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촌토성 인터뷰 11-4] 지구 끝 다리 놓는 NGO

지구 끝 이야기

by 이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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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와중에도 대학원을 다니며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공부를 시작했나요?

손 : 어떻게 보면 저의 삶이 재밌기도 하고 쉽지 않은 삶이기도 했어요. 상대적 빈곤에 놓이기도 했었고. 예전에 정우성 씨가 ‘부모님이 가난하셨지 내가 가난하지 않았다’라고 했던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내가 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어요. 시간이든 돈이든 가치든. 해외를 많이 다니다 보니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학비를 알아보니 비싸서 고민하던 차에 지금 다니는 대학원에서 장학금을 주더라고요. 학기를 시작했죠.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다양한 사람들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론적으로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글로벌 거버넌스(Global governance), 즉 거버먼트(Government)가 아닌 시민 사회가 도래하기 위한 인식개선을 하려면 저도 더 공부를 해야죠. 굳이 어려운 용어를 써야 하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분명히 전문적인 용어가 필요할 때가 있어서요. 이런 이유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도태되고 싶지 않았어요. 이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어요. 학교에 들어가 보니 일을 하면서도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가정과 일과 학업을 조율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대학원에 들어간 지 얼마나 됐나요?

손 : 한 학기 보냈습니다. 2017년부터 다니고 있어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인데 어떠한 실질적인 도움을 얻었나요?

손 : 인권, 성, 환경, 시민 사회에 대한 부분을 많이 듣고 배웠어요. 사업적인 부분과 마케팅적인 관점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생각들. 간호사도 계시고 현지에서 사업하시는 분, 저처럼 NGO, 미디어 업계에 계신 분들이 함께 모이니까 여러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어요.


철학적인 질문을 하겠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여러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봤으니 ‘인간(人間)’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인간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나요?

손 : 인간의 사전적 의미는 자유와 평등이에요. 영어로 Human rights(인권, 人權).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죠.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 것. 먹고 말하고 표현하고 즐기고 생리적인 욕구까지 해소할 수 있는 권리. 그런 자유조차 없고 평등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다워야 한다는 상투적인 말에 그치면 안 돼요. 대내외적으로 인프라를 포함해 많은 것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돼요. 장기적인 시각도 중요하지만 단기적으로도 사람 사이의 존중이 필요해요. 배려해주고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것을 시간, 먹을 것, 선물로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잖아요. 서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앞서 휴먼 브랜드(Human brand)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손 : 마침 요즘 브랜딩에 관련된 책을 읽고 있어요. 저에게 ‘손제덕’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거예요. ‘이 친구는 적어도 솔직해. 이 친구는 어떤 분야를 잘 해.’라는 캐릭터가 드러나는 거죠. 옷에도 상표가 있듯이 각 사람마다 브랜드가 붙어있는 거예요. 그 사람이 잘할 수 있는 것, 잘 하고 싶은 것, 조금만 용기를 북돋아 주면 잘할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죠. 각자의 휴먼 브랜드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 역시 다른 사람들의 영상, 책 등을 통해서 배웠던 것처럼 그 사이의 브릿지 역할을 해주고 싶어요. 제 영역이라면 제가 할 수도 있고, 다른 분야에서는 또 다른 사람들이 해줄 수도 있고. 이런 사람들이 협력해서 조화를 이루면 좋겠어요. 저도 제가 경험한 현장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옷가게에 가면 서로 좋아하는 디자인이나 색이 다르잖아요. 마찬가지로 각자 좋아하는 유형의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계절에 바뀌면 고르는 옷이 다르듯이 좋아하는 사람도 계속 바뀌죠. 우리도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만나고 교류하는 사람들이 바뀌고. 세상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각 사람들의 장점을 배울 수도 있죠. 이런 배경에서 휴먼 브랜드를 이해하고 있어요.


이런 가치관이 담긴 에피소드가 과거에 공부방 아이들과 같이 무대에 섰던 이야기 같아요. 정확히 어떤 내용의 활동이었나요?

