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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음 Mar 22. 2024

황천길 같았던 옥탑방 계단

서울에서 집 구하기 - 2


서울에서 집을 구한다는 건.. 뭐랄까.. 부동산 중개인과 집주인을 만나 밀당하기 같은 느낌이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집 컨디션에 대해 진실을 고해 달라며 캐묻는 시간.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깐깐하게 굴어야 했다. 순간의 결정이 약 2년 기간의 라이프스타일을 결정짓게 되니까.



아유, 무서워. 흔들다리인 줄 알았어요


앱에서 본 그럴듯한 매물 이미지에 홀리듯 방문했던 집들은 대체로 실망스러웠다. 요새는 카메라로 촬영하고 보정까지 거친 상태라 실물을 보지 않으면 상태를 가늠하기 어려운 수준인 것 같다. 한 번은 부동산 중개인과 집을 보러 가는데 큼직한 카메라를 챙기는 걸 보고 물었다.


"혹시 직업이 사진가세요?"

"아니요"

"그럼 중개도 하고 공간 사진도 직접 찍으시나 봐요"

"네, 사진 잘 찍는 것도 경쟁력이에요. 고객님처럼 사진 보고 연락 주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저도 연습 많이 했어요"

"그러시구나, 솜씨 좋으시네요"


그래서 속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진과 현실의 괴리에 착오가 있었다. 저비용에 고품질 공간을 기대하는 게 과욕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응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거주지를 선택하는 사람으로서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수도, 전기, 가스비, 관리비. 창의 방향부터 소음 정도, 치안과 교통편, 주변 편의 시설, 집주인 성향(까다로운지, 불편을 겪었을 때 협조는 해주는 편인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등을 두루 고려해야 했다.


본업이 질문하는 일인지라 상대를 인터뷰이라고 생각하고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이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글에서 문맥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듯, 중개인의 말에서 요점을 간파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질문을 이어가야 한다. 최대한 상대의 짜증을 유발하지 않는 게 핵심이다. 부동산 중개인은 '집을 제공하는 자'와 '집을 구하는 자'의 중간자지만, 결국 매물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 목적을 두니까. 엄밀히 말하면 '집을 팔려는 자'와 '집을 파악하려는 자' 간의 줄다리기라고 볼 수 있겠다.


컨디션 다종다양한 여러 집을 방문했다. 집주인 직접 거래인 집도 있었는데 풀옵션이라지만 구색만 갖춰놓은 곳도 있었다. 계단이 황천길 같았던 옥탑방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건물주도 소개하며 멋쩍게 웃더라.


"원래 위층 비워두려다가 방 하나 만들고 계단 임시로 설치한 거예요. 좀 흔들리죠? (호호) 입구가 좀 좁아. 그래도 익숙해질 거예요. 근데 택배는 꼭 아래에 두더라? 내려와서 가져가야 해요. 그게 좀 번거로울 수 있는데 젊은 사람이 운동도 하고 그래야지~은근 운동된다 이거?"

"운동은 되겠네요. 근데 아유 무서워, 흔들다리인 줄 알았어요(호호) 미끄러지면 어디 하나 부러지는 거 아니에요?"


옥탑에 뭘 기대하냐지만 적어도 안타까운 청년 르포 주인공이 되고 싶진 않았다. 방의 컨디션을 떠나 조악한 철물로 완성한 계단은 상당히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었다. 녹슨 철사는 당장이라도 후드득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 적어도 내 눈엔 그랬다. 공중에 붕 매달린 계단 발 한번 헛디디면 한순간에 구름 위로 승천할 일이었다. 맞다. 난 고소공포증이 있다. 그래도 안전이 보장된 높은 곳에서는 위축되지 않는다고!



- 다음 편에서 이어짐

서울에서 집을 구한다는 것 - 1

서울에서 집을 구한다는 것 - 2

서울에서 집을 구한다는 것 - 3


황천길 같았던 옥탑방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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