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촌토성 인터뷰 11-2] 지구 끝 다리 놓는 NGO

지구 끝 이야기

by 이시용

* 앞선 인터뷰를 먼저 읽으면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합니다(클릭 시 앞선 인터뷰로 이동)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브릿지 메이커’라는 역할이 본인뿐 아니라 상대방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많이 들어야 할 것 같네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것 같아요.

손 : 얼마 전 읽었던 책에서 세상의 본질에 대해 재조명해보자는 내용이 있었어요. 비(非)본질이 본질이 되려면 고정되어 있던 것들의 틀을 깨라고 이야기해요. 어찌 보면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하겠지만 에너지의 동력원이 되는 사람들과 어떻게 만남을 가져야 할지 생각하지 않으면 좋은 통찰력을 얻기 어려울 수 있어요. 사람들과 만나면서 웃고 울었던 기억들이 쌓여서 나중에는 자산이 되고 힘이 되더라고요. 나이가 많든 적든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귀중한 자산이 돼요.


한국 사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며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성향이 강하죠. 매일 야근에 지치고 인간관계에 지쳐 항상 피로한 상태이다 보니 ‘정신적 지름길(Mental Shortcut)’을 찾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한국 사람들에게는 ‘브릿지 메이커’의 역할이 더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손 : 내부적 에너지보다 외부적인 환경에 대해 더 많이 신경 써야 해서 힘든 거잖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해 조심스러워하는 태도가 있어요. 그렇다고 청년들에게도 눈치 보지 말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어요.

예를 들어볼게요. 어떤 식당에 가서 ‘얼마예요?’라고 물어봤을 때 가게 사장님이 그냥 ‘만원입니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식사는 괜찮았나요? 불편한 점은 없었나요?’라고 되물어 볼 수 있죠. 그럴 때 나도 ‘사장님 정말 잘 먹었어요’라고 하면서 계속 대화를 만들어 가기도 하고. 제가 언어유희를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대화가 즐거워요.


저도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압박감을 계속 테스트해요. 사회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제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심지어 저희 회사 사장님한테 메일을 보낸 적도 있어요. 그분에게서 메일이 돌아올지 안 돌아올지 모르지만. 간혹 몇몇 유명인들에게도 메일을 보내요. 답변이 어떻게 오는지 확인하고. 일단 제 스스로가 도전했다는 사실에 점수를 줘요.

처음에는 외부의 시선을 신경 쓰기도 했지만 지혜롭게 신경을 쓰려고 노력해요. 또는 진솔되게 내가 어떠한 연유로 진행하게 됐는지 정리해서 설명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해요. 당장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때에도 나중에 시간을 내서라도 소통을 하려고 하죠. 어떤 때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타인에 의해서 힘들 때도 있지만 짧고 굵게 생각하죠. 깊게 생각해야 하는 문제는 해외로 출장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 문제는 이렇게 해결했으면 어땠을까’ 되짚어 보면서 제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고 있어요.


월드 비전 해외 현장에서의 손제덕 씨


‘지혜롭다’는 표현이 ‘융통성 있게’라는 말과 의미가 비슷한 것 같아요. 각 상황에 따라 최적의 선택을 내리는 방향.

손 : 한국에서는 융통성 있게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영리 기업에 있다면 더 통통 튀는 아이디어도 실행해 볼 수 있었겠지만 NGO에서는 일이 더 안 되는 경우가 있어요. NGO라면 NGO 답게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회사에서도 제가 건물 계단마다 사진을 붙였던 적이 있어요. 1층에는 한 명, 2층에는 두 명, 10층까지 여러 아이들이 나온 사진을 찾아서 붙여놨어요.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 본인이 몇 층에 있는지 사진을 보고 알 수 있도록 한 거예요. 이렇게 했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궁금했던 거죠. 그때 회사 안에 소문이 나서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을 한 사람으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소개됐어요. 그때 누군가가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포장해서 잘 하지’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저는 그저 사람들에게 어떤 층인지 알려주기 위한 퀴즈를 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이제 다음번에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과 제가 하고 싶은 방법을 둘 다 해보면서 테스트해보겠죠.


