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를 내일로 통역하기
'아프니까 청춘이다.'
조심스러운 표현이다. 현대 사회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한편, 현대 사회의 어려움을 정당화할 위험도 있다. 필자는 가끔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한다. '문명이 발생하기 이전의 젊은 인간도 이렇게 치열하게 살았을까. 원시 시대에서 삶의 목적 역시 돈을 벌고 출세하기 위함이었을까. 현대 사회의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있긴 있을까.' 청춘의 '아픔'은 해가 지날수록 더해가는 듯하다. 그 형태도 변해간다.
청춘의 '아픔'은 해가 지날수록 더해가는 듯하다
그간의 '몽촌토성 인터뷰'가 이미 사회에 진출해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청년들에 대한 내용을 담았었다면, 이번 '몽촌토성 인터뷰 루키'는 아직 학생의 신분으로서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해가는, 상대적으로 더 젊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두 집단 모두 아직도 헤쳐나가야 할 인생의 언덕이 많이 남아있지만 '학생(學生)만의 '학생 다움'이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 학생도 아프지 않을까. 무엇 때문에, 왜 아플까'.
아직 학생인 독자들에게는 비슷한 고민을 하는 또래의 이야기를, 이미 졸업하여 열심히 직장에서 일하는 독자들에게는 어렸을 적 초심(初心)을 상기시켜주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다. 새싹이 움트며 마음도 한껏 싱그러워지는 봄날, 학생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현재 한국외대 일본지역학을 전공하며 진로를 준비하는 김수빈 양을 만났다.
반갑습니다.
김수빈(이하 빈) : 네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빈 : 현재 4학기 마치고 휴학 중인 22살 대학생 김수빈입니다.
전공이 ‘일본지역학’이에요. 무엇을 배우는 학문인가요?
빈 : ‘일본지역학’이라고 하면 대부분 모르시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일본어 학과가 많다 보니까 그냥 ‘일본 문학을 배우겠지’라고 생각하시는데, ‘일본지역학’은 일본어라는 수단을 사용해서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배워요. 인문계열 중에서도 사회과학에 가깝고, 일본이라는 지역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능통하시군요.
빈 : 아직은 아닌 것 같아요(웃음).
어떻게 전공을 선택하게 됐나요?
빈 : 저희 학교에 일본 관련 학과 2개가 있어요. 일본 언어와 문학을 중점적으로 배우는 학과와 제가 전공하고 있는 지역학. ‘지역학이 아무래도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조금 더 실용적일 것 같다는 생각에 선택하게 됐습니다.
그럼 일본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빈 : 아무래도 제가 어릴 적에 가족들과 함께 일본에서 살다온 경험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얼마나 지냈나요?
빈 : 5년 정도 살다왔어요. 초등학교 후반에 가서 중학생 때 돌아왔어요.
어린 나이에 5년이면 꽤 길었던 기간이네요. 일본어를 잘 하시겠어요.
빈 : 아직 공부 중이에요(웃음).
일본에서도 학교를 다니셨겠네요.
빈 : 네 일본인 현지 학교를 다녔어요.
가족이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이유가 있었나요?
빈 : 아버지가 일 때문에 먼저 가셨는데 생각보다 오래 계실 것 같아서 가족이 모두 따라갔어요.
처음 일본에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선뜻 가기가 망설여졌을 것 같아요.
빈 : 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불안했던 것 같아요. ‘왕따 되면 어떡하나’라든가.
당시에는 일본어도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겠네요.
빈 : 네. 구몬 일본어를 하면서 히라가나 정도만 외웠죠.
거의 일본에 직접 가서 언어를 배웠다고 해야겠네요.
빈 : 네. 맞아요.
처음에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겠어요.
빈 : 초반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갔으니까요. 한국인 학교를 간 것도 아니고. 일본에도 한국인 학교가 있어요. 그런데 한국인 학교에 들어가지 않고 바로 일본인 현지 학교에 들어갔죠. 제가 또 수줍음이 많아서 처음 6개월 정도는 학교에서 거의 한마디도 안 했어요. 제가 워낙 말이 없으니까 어쩌다가 말을 하면 아이들이 저를 주목하는 거예요. 그게 더 쑥스럽기도 하고 중압감도 심했고.
현지 학교에 들어가기로 한 결정은 본인이 했나요, 부모님께서 제안했나요?
빈 : 선택지가 둘 다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 집에서 한국인 학교까지 거리가 꽤 됐어요. 전차를 타고 나가야 했는데 그러고 싶지 않아서 그냥 집 앞에 있는 학교를 택했죠(웃음).
결국 귀찮음 때문에 현지 학교에 들어갔군요(웃음).
빈 : 가까운 게 좋지 않을까 해서.
