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 이야기
지구 끝에 가본 적 있는가.
몇년 전 언젠가 한국에서 열린 매그넘 사진 전시회를 관람했던 적이 있다. 한마디로 인간애(人間愛), 혹은 휴머니즘을 담은 기록. 인간 존엄이 사라지는 곳을 고발하고 그곳에서 인간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열망을 담은 인간 존엄에 대한 기록. 유독 한 사진이 발걸음을 붙잡았다. 굶어 죽기 직전의 아프리카 아이.
지구 끝에 가본 적 있는가
같이 전시회를 관람한 친구에게 말했다. 내가 하루종일 놀고 먹고 마시고 씻고 잠자는 동안 당장 다음 끼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생사의 고민을 하다 죽어가는 지구 반대편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 생각만으로도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착각했다. 친구가 나에게 되물었다. '그건 동정심(同情心) 아냐?'
NGO 소속 신분이 되어 동정심에 머물지 않고 삶에서 실행하는 한 사람을 인터뷰했다. 지구 끝까지 날아가 그곳의 필요를 보고 듣고, 다시 돌아와 그곳의 참혹함과 일말의 희망을 함께 전해주는 사람. 스스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Bridge)를 놓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4차 산업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시대에 모든 기계가 연결된다 하면서 정작 지구 끝 사람들과 우리는 연결 되지 않았기에. 그래서 다리 놓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물어보고 싶었다. '지구 끝은 어떠합니까?' 월드 비전 신규 마케팅 부서 손제덕 씨를 인터뷰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손제덕(이하 손) : 반갑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손 :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손 : 저는 손제덕이라고 합니다. ‘제’대로, ‘덕’분에의 제덕입니다. 나이는 82년생, 이제 서른여섯 살이 되었습니다. 현재 월드비전이라는 NGO에서 7년 정도 일하고 있습니다.
대중들도 많이 알고 있겠지만 월드비전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요.
손 : 월드비전은 1950년도에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NGO예요. 6.25 당시 한국처럼 어려운 나라를 도와주기 위한 목적으로 밥 피어스(Bob Pierce)라는 창업자가 월드비전을 만들었어요. 지금은 약 100여 개 나라 1억 명을 돕는 NGO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월드비전 내 어떤 부서에서 일하고 계신가요?
손 : 저는 신규 마케팅 부서에 있습니다. 관련된 5개 팀이 있어요. 외부와 소통하는 대외 협력팀, 교회와 일하는 교회 협력팀, 미디어 팀, 기업 팀 그리고 온라인 팀이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팀 간의 구분이 없어져서 기업, 학교, 교회 등과 함께 여러 방면으로 소통하고 있기 때문에 신규 마케팅 부서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요. 대외적인 홍보도 하고 후원을 받기 위해 만들어진 팀입니다.
해당 부서에서 정확히 어떤 업무를 맡고 있나요?
손 : 지금은 아나운서, 개그맨 등 같은 홍보대사 분들, 언론과 소통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1년에 네다섯 번 정도 출장을 나가고 있어요.
사전 질문지를 통해 자기소개를 부탁했을 때 본인을 ‘브리지 메이커(Bridge Maker)’라고 소개했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손 : 어렸을 적부터 다섯 개의 메이커(Maker)를 생각하면서 자랐어요.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어서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해피 메이커(Happy Maker)’, 누군가의 꿈을 찾아주는 ‘드림 메이커(Dream Maker)’, 사람의 내면에 있는 행복과 평화를 찾아주는 ‘피스 메이커(Peace Maker)’, 꿈이라는 가치 너머의 것을 찾아주는 ‘비전 메이커(Vision Maker)’, 웃음을 찾아주는 ‘스마일 메이커(Smile Maker)’.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 일을 해오다 보니 결국 사람이 그 중심에 있더라고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더라고요. 방송국, 기업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면 제가 중간에서 설명을 해야 돼요. 일을 하면서 ‘브리지 메이커’가 저에게 잘 맞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달해주려면 중간에서 내가 가교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브리지 메이커’를 자처하게 됐습니다.
앞서 언급한 다섯 가지 메이커를 생각하게 된 시기 또는 계기가 있었나요?
손 : 어렸을 때 집이 넉넉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항상 제 마음속에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면 웃음을 줘야겠다 생각했어요. TV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그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싶다. 그들을 만나면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나의 아픔들이 있었으니 그 사람들의 아픔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일을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초등학생 때 고민했어요. ‘행복’, ‘꿈’과 같은 단어를 찾아가다가 중학생 때 다섯 가지 메이커를 완성했어요.
보통 초등학생 때는 놀기 바쁜데 큰 생각을 했네요.