융통성이라기보다 지혜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솔직해야 돼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면 가장 좋고. 그 표현이 어려운 나이가 30대 중반이에요.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가요. ‘저 그거 싫어요’, ‘그건 안돼요’가 먼저 나오는 거예요. 이런 부분들을 발견하다 보니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을지 스스로 채근질 해가고 있어요.


‘유머’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계단에 사진을 붙여 층 수를 알려주려는 의도가 ‘유머’로 다가갈 수 있을 텐데 현시대는 ‘유머’조차 ‘스펙’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손 : 그렇죠. 처음에는 재미로 만들다가 나중에는 마케팅이 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사람들이 선한 의도로 바라보지 않고 ‘이 사람은 저런 의도로 했을 거야. 승진하려고. 성공하려고. 잘 보이고 싶어서.’라고 바라볼 수 있죠.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서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해외에 나가서 똑같은 일을 하면 뒤돌아서 어떤 말을 할지는 몰라도 그 앞에서는 온 맘 다해 리액션을 해주거든요. 개인 안에서는 순수한 동기가 있고 외부에서는 사실을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는 문화가 생겨야 한국 사회가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은 포인트에서 이뤄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이슈화 됐던 것처럼 작은 노력이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20대 시절부터 현재까지 해외 많은 국가들을 다녀 봤기 때문에 해외에 나가서 어떤 부분들을 중점적으로 보면 도움이 될지 알고 있을 것 같아요.

손 : 가벼운 마음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저는 해외에 나갈 때 캐리어의 1/3만 채워가자고 주장해요.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물론 유학이나 이민의 경우는 다르겠지만 일반 여행을 나가면 알 수 없는 변수들이 생겨요. 강도를 만나거나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생겼을 때 이런 것들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상황에 따라 ‘에이 돈만 날렸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Carpe diem(카르페 디엠, Seize the day ;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이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순간을 즐길 수 있게끔 사고하는 훈련이 필요한 것 같아요. 갑자기 누가 오거나 사고가 생기면 부담스러운 거예요. 사실 저도 그런 편인데 해외 한복판에 떨어졌을 때부터 선택의 연속이거든요. 그 선택들이 즐거울 수도 있지만 힘들 수도 있죠. 결국 목적지까지 가게 돼요. 방향이 중요한 거죠.

본인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 곳 이 곳은 꼭 갔으면 좋겠어’, ‘이것만은 꼭 먹었으면 좋겠어’라든지. 그러면 날씨가 바뀌든 상황이 바뀌든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다녀올 수 있을 거예요.


중동 여행 중 손제덕 씨


방금 해주신 말에 저를 투영해보니 저도 예전에는 세세하게 일정을 짜는 편이었네요. 더불어 어느새 여행도 일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손 : 맞아요. 저도 처음에는 세세하게 짜다가 요새는 그렇지 않은 스타일이에요. 지금은 적절하게 혼합하죠. 첫째 날, 셋째 날 일정은 세세하게 짜고, 둘째 날, 넷째 날 일정은 느슨하게 짜는 식으로. 범퍼(Bumper)를 주는 것 같아요. 첫째 날 가득하게 일정을 소화하다가 못하는 부분은 둘째 날로 넘기면 되고, 첫째 날 모든 일정을 다 소화했으면 둘째 날에 셋째 날 일정을 당겨오면 되고. 이렇게 유연하게 하고 있어요.

어떤 때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 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한 나라만 여행하기도 하고. 하루는 오른쪽 길로 갔다면 다음 날은 왼쪽 길로 가고, 또 하루는 호텔 뒷길로 나오기도 하고. 만약 버스를 잘 못 타서 길을 잃어버리면 꼭 한 번은 예전에 무작정 갔던 길을 만나게 돼요. 웬만하면 한 번 갔던 길로 안 다니고 시간이 허락된다면 다양한 길로 다녀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는 있지만 어떤 맛집이 있고, 어떤 예쁜 건물이 있는지 다 알게 되면서 소소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어요.


