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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Feb 21. 2022

글쓰는 사진작가의 제주도 여행기

스물 아홉을 앞둔 나의 시선들.

https://youtu.be/JiVIZyWnp6s


유튜브에서는 제주 영상과 사진, 글을 함께 즐기실 수 있습니다.

Youtube_ [시우의 시선]




인생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방향을 정하고 그 길을 걷는 친구에게,

정답은 없으니 언제든 돌아와도 괜찮다며

용기를 건넨다.


하지만 잘 알고 있다.

각자의 길은 암흑이고, 무거운 책임이라는 것을.

어떤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길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말임을.


촬영이 필요했던 나와 열,

휴식이 필요했던 건이 일정을 조율해 제주 여행 날짜를 잡았다.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우리는 내년이면 서른이 된다.


둘은 나의 고등학교 친구들이다.

열과는 가까운 사이로 지내왔지만,

건과는 졸업 이후로 10년간의 공백이 있었다.

리스트업 해둔 물건들을 챙기는데 괜스레 걱정이 됐다.

고등학생 때의 모습을 기반으로 그를 함부로 판단하면 어쩌나.

그러한 나의 태도가 갈등을 야기하면 어쩌나. 하는 기우였다.

15kg이 약간 넘는 캐리어를 비행기에 싣는 것으로 4박 5일간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이번 여행에서 열은 렌터카 비용을 부담하기로 했고,

건의 이모님 댁에서 숙박을 해결하게 된 탓에 숙소 비용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5일 동안 열심히 운전을 했다.

주고받는 것의 크기가 대담해진 나이.

서로의 비율을 따지지 않고 해 주어도 손해랄 게 없는 나이.

어쩌면 서른이라는 것은 그런 나이인지도 몰랐다.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들 한다. 

맞이하는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열은 여행을 시작한 첫날, 천만 원에 이르는 촬영 장비가 들어있는 가방을

렌터카 주차장에 두고 왔다.


힘들게 올랐던 어떤 오름은 날씨가 흐린 탓에 예쁜 풍경을 보여주지 못하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믿음과 슬픔이 있었다.

지금의 고난이 훗날의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라는 믿음과

행복이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어버린다는 슬픔이다.


시간은 소중하지만 흘러가는 것이라는 걸 잘 아는 우리들은 흔쾌히 그 시간을 보내주고 있었다.

다만 공유하는 시간 위에서 각자 최선을 다 할 뿐이었다.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자고 블루투스 마이크를 챙겨 온 건,

뒷 좌석에 앉아 졸고 있는 와중에도 눈에 힘을 주고 버티던 열,

자주 찾아오는 과속 방지턱 앞에서 조심스레 브레이크를 밟는 나의 노력이 그 표상이었다.



어떤 저녁에는 건의 이모부께서 내어주신 방어회를 먹었고,

어떤 아침에는 이모님께서 내어주신 집밥을 먹었다.

집안일을 맡고 있는 나는 그분들의 수고로움이 더욱 감사했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받는 일은 지난날의 내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나의 어떤 선택과 희생이 이런 감사함을 만들어 냈을까.

나는 호의를 받을만한 사람인가. 하고 말이다.


샤워를 마치고 숙소를 나서면 햇빛을 쐬고 있는 귤나무들이 보였다.

힘차고 푸릇하게 각자 위치에서 열매를 맺는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었다.

공평하게 내리쬐는 햇빛은 초록과 주황색의 대비를 더욱 돋보이게 해 주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만큼은 시간이 정지되는 느낌을 받는다.

몇백 분의 일초로 열고 닫히는 셔터를 누르며 생각했다.

이 세상에 반복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나를 둘러싼 햇빛과 공기는 꾸준히 있어왔지만 다르게 있어왔다고.

사람과 감정 역시도 그러할 것이라고.



소주 반 병을 마신 건이 나의 인간관계와 진로에 대한 계획을 물었다.

그것은 지난 10년간의 공백을 메꾸기 위한 노력이자

10년 동안의 나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정답이 없는 암흑 위에서 경험한 서로의 일대기가

한 시간에 80km를 달릴 수 있는 속도로 나아가는 차 안에서,

조심스럽고 장황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뒷 자석에 앉아있던 열이 잘 들리지 않는다며 마이크를 꺼내 대화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의 노력이 퍽 사랑스러워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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