손 : 가끔 강연 요청이 들어와서 설명을 할 때면 얼마나 어렵게 살았냐고 물어보세요. ‘어렵게 살았다고 하는데 얼마나 어렵게 살았겠어’라고. 결국 상대적 빈곤인 거죠. 당시 제 또래 친구들 중 어려운 친구들이 많지 않았어요. 당시 청담동에 살아서 잘 사는 친구들이 많기도 했고. 그 당시 반지하에서 살았어요. 화장실도 외부에 있었거든요. 겨울만 되면 화장실 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주먹으로 벽을 치면서 울분을 토하기도 하고. 혼자 방황도 많이 했어요. 그럴 때마다 한강에 가서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좋은 일이 있을 거야. 행복해질 거야’라면서 다짐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외국인들을 찾아다녔어요. 길 기다가 외국인이 보이면 쫓아가서 뭔가라도 하나 더 들으려고 하고. 초등학생 시절에는 이런 기억들이 있어요.
어렸을 적부터 철이 들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네요.
손 : 그렇죠. 저는 스스로 생계형 마케터라고 표현해요. 어렸을 적에 그런 시간이 없었으면 헝그리 정신을 발휘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해볼게요. 대학에서 어떤 분야를 전공했나요?
손 : 대학생 때 영문과를 전공했어요. 중고등학생 시절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초등학생 때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면서 중고등학생 시절에 방황도 많이 했거든요. 남들 다 하는 가출도 하고 비행 청소년처럼 귀걸이도 하고 술 담배도 하고. 그때 생각했어요. ‘내가 뮤지컬이나 연극을 하면서 내 안에 억눌려 있는 감정들, 좋게 말하면 ‘끼'를 분출하면서 풀 수 있지 않을까’라고. 이 재능이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도구가 되려면, 한국 안에서 뿐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하려면 언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뮤지컬을 전공할까 언어를 전공할까 고민했죠. 고민하다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돼서 영문과로 입학하게 됐어요. 원래 영문과가 아니라 중문과를 전공하려고 했어요. 그래도 일단 영어를 먼저 잘 해야겠다 생각하고 들어가게 됐죠.
지금도 계속 영어 공부를 하고 있나요?
손 : 아뇨 지금은(웃음). 원래 목표는 서른다섯 살까지 영어를 마스터하고 중국어로 넘어가려고 생각했는데. 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스무 살 때 제가 돈을 벌어서 처음으로 중국을 잠깐 다녀온 적이 있어요. 그때 북경대 근처에서 한 여학생을 만났어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저는 중국어를 하고 싶었고 상대방은 영어를 하고 싶어 했던 거예요. 계속 이야기를 하다가 제 중국어 실력이 높지 않으니까 결국 영어로 이야기를 하게 됐죠. 그때 그 친구의 영어에 대한 탐구와 노력이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친구가 머리를 안 감은 거예요. 왜 머리를 안 감았냐고 물어보니까 ‘머리 감을 시간이 어디 있어. 공부를 하기에도 바쁜데.’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스무 살의 저에게 충격이었어요. 중고등학생 시절의 삶을 비춰보니 스무 살부터는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어요.
역발상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다르게 바라보기. 일단 영문과에 들어가서 영어를 도구로 삼을 수 있어야 UN과 같은 곳에 들어가 세계를 무대로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언젠가는 해외로 떠나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학교를 계속 옮겼어요. 한 학기 다니다가 그만두고. 한 학기 다니다가 다른 수업을 청강하고. 또 한 학기 다니다가 돈을 모아서 해외로 나가고. 이러다 보니 20대의 거의 8,9년이 학생이었고 계속 해외를 나갔어요.
제가 스물여덟 살 때 아버님이 ‘이제 한국에 들어와서 대학을 졸업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열여덟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16개 나라를 다녀왔거든요. 10년 동안 기다려주셨으니 대학을 졸업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졸업한 후에 한국에 정착을 하게 됐어요.
(위 사진 모두 해외 현장에서의 손제덕 씨)
청강했던 수업 중 해외로 눈을 돌리도록 계기를 마련해준 수업이 따로 있었나요?
손 : 한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집에 들어가지 않았던 적이 있어요. 늦게 공부를 시작했으니 열심히 공부해보자는 마음으로 도서관에만 있었어요. 영어 문법에서 주어, 동사가 무엇인지도 몰랐는데 대학교에 들어가서 공부에 대한 욕심이 생긴 거죠. 실컷 해보자는. 스무 살 북경대에서 만난 여자 학생이 머리 감을 시간도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하루에 세 시간만 자고 공부를 했어요.