월드 비전을 직장으로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손 : 제가 어렸을 때 삶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돈을 많이 벌고 싶기도 했죠. 지금도 유효해요. 지금도 돈을 많이 벌고 싶은데 그전에 나에 대해 더 알고 싶었어요. 초등학생 때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었고, 20대에는 10개 나라 이상 다녀오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운이 좋게 16개 나라를 다녀올 수 있었고, 28살에는 미국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미국에 있는 친구가 3개월간 본인 집에 머물 수 있도록 도와줘서 이루었고. 3개월 간 친구 집에 머물면서도 선택해야 했어요. 랭귀지 스쿨을 다니면서 공부를 할지, 다른 배울 거리를 찾아 배울지, 여행을 할지. 결국 문화를 배우기로 했어요. 그 당시에도 밤새도록 일하면서 돈을 벌었거든요. 인디언 마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길래 주최 측에 찾아가서 ‘저는 이런이런 사람인데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수당을 받고 싶다’라고 이야기하고 3주 동안 일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 돈을 모아서 배낭여행을 다녔어요.


그렇게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니까 벌써 20대 후반인 거예요. 원래 UN에서도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계속 해외로 나가려는 갈망이 있었죠. UN에 입사하는 조건을 살펴보니 석사 이상이어야 되는 거예요. 학업을 진행하려면 1년에 8,000만 원에서 1억 원이 들어요. 당시 돈이 없었으니 한국에 들어와서 돈을 벌고 다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돈을 벌 생각으로 한국으로 다시 들어왔을 때 제 형이 아버지 사업을 돕기 위해 필리핀에 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필리핀으로 다시 나갔어요. 당시 아버지 사업장이 필리핀 민다나오라는 지역에 있었는데 그곳에 계엄령이 선포된 거예요. 그때 개인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어요. 여러 나라를 다녀온 후 어떤 일을 할지 방향이 설정되지 않은 상태였던 거죠. 필리핀에 가서도 ‘내가 왜 전쟁이 일어나는 국가에 가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삶의 좌표를 잃어버렸고. 이제 스물아홉 살이 되고 졸업까지 한 학기 남은 상태에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직업을 선택할 것이냐, 사람을 직접적으로 위하는 일을 선택할지 다음 진로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한 상사(商社)와 월드 비전 총 두 군데 이력서를 내서 두 곳 모두 합격을 했어요. 먼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보기로 결심했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저에게 그 일이 잘 맞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저희 형은 반대를 했지만 결국 지금 월드 비전에 들어와서 사람들을 살리고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TV에서 나오는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는데 지금 제가 그 일을 하고 있어서 행복해요.


어떤 강의에 나가서 저의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안성에 있는 고3 친구 한 명에게 메일이 왔어요. 본인 집에 빚이 7억 있었는데 아버지가 비닐하우스를 운영하며 그 빚을 다 갚은 후에 본인은 살 의미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본인의 삶을 마감하려고 했는데 제 이야기를 듣고 아프리카 아이들의 영상을 보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되어 삶을 마감하지 않았다고. 그 메일을 보고 정말 감사했어요. 이렇게 답장을 보냈어요. ‘나도 그동안 나름대로 가치관을 정립하면서 훈련해왔음에도 30살이 되어서야 솔직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너는 고3의 나이에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모습이 멋있다. 언젠가 우리가 만날 수 있으면 다시 꼭 만나자. 서로 열심히 살아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주인공이 되어 다시 만나자’라고. 6개월 뒤 다시 강연에 초청받아서 메일의 주인공을 만났어요.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또 기쁨이 생기더라고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일인지 계속해서 깨닫고 있어요.


20대에 여행으로 여러 나라를 다녔을 때와 월드 비전 소속으로 해외를 나갔을 때의 관점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어떤 차이점이 생겼나요?

손 : 저는 20대부터 지금까지 인생을 1기, 2기, 3기로 표현해요. 1기에는 여행도 많이 하고 봉사활동도 많이 했어요. 그때는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몰랐다면 월드 비전에 들어온 후 2기부터는 최전방에서 사람들과 공감하고 아파하는 기간이었어요. 그들에게 필요한 건 누군가가 날 위해서 와주었고 그들이 본인들에게 희망이 되었다는 사실이에요. 돈도 필요하지만 희망이 필요해요. 매몰된 사고 현장에 있는 사람도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이 없으면 금세 힘들어지거든요.