본격적으로 현지 친구들과 친해지게 된 시기는 언제부터인가요?
빈 : 대략 6개월 이후였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싫어서 말을 안 하고 살았어요. 6개월 이후부터는 말이 트이고 아이들과 친해졌죠.
(왼쪽부터 일본에서 지냈을 당시 김수빈 양)
일본에서 살다온 경험이 지금의 전공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되었군요.
빈 : 네 재밌었어요. 저는 일본에 있을 때 한자 공부를 좋아했어요. 현지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저는 외국인 입장에서 보통보다 더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어요. 일본에서 한자 시험 급수도 열심히 따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시기는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이 었겠네요.
빈 : 네. 중학교 3학년쯤이에요.
거꾸로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한국 학교에 적응하기도 만만치 않았겠어요.
빈 : 아휴 그렇죠(웃음).
한국 생활과 학교에 적응하는 기간이 또 필요했겠네요.
빈 : 대부분 아시다시피 한국 사람들이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하잖아요. 커리큘럼도 일본과 달라요. 모든 과목이 어려웠어요. 특히 수학이 어렵더라고요. 예를 들어 함수를 배울 때 f(x)의 뜻을 몰랐어요. ‘일본에서도 함수를 배웠는데 왜 한국에서는 다르지?’라면서(웃음). 이런 부분에서부터 차이가 나더라고요. 국어, 역사, 사회 과목이 또 어려웠어요. 처음부터 시작을 해야 하니까.
더군다나 대입을 준비해야 하는 고등학생 시기였다 보니 불안감이 더 컸겠네요.
빈 : 네. 친구들은 토플 책을 보고 있는데 그런 거는 잘 모르겠고 저는 일단 수업부터(웃음).
한국과 일본의 커리큘럼에 차이가 많이 있나 봐요.
빈 : 난이도면에서 차이가 많이 나요. 같은 단원을 공부해도 한국 교육 과정이 좀 더 많이 어렵게 배우죠.
현재는 일어 통번역 작업을 하고 있네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빈 :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교내에 외대 통역 협회라는 단체가 있어서 지원했죠. 그때부터 하고 있어요. 돈을 받는 일이기는 한데 주 업무는 아니고 공부하면서 틈틈이 작업하고 있어요.
통번역 하면 한 단어처럼 들리지만 사실 통역과 번역은 다르잖아요. 어떻게 다른지 설명 부탁드려요.
빈 : 통번역에 대해 깊게 공부해보지는 않았지만 통역은 말로 하는 대화를 번역하는 것이고, 번역은 책이나 문서를 다른 나라의 언어로 나타내는 것.
1학년 때부터 통번역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간 어떤 일들을 했는지 궁금해요.
빈 : 기억에 남았던 통역은 중소기업 사장님들께 통역해준 거예요. 일본에서 기계를 한국으로 수입하기 위한 미팅이었는데 첫 통역이어서 기억에 남아요. 또 한국의 노인정 실태 조사를 위해 외국에서 교수님 두 분이 오셨을 때도 있었어요. 지역마다 노인정을 어떻게 운영하고 각 계층마다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를 조사하는 내용이었어요. 그 통역 때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계층마다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달라서 인상에 남았어요. 최근에는 일본에 가서 했어요. 제가 했던 어떤 통역보다도 가장 어려워서 기억에 남아요(웃음). 학술 대회에서 교수님들이 발표하는 내용을 통역하는 작업이었는데 그 분야가 철학이었어요. 제가 잘 몰라서 사전 조사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들어본 단어가 나오다 보니 많이 막히기도 하고. 가장 어려웠어요.
번역 작업은 어떤가요?
빈 : 통역보다는 번역 의뢰가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처음에는 소설책 초벌 번역도 해봤고, 외국 제품을 한국으로 수입해서 판매할 때 필요한 제품 사용 설명서와 애플리케이션 번역도 했고요. 서신이나 논문 번역도 했었어요.
한국어에서 일본어, 일본어에서 한국어로 번역할 때 차이점이 있나요?
빈 : 대금부터 다르더라고요. 한일(한국어에서 일본어로)이 비싸고 일한(일본어에서 한국어)이 조금 더 싸요. 아무래도 제가 한국인이다 보니까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게 더 쉽죠. 저는 돌이켜보니까 한일 번역을 더 많이 했더라고요. 체감 난이도도 다른 것 같아요. 저는 둘 모두 적당히 좋아해요.
처음 통번역할 때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을 것 같아요.
빈 : 저는 처음 통역할 때 기대감이 컸어요. 처음 통역 때 준비를 따로 많이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평소에 연습을 하고 있었죠.
평소 어떤 식으로 연습을 하나요?