유학도 생각을 하면서 장학금 준다는 학교에 메일을 보내보기도 했어요. 3개월 장학금을 준다는 학교에서 답장도 왔는데 그 이후에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거예요. 당시 제가 바로 유학을 갈 수도 있었겠지만 준비를 잘 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러던 도중에 한 교수님이 하시는 세계사 수업을 듣게 됐어요. 처음에는 청강을 하다가 다음 학기에 교수님께 제 사정을 이야기드렸어요. ‘제 사정이 이러한데 교수님 수업을 들을 수 있을까요’라고 부탁을 드렸더니 오케이 하시는 거예요. 같이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도 제가 그 학교 학생인 줄 알고 같이 조별 발표도 하고. 시험 기간에는 시험 안 보고. 친구들이 왜 시험 보러 안 왔냐고 물어보죠(웃음). 결국 학기가 끝났을 때 제 사정을 이야기했죠. 그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다양한 삶을 듣는 것이 좋았어요.
또 다른 수업은 심리학 수업이었어요. 학생들이 앞에 나가서 본인이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충격적이었어요. 이런 계기들을 통해 어떻게 하면 다양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어요. 초등학생 때는 ‘전 세계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 거야’라는 꿈을 꾸었다면, 20대에는 많은 나라들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싶었어요. 청강 수업을 많이 들었던 이유죠. 지금도 습관이 남아서 좋은 영상들을 녹음해서 차 안에서 듣기도 해요.
사람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는 성향이군요.
손 : 네. 처음에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생각했는데 만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일례로 고등학생 때 ‘호텔 분야 일을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요. 장충동에 있는 ’S’ 호텔을 무작정 찾아가서 ‘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인데 호텔 분야 진로를 꿈꾸고 있으니까 총지배인이 와서 상담을 해달라’고 했어요. ‘만나서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어른이 있으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 기회가 오지 않더라도 그런 경험이 나에게 깨달음을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죠. 그때 그 앞에서 문을 열어주시는 분이 문을 열어주실 때 속으로 ‘내가 잘 못 왔고 잘 못 선택했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했어요. 일단 칼을 뺐으니 무라도 썰어야 하니까 프런트 데스크로 갔죠. 리셉션에서 안내해주시는 분께 ‘저는 어떤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인데 매니저님을 보러 왔습니다’라고 설명을 드렸더니 놀라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런이런 꿈을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한 번 더 말씀드렸더니 ‘약속하고 오신 건 아니시죠?’라고 물어보셨어요.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라고 다시 말씀드렸더니 그분도 얼떨결에 전화를 해서 매니저분과 연락을 하셨어요. 사실 안 내려올 줄 알았어요. 내려오시더라고요.
저를 데리고서 프랑스 레스토랑에 데려가시더라고요. 그러고서 셰프를 부르시더니 ‘당신은 몇 개 국어를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보세요. ‘4개 국어를 할 수 있습니다’라는 답변을 들었어요.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제 마음에 ‘요리사가 요리만 잘 하면 되지 왜 4개 국어나 하지?’라는 의문이 있었어요. 매니저님이 다시 ‘왜 4개 국어를 배웠지?’라고 물어보니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요리를 섭렵하고 싶습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전 세계의 요리를 섭렵하려면 언어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하고 여러 청강 수업을 들었던 거예요. 같은 것도 다르게 바라보고, 한 번이라도 더 도전하고,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면 세상도 더 좋아지고 나도 발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16개 국가를 다녔다고 했는데 어떤 나라들인가요?
손 : 스무 살 첫 해외여행을 갔던 나라가 중국이었어요. 그 후에 인도, 필리핀, 몽골, 캄보디아, 태국 같은 동남아시아에 갈 기회가 많았어요. 그리고 학교에서 나갈 기회가 생기면 일단 신청하는 거죠. 꼭 가야 된다면서. 여기서 생계형 마케터가 또 나오는 거죠. 어떻게 하면 당첨될 수 있을지 사전 조사해요. 이전에 당첨돼서 다녀왔던 사람들, 관련된 교수님들을 찾아가서 계속 물어봤어요. 그러다 보니 운이 좋게도 모두 당첨됐어요. 돈이 없어서 포기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될 수 있는 방법들을 다 시도해보고 최선을 다한 후에 안되면 내려놓겠다고 생각했어요.
여행에는 여러 목적이 있는데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해외를 다녔나요?
손 : 아까 말씀드렸던 바와 같이 친구를 만드는 거였어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좋은 모습을 배우고, 나쁜 것들은 닮지 않아야겠다는. 세상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들을 접하고서 내 속에 있는 편견을 허물고 의식을 전환하기 위한 친구들을 만드는데 목적이 있었어요.