손 : 원래 저는 중고등학생 때 뮤지컬이나 연극을 준비했어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공부방 아이들의 창작 뮤지컬 대본을 썼던 적이 있어요. 가출을 했거나 삶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던 곳이었는데 3개월간 연습을 해서 무대에 올렸어요. 노래를 찾고, 노래를 만들고, 세션팀을 모아서 순수 창작 뮤지컬을 만들어서 아이들을 무대에 세웠어요. 자신감을 찾아주기 위한 방안, 공부방을 운영하기 위한 재원 마련을 목적으로 진행했어요.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어요. 주인공을 맡은 친구인데 한 달 동안 가출해버린 거예요. 결국 나중에 돌아오게 됐고, 무대에 올라갔어요. 잘 진행하고 있다가 이 친구가 대사를 까먹은 거예요. 그때 ‘저 대사 까먹었어요. 이런 것도 재밌지 않아요? 박수 한 번 주세요’라고 능청스럽게 다음 대사로 이어가더라고요. 인생에서 한 번 밖에 볼 수 없는 무대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활동들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고 즐기고 알린다면 인생에 의미 있는 일들이 더 많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 소식을 듣고 한 기자분이 찾아와서 기사로 나가게 됐죠.


같이 참여한 아이들에게도 인생에 단 한 번 있을 소중한 경험과 추억이 되었겠네요.

손 : 네. 나중에 연극이 끝나고 아이들이 이야기하더라고요. 본인들에게 꿈이 없었는데 이 경험을 통해서 자신감이 생기고 꿈이 생겼다고. 얼마 전에 참여했던 아이들 중 한 친구가 자동차 정비를 열심히 배워서 본인 사업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어요. 이 친구들도 벌써 이십 대 중후반이 되었을 거예요 지금. 나중에 저를 포함해 서로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 밥 한 끼 먹으면서 계속 연락하며 지내고 싶어요. 이런 관계들을 더 많이 만들어 가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더 잘 되고 싶어요.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가 봤던 다큐멘터리 중에 간삼건축의 김자호 회장님을 다룬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신발도 일부러 거꾸로 신어보고, 넥타이도 일부로 거꾸로 매 보면서 여러 관점의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를 느꼈어요. 아들한테 사업을 물려줄 법도 한데 경영을 잘 하는 사람에게 경영을 맡기는 모습을 보면서 또 멋있다고 느꼈죠. 그분의 가치관이 궁금했고 멘토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그런 모범이 되고 싶어요.


월드 비전 해외 현장에서의 손제덕 씨


아이들, 청소년에 대한 가치관도 궁금합니다.

손 : 어렸을 적 넉넉지 않은 형편에 생일 파티를 한 적이 한 번 있어요. 그 당시 저희 형이 집에 누구 초대하는 것을 싫어했던 기억이 있어요. 반대로 저는 오기가 있어서 친구들에게 ‘너희가 한 번 놀러 와 봐. 나는 가난하게 사는 것 아무렇지 않아’라며 초대했죠. 막상 초대하고 나니까 정말 창피했어요. 장롱 문 하나로 독립된 공간을 만들어야 할 정도였어요. 아이들이 어머니가 해준 밥을 먹는 동안 몰래 다른 곳에 가서 울었어요. 친구들을 초대한 이유는 내 마음속에 가난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거죠. '내가 꼭 성공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리라’ 마음먹었어요. 지금도 그 꿈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조금씩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어요.


고등학생 때도 일화가 있어요. 선도부장으로 선출이 됐는데 제가 귀걸이를 하고 갔어요. 학생부장 선생님이 ‘선도부장이 귀걸이 하면 어떡하냐’라고 하셨을 때 ‘선도부장이 귀걸이 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 같아요’라고 했죠. 당시 선생님은 혼을 내셨고 저는 오히려 더 강력하게 제 의견을 주장했어요. 선생님들이 친구들을 때릴 때도 ‘선생님. 아이들을 때리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고 했어요. 몇몇 친구들은 자퇴하기도 했거든요.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보면 가슴이 설레고 떨려요.


