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인생에서 가장 큰 숙제
[강릉에서 1일 차]
강릉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었다. 처음 떠나는 여행이기에 마음이 설레는 걸까, 처음으로 직면하려는 고독에 긴장하는 걸까. 두근거리는 마음은 버스가 출발하면서 점차 안정적인 떨림으로 돌아왔다. 창가를 바라보니 밖으로 우산이 하나둘 피어나고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렇지만 무를 수도 없는 법. 이어폰을 꽂고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눈을 감고 나에게 할 질문거리를 생각해 보았다. 아차, 한 번도 본인에게 궁금했던 적이 없던 터라 도통 질문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미간이 찌푸려 지려 할 때 간신히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질문만큼은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답할 수 있었다.
"아니요."
무서웠다. 본인을 아는 게 무서웠다. 열등감 덩어리,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멍청한 인간. 어쩌면 알고 있었기에 더욱이 스스로를 들여다보기 싫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고 알아가려 하지 않았다. 그래, 난 나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무심코 궁금해지는 사전적 의미에 핸드폰을 켜고 검색해 봤다.
[다른 사람에 비하여 자기는 뒤떨어졌다거나 자기에게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만성적인 감정 또는 의식. 네이버 지식백과]
결국 열등감은 타인에 의해 생기는 것이었다. 타인이 없다면 내 능력을 누군가에게 평가받거나 비교당하는 일조차 없을 거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 없인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열등감을 완전히 배재할 수 없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작게든, 크게든 열등감을 느낄 것이다. 단, 그걸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가 관건인 것이다.
열등감이란 누군가에겐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되고 어떤 이에겐 스쳐 지나갈 바람정도가 된다.
아주 중요하다. 나는 누군가처럼 열등감을 스쳐 지나갈 수도, 넘길 수도 없다. 열등감은 무거운 이불이 되어 내 몸을 무겁게 짓누르고 끝없는 생각들은 이불 위로 물을 쏟아 숨통을 조였다. 아무개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마르고 삶의 의욕을 잃는다. 나는 열등감 말기 환자, 열등감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숙제인 셈이다.
어느새 나를 향한 화살표는 강릉에 도달해 있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버스 발판을 밟았다.
'꼬르륵'
배를 쓸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버스 정류장뿐만 아니라 근방에는 맛집이 넘실대고 있었다. 그때 문득 질문이 떠올랐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어쩌면 있었는데 잊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맞춰주느라, 눈치 보느라, 그냥 주는 걸 받아먹느라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살고 있었다. 순간 당혹스러움이 몰려왔다.
'난 정말 나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지 않아 결국 먹방을 켰다.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을 스치는 수많은 음식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바로 떡볶이였다. 어떤 종류의 떡볶이를 먹어야 하지, 하고 다시 고민되긴 했지만 살려달라 애원하는 배의 외침에 가장 가까운 떡볶이 집으로 들어섰다.
기대만큼 만족스러운 맛은 아니었지만 배를 축이기에는 충분했다. 나는 가방을 이고 자리를 나섰다.
손을 잡고 걷는 연인, 휴가 나온 군인, 누군가를 기다리는 학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연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참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 참 다양한 삶이 있구나.'
'내가 그들의 사연을 모르듯, 그리고 궁금하지 않듯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겐 그저 지나가는 시민 한 명일 뿐이구나.'
왜인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안정적인 맥박이었다.
'왜 마음이 편안해지지?'
나는 노트를 꺼내 적어 내렸다.
어쩌면 나는 사람들에게 관심받거나 기대받는 걸 부담스러워했던 걸지도 모른다.
여행하면서 자신과 한 약속이 있다.
*본인에 대해 느끼거나 깨달은 거 적기(다짐이나 생각을 적어도 좋다)
*매일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답은 하지 못해도 된다)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가장 중요한 약속이었다. 어쩌면 여행의 지표가 될 지도였다. 이 노트를 채워가며 나를 알아가는 것, 그리고 마침내 열등감에 가려졌던 나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여행의 목표였다.
방금 적은 글이 노트의 첫 번째 장, 첫 번째 줄에 적힌 '깨달음'이었다. 완성될 여행의 시작 문구인 셈이다.
나는 수첩을 닫고 숙소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