(위 사진 모두 몽골에서 봉사하는 손제덕 씨)
20대에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가장 중요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손 : 음. 어려운 질문이에요. 10대의 삶에도 방향성이 있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데 저는 발펙이라고 표현해요. 발로 직접 찾아가 보는 시도와 경험. 긴 여행이죠. 분명 얻는 것이 있겠지만 의사결정이 필요하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여러 외부의 환경 때문에 못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결론적으로 제가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바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파악하기 이전에 나 자신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됐어요. 두 번째로는 만난 사람들의 장점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는 점. 생각보다 배우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상대방의 좋은 점을 받아들이려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나의 좋은 점을 버려야 할 경우도 생겨요. 이 둘을 어떻게 융합해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투자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당시 한 고아원 원장님을 우연찮게 만났어요. 원래 유명한 교수님이었는데 교수직을 내려놓고 고아원을 차리신 분이에요. 옥상에 저를 데리고 가셨는데 정말 밑 빠진 독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깨진 독 아래에 모래와 꽃이 있는 거예요. 그때 ‘아 밑 빠진 독은 단순히 밑 빠진 독이 아니라 물을 흘려보내면서 꽃을 피울 수도 있구나’를 깨달았어요. 내가 만난 사람들, 걸어왔던 길이 헛되지 않았구나.
20대에 만난 사람들, 30대에 만난 청소년들과의 만남을 떠올려보면 제 안에 숨겨져 있던 어려운 이야기들에 대해 더 솔직해진 것 같아요. 때로는 혼란스러웠어요. ‘어떤 모습이 나인 거지?’라며. 그동안 선천적인 모습만 ‘나’라고 생각했는데 후천적으로 좋은 모습들만 닮으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힘들었어요. 양서(良書)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솔직하고 정직하게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해요. 이런 부분들을 배웠던 시간이었어요.
거울을 보듯이 자기 자신을 발견해가는 과정이었군요.
손 : 네. 20대는 어찌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기 위한 돌파구였을 수도 있어요. 거울이라기보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또 있구나’를 발견하는 과정. 사과 하나를 깎아도 어떤 사람은 절반을 잘라서 깎을 수도 있고 아예 껍질을 깎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깨달으려고 했어요.
이런 배움을 가지고 한국에 오면 한국은 그대로인데 저는 달라져 있어요. 사실 되게 힘든 일이에요. 외국에서는 나에 대해 깨닫고 솔직해질 수 있었지만 한국의 경쟁 사회로 다시 돌아오면 솔직하기도 어렵고 지혜롭게 진솔해야 했어요.
지금도 멋진 사람들, 좋은 책들과 이야기들을 더 알고 싶어요. 다만 20대는 경험으로 접근했다면 30대는 경험보다는 미리 넓은 혜안을 가지고 삶 전체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요.
여러 나라, 다양한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는 여행을 위해 자신의 편견을 극복하고 무비판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손 : 항상 오픈 마인드라고 저는 이야기해요. 아까 거울로 표현을 해주셨지만 거울에 비춰보면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게 돼요. 그저 다른 사람의 장점을 찾아내고 배우려는 거죠. 배움을 위해서는 목적이 없어야 해요. 지금까지 총 37개 나라를 다녀왔는데 그때마다 마음속에 큰 목적을 가지지 않고 한편에 공간을 마련해두고 여유를 즐겼어요. 큰 어려움이 와도 즐길 수 있고, 좋은 점들은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상대방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말을 해주더라도 다시 한번 꼬아보기도 해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면 분명 그 사람들이 살아온 환경과 과거가 있어요. 아픈 과거일 수도 있죠. 매우 공격적인 사람이 있었는데 예전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이해가 갔어요. 같이 웃어주고 울어주고 아파하는 것이 중요해요. 결국 공감이에요. 처음에는 그저 마음을 여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얼마큼 마음을 열 수 있는지 깨닫게 돼요.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봤을 때 마음이 말랑말랑한 상태면 남을 포용할 수 있고, 화가 나고 많이 바쁜 상태면 여유가 없어지는 거죠.
이런 나의 상태를 돌아보면서 지금 여행을 가야 할 때인지, 사람을 만나야 할 때인지, 마음을 열 수 있는 때인지 민감하게 확인하려고 해요. 나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다른 사람이 힘들어할 때 가식적으로 ‘힘들지?’라며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공감해줄 수 있어요.
영문과가 사실은 각 캐릭터 분석을 하는 학과예요. 고전 문학에서 삶을 미리 살았던 인물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볼 수 있으니 제가 좋아하던 뮤지컬, 또 다른 살아보고 싶은 호기심, 언어, 사람들과의 만남과 연결되더라고요. 결국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이 답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 주위 사람들과도 이에 대한 내용을 공유하고 있어요. ‘브리지 메이커’라는 호칭도 사람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재밌게 살고 싶다는 의미로 지은 직함이에요.
지구 끝 다리 놓는 NGO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 본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허가를 받아 작성한 게시물이며 본 글의 저작권은 게시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지구 끝 다리 놓는 NGO 손제덕 씨와 Jeduck_son@worldvision.or.kr 을 통해 연락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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