빈 : 제가 들어간 통번역 협회에서 선배들과 통번역 연습을 해요. 선배들이 준비해온 것을 읽어주면 통역해보고, 읽어주면 통역해보고. 섀도잉(Shadowing)이라고 하는데 듣고 바로 통역할 수 있도록 연습하는 거예요. 번역 연습할 때도 장르마다 ‘이럴 때는 이렇게 하는 게 좋다’라는 팁을 선배들에게 배워요.
실전에 나가려면 준비를 많이 했어야 했겠어요.
빈 : 처음이라서 더 열심히 하지는 않았어요. 언어라는 게 안 하면 다시 못하게 되니까.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한 거라서. 지금도 처음 못지않게 연습하고 있어요.
현재 한국어, 일본어가 가능한데 더 배우고 싶은 언어가 있나요?
빈 : 지금 공부하고 있는 언어는 영어예요. 우선 영어 먼저 잘 하고 싶어요. 제가 작년 여름엔가 중국어를 열흘 정도 배운 적이 있는데 저에게는 재미가 없더라고요. 중국어도 한자이다 보니 배우기가 쉽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저랑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억양, 성조가 어려워요(웃음).
아시아 국가 언어에 관심이 많군요.
빈 : 또 하나 배우고 싶다면 유럽 쪽 언어를 배우고 싶어요.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일본 현지 통역 업무 및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 협회에서의 김수빈 양)
추후 진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빈 : 고등학생 때는 통번역사를 꿈꾸기도 했어요. 보통 외국어나 외국 문화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갖는 꿈이 통번역사 또는 외교관이에요. 저도 그랬어요. 생각을 해보니 통번역사가 되려면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해야 하더라고요. 저는 대학원에 갈 의사가 없고, 대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사회에 나가고 싶거든요. 현재는 취업을 하고 싶어요.
본인이 생각하는 길이 있나요?
빈 : 그냥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어요.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게.
그럼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빈 : 제가 아직 취준생은 아니라서 명확하지는 않지만 부전공이 경영학이라 이쪽 분야를 살려서 일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마 영업 분야?
영업 분야 쪽 일을 하고 싶군요.
빈 : 네. 재밌을 것 같아요. 아직 명확히 정해놓은 상태는 아니에요. 학문적으로도 깊게 배워본 적이 없으니까 더 배워보고 싶어요.
대학원 때문에 통번역사의 꿈을 바꿨다고 하셨는데, 일반적인 통번역사의 수입적인 부분도 궁금해요.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수입도 무시 못할 부분이라 진로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빈 : 제가 통번역을 좋아하지만 꿈을 접은 이유는 사회 진출이 늦어지기 때문이에요.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통번역사들도 다양한 것 같아요. 프리랜서 형태로 조금만 버는 분들도 있는 반면 엄청난 연봉을 받는 분들도 있고. 경력도 중요하고 결국 능력이 중요해요. 통역의 경우 동시통역이 가장 어려운데 이 영역은 타고나야 하는 것 같아요. 집중도 엄청 해야 하고.
일본어의 경우 한국어와 어순이 비슷해서 동시통역하는데 그나마 수월하지 않나요?
빈 : 제가 아는 분 중 아랍어를 전공한 분과 이야기를 하면서 들었는데, 일본어는 동시 통역률이 90%가 넘는다고 하더라고요. 아랍어는 50%도 안된다고 하고. 그나마 일본어는 어순이 비슷해서 수월한 것 같아요.
졸업 이후 취업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는데 취업 이후를 바라보며 그리는 꿈이 있나요?
빈 :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웃음). 대부분 사람들은 대기업에서 많은 연봉을 받고 싶어 하는데 저는 그런 편은 아니에요. 모든 일이 다 중요하고 힘든데 꼭 큰 기업, 유명한 기업에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 스스로 욕심이 많은 편이라 막상 취준생이 되면 지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웃음),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서 좌절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들어간 곳,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하려고 해요. 자기만족할 수 있는 회사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소위 커다란 꿈을 꾸기보다는 본인의 자리에서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삶을 원하는군요.
빈 : 큰 회사 들어가는 게 꿈이라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회사에 들어가는 것은 과정 중 하나인데. ‘막상 들어가면 뭐 할 건데?’라고 물어보면 뭐라 대답할지도 모르겠고.
어떤 결과를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빈 : 점점 어려워지는군요(웃음). 뭐 거창한 것은 아니고 그저 행복해지는 삶.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스펙 쌓다가 스트레스받아서 건강이 나빠진다거나 극단적으로는 자살을 하는 인생은 불행하죠.
지금 '내일'을 만나러 갑니다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 본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허가를 받아 작성한 게시물이며 본 글의 저작권은 게시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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