2기에는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봉사를 했어요. 경비 아저씨들에게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물어보면서 찾았어요. 찾아가 보니 그분들 상처가 너무 컸어요. 예전에도 도와줄 것 같았지만 안 도와줬고, 인터뷰만 하고 끝나고, 힘든 속내를 매번 똑같이 이야기하고. 일종의 상품이 되어버렸죠.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적재적소에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어야하는지에 대한 솔직함과 방법이에요.


(왼쪽부터 월드 비전 현장에서의 손제덕 씨)


많은 수의 어려운 친구들과 후원자들을 매칭 시켰지만 힘들 때가 있어요. 아이들을 촬영하려고 갔더니 그 전날 하늘나라로 갔던 경우. 저희도 많이 괴롭고 힘들었어요. 그 자리에서 묻고 와야 하는데 집까지 가져온 거예요. 그러니 저도 힘들고 각자의 가정도 힘들고. 매너리즘에 빠지더라고요. 주위 사람들이 힘들어지니까 내 마음이 정말 강하거나 긍정적이거나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제가 처음 월드 비전 들어와서 해외 출장을 갔을 때 가장 두려웠던 것은 이 아이들을 다시 못 본다는 거예요. 그곳에 가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돼요. 촬영이나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와요. 현지 월드 비전 직원분들을 통해서 약을 사주고 오거나 병원비를 주고 와요.

3기에는 조금 여유가 생기다 보니 집 보수, 화장실 만들기, 먹을 것, 약, 병원비를 위해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을 후원금 모금에 동참시킬 수 있을지 인식 개선에 힘써요. 그러다 보니 10대, 20대, 30대까지 쌓아온 노하우들을 이제야 발휘할 수 있게 됐죠. 이제는 제가 가면 현지 분들도 좋아해요. 서스름 없이 웃고 울고 먹고.


일반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때도 도와줘야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자금은 한정되어 있기도 해요. A와 B 중 한 집을 도와줘야 할 때 A라는 한 가정만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라면 B를 위해서 끊임없이 또 다른 후원자들을 찾아줘야 해요. 50만 원, 100만 원이라도. 물론 택도 없는 금액이지만 노력을 해야죠. 아직도 착한 사람들이 많은데 몰라서 못 돕고 있거든요. 그런 분들을 더 찾아서 연결시켜주려고 일부러 오지랖을 부려요. 후원해주려는 사람이 있고 기업이 있다고 공유하고 소통하려고 하죠. 그런데 일이 점점 많아지고 출장도 잦다 보니 이런 기회를 놓치게 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계속 부족함에 시달리게 돼요. 도움을 기대했던 분들도 실망하게 되고.


그래서 약속을 잘 안 하게 돼요. ‘저희가 도우러 다시 올게요’, ‘또 올게요’라고 말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의 전부라 죄송합니다’라고 말씀드려요. 3기에 와서는 그분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을 드리며 소통하고 마무리하는 것을 중요한 포인트로 잡았어요. 이제는 7년 차가 되어서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정말 어려워요. 비행기 타는 것도 힘들거든요. 1년에 네다섯 번씩 타면 몸도 아프고 먹는 것도 잘 못 먹고.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살쪄서 오냐고 하지만 현지에 가면 저희 직원들만 잘 먹고 오는 것도 미안해요. 그렇다고 안 먹으면 힘이 안 나니까 다음날 촬영을 못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오면 그 사람들이 그립고, 미안하고. 그분들에게 단기적으로만 해줄 수 있으니까. 어떻게 하면 장기적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내가 비즈니스를 통해 돈을 많이 벌어서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하지만 NGO로서 한계가 있죠. 그럼에도 아직 젊으니까 어떻게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도 많이 해요. 국내에서는 여러 어려움들도 있지만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부터 먼저 찾아가서 해외 현지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 끝 다리 놓는 NGO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 본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허가를 받아 작성한 게시물이며 본 글의 저작권은 게시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지구 끝 다리 놓는 NGO 손제덕 씨와 Jeduck_son@worldvision.or.kr 을 통해 연락이 가능합니다.






------------------------------------------------
몽촌토성 인터뷰이의 아이템은
쉼, 여유, 소소함, 깨끗함을 위한
휘게(Hygge) 셀렉샵 '숄든'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http://storefarm.naver.com/skjolden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