는데, 분명 성공해야 하는데… 학창 시절 공부의 패배로 느낀 좌절감은 자연스레 '공부' 열등감을 만들었고 아무개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열등감으로 전이시켰다.
그렇게 나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해자였던 아무개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지 않은가? 왕따 가해자에게 열등감을 느낀다니. 마치 왕따가 10년 연장된 기분. 과거도 지금도 앞으로도 끝없는 갈굼을 당하는 기분이다. 열등감에 지배된 삶은 암담하고 처참하다. 우연히 아무개의 사진만 봐도, 아무개의 소식만 들어도, 아무개를 생각만 해도 스스로를 구석으로 밀고 주눅 들어한다.
'나는 열등을 느껴야 하는 존재. 아무개는 빛이 날 존재.'
긴 열등감은 결국 나를 그렇게 인식하게 했다. 여행을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도 난 아무개를 생각한다. 내 모든 정신세계는 슬프게도 아무개로 지배된 것이다. 공부라는 한 번의 패배는 영원한 패배의 굴레에 나를 밀어 넣었다.
'난 뭘 해도 아무개보다 못해. 지금 느끼는 행복도 아무개보다 못해. 난 절대 그녀를 이길 수 없어.'
열등감과 이별여행, 그리고 나와의 연애 시작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왜 10년 전의 일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걸까. 억울해서 소리 질러도, 엉엉 울어도 해소되지 않는 답답함. 지긋지긋한 열등감. 난 이제 이 열등감에서 해방하려 한다. 더 이상 이렇게 폐인처럼 살 순 없다. 고작 날 괴롭힌 아무개 때문에 짧은 인생을 망칠 순 없다.
어느 커플들은 이별하기에 앞서 그간의 시간을 정리하는 '이별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상당히 유교적인 나에게는 당채 이해할 수 없는 말이지만 나도 한번 열등감과 장기연애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이별여행을 가려한다. 그리고 '나'에게 환승하려 한다.
연애는 자고로 서로에게 이런저런 호기심을 갖고 시시콜콜한 질문을 퍼붓는 관계이다. 나도 나에게 질문을 많이 쏟아낼 거다. 매일매일 본인에게 질문 하고 천천히 대답할 거다. 그동안 열등감에 가려졌던 나를 알기 위해서, 나라는 사람을 알기 위해서 말이다.
당장 떠날 여행지는 3박 4일의 여정, 강원도 강릉이다. 신발 끈을 꽉 묶고 그대로 현관문을 나섰다.
조금 설레는, 아니 아주 많이 기대되는 열등감과의 이별여행은 강릉, 치앙마이, 제주도로 이어진다. 물론 지금도 나는 여전히 열등감과 이별여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