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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음 Mar 22. 2024

데드라인까지 3개월

서울에서 집 구하기 - 1


"우진은 언제부터 그렇게 독했어, 사람이?"

"나도 원래 순두부 같았어 사람이, 저렇게 휘청이다 보니 이렇게 된 거지"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 'LTNS' 대사다. 불륜을 키워드로 삼아 내용은 다소 자극적이나, 사람 냄새나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사할 집을 구하며 이 대사를 여러 번 곱씹었다. 정확히는 '방'을 구하면서.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 방 빼려고요.


신년이 되고 가장 먼저 한 연락은 지인에게 흔히 돌리는 안부인사 같은 것이 아닌 집주인에게 방을 빼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제 내게 3개월이라는 데드라인이 생겼다. 2년 넘게 소중한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던 집과의 결별 일자가 정해졌다.


이 집은 내게 많은 감정을 안겨 주었다. 외풍이 심하고 방음이 안 되던 고시원에서 이사 온 터라 이 작은 공간이 마치 궁전처럼 느껴졌었다. 기뻤다. 오랜 로망이었던 6인용 테이블과 체어, 조명, 스툴 등 여러 물건을 순차적으로 들였다. 공간에 테트리스하듯 가구를 채워 넣고 계절에 따라 배치를 바꾸는 일도 일상의 즐거움이었다. 그뿐인가. 창 밖의 풍경을 내다보며 계절감을 느끼는 것도 묘미였다. 봄이면 연녹색, 여름이면 진초록, 가을이면 샛노란 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집 앞의 나무 한그루는 계절을 감지하는 척도였다. 벅찼다. 아침이면 햇살 가득 쏟아지는 집이었다. 행복했다.


모든 게 만족스럽진 않았다. 저층이라 사생활 보호가 잘 안 됐고 새벽 시간에는 환경 미화에 나선 청소차 소리에 잠자리를 뒤척인 적도 많았다. 소음에 예민한 내게 적잖이 신경 쓰이는 요소였다. 대로변과 맞닿아 있어 창을 열어두면 금세 시커먼 먼지가 쌓였다. 불편했다. 살아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점이었다. 그래도 하루에 몇 번씩 고성을 내지르는 이웃이 이사오기 전까진 살 만한 곳이었다. 그는 복도를 거닐며 불특정다수에게 욕설을 뱉기도 했다. 하루는 출근길에 고성방가의 주인공과 마주쳤는데 행동을 예측할 수 없어서 꽤나 불안했다. 무엇이 저 여인의 정신줄을 놓게 만들었을까. 서울살이의 팍팍함일까, 내밀한 가정사일까. 씁쓸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내 걱정뿐인 엄마에게 이사를 목전에 앞둔 시점에야 이 사실을 말했다.


"걱정 좀 그만해! 어련히 알아서 할까. 나처럼 씩씩한 딸이 어딨다고"

"누가 뭐래? 네가 부모 돼 봐라. 네가 걱정하지 말라고 엄마 마음이 그렇게 안 돼요. 내가 네 사는 모습 일일이 다 지적 안 하잖아. 그리고 그 알아서 하겠다는 말 좀 그만해. 알아서 하는 건 하는 거고 엄마가 자식 걱정하는 마음도 헤아려 줘야 하지 않겠니? 잔소리라고 생각하지 말고. 걱정해 주는 사람 있다는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해. 엄마 친구 딸은……(이하 생략)"


못 산다. 모녀 관계는 이게 국룰인 걸까. 드라마 보면 엇비슷하던데. 친척네도 그런 것 같고. 외동딸 둔 부모 마음 이해도 간다. 엄마는 내게 잔소리(라고 믿고 싶지 않겠지만)를 한바탕 퍼붓고 이사에 보태라며 용돈을 쥐어줬다. 꼭 옛날 사람이라는 거 티나게 새하얀 봉투에 현금을 넣어 준다. 그리곤 꼭 안아준다. 만나면 바람 잘 날 없는 모녀지만 마무리는 늘 아름답다.


"왜 이렇게 말랐어. 밥 잘 좀 챙겨 먹고. 내가 속이 새까맣게(엄마가 자주 쓰는 표현) 탄다 타"

"엄마, 내 몸무게 그대로야. 조심히 돌아가고 도착해서 연락해 주세요"


이사를 준비하며 우여곡절이 많았다. 전세, 월세, 본가로 합류. 여러 선택지를 두고 장기적으로 무엇이 더 효율적일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결국 서울살이를 택하곤 옥탑방부터 투룸까지 다양한 집을 알아봤지만 썩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내 맘에 쏙 드는 곳은 남의 눈에도 괜찮은 곳이었기에 간발의 차로 번번이 놓쳤다. 잽싸기도 해라. 서울에서 적당한 금액대에 치안을 갖춘, 교통편이 좋은 집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취사선택이 필요했다.


그러다 만났다. 인연은 따로 있다더니. 집도 마찬가지였다.



- 다음 편에서 이어짐

서울에서 집을 구한다는 것 - 1

서울에서 집을 구한다는 것 - 2

서울에서 집을 구한다는 것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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