초등학생 때 어려웠던 시절, 중고등학생 때 가출했던 기억들을 토대로 어렵고 힘든 아이들이 저를 찾아오면 그렇게 그 친구들이 좋아요. 25살이었던 그 당시로부터 10여 년이 지났는데 적어도 지금까지는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저 자신에게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프리카에 가면 그들의 손을 한 번 더 잡아주고 싶고, 한 번 더 안아주고 싶어요. 별거 아니지만 비눗방울 기구, 풍선 같이 재미있어하는 도구가 있으면 주고 오고 싶어요. 한 번은 모잠비크에서 고아가 된 4남매를 만난 적이 있는데 첫째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 ‘오~’였어요. 막내는 8개월밖에 안된 아이였는데 아픈 상태더라고요. 그런데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촬영을 해야 하는 거예요. 아이가 열이 많이 나기 때문에 두려웠죠. 예방 가능한 감기나 말라리아 때문에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빨리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럼에도 촬영을 하겠다는 거예요. 저는 ‘이 아이 지금 병원에 안 보내면 촬영하지 않겠다. 회사를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이 아이가 먼저입니다.’라고 했죠. 결국 병원에 다녀오고 촬영을 했죠. 사실 촬영하는 모두가 서로의 진심을 알죠.


첫째 아이가 촬영이 끝나고 묻더라고요. ‘너희는 어느 나라에서 왔어?’라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모를 테니 ‘아시아에서 왔어’라고 하니까 ‘왜 왔어?’라고 다시 물어봐요.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그동안 질문을 하다가 질문을 받으니까. ‘그냥 너를 만나고 싶었어. 누가 소개시켜줘서 너희가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왔어. 나도 어렸을 적에 힘들었는데 어른이 되어서 이런 일을 하고 있어. 그냥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라고 했더니 ‘오~’ 하더라고요. 가만히 지켜보니까 이 아이가 가장 기쁠 때 하는 표현이 ‘오~’인 거예요.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너를 위해서 기도해줄게’라고 했어요. 눈물이 많이 나더라고요. 이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큰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제가 가져간 자그마한 티셔츠를 막내 에드워드에게 입혀줬는데 정말 예쁘더라고요.


첫째 아이에게 막내가 나중에 커서 뭐가 되었으면 좋겠냐고 물어봤어요. 그 아이가 저에게 ‘너처럼 월드 비전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라고 하는데 미치겠는 거예요. 어떻게 그런 예쁜 말을 할 수 있는지. 둘째와 셋째에게 물어보니 꿈이 딱 두 가지예요. 선생님 아니면 드라이버. 자기들이 본 직업이 두 가지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새로운 사람이 와서 새로운 직업을 보여준 거예요. 다른 사람을 돕는 또 하나의 역할이 있다고. 약속은 못 했지만 언젠가 모잠비크에 가게 되면 더 많이 안아주고 먹을 것도 같이 나눠 먹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들어보니 NGO맨만이 느낄 수 있는 가치네요.

손 : 네 맞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처음 NGO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요?

손 : 저희 아버지는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요. 외국에 나가 살아도 되고 외국 사람이랑 결혼해도 되고 제가 무엇을 하든 다 오케이 하셨어요. 어머니도 나중에 알고 보니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는데 아버지가 워낙 개방적이시다 보니 제가 공부를 더 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셨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저는 떠납니다. 몇 달 뒤에 돌아오겠습니다. 저를 찾지 마세요’라고 편지를 써놓고 새벽 4시에 나와 여행을 다니기도 했어요. 가족들의 지지가 있었죠. 언젠가는 제가 돌아오니까. 그리고 계속 성장하는 모습들을 보여줬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항상 ‘너는 말을 너무 잘 해. 말로는 너를 이길 수 없어. 가치에 대해 항상 맞는 말만 해.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만 살아갈 수는 없어’라고 하셨어요. 그 뒤부터는 부모님께 너무 논리적으로 다가가지 않고 그분들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다가갔던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저를 계속 지지해주셨으니까.


결혼도 하셨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나 됐죠?

손 : 3년 됐어요. 3년 동안 해외에 다녀온 지 15번 정도 돼요. 아내가 그 기간 동안뿐만 아니라 연애하던 시절에도 많이 힘들었어요. 너무 미안해요. 저희 아버지와 형이 해외에 계셨다가 아버지가 몸이 좋지 않은 상태로 돌아오셔서 온 가족이 함께 살아야 하는 상황이 돼서 아내가 더 힘들었죠. 지금이야 아내가 극복해줬지만 그 당시에는 어서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 방법이 돈인지 시간인지 아내에게 더 공감하는 모습인지 고민을 많이 했죠. 그리고 아내 뱃속에 아이가 생기다 보니 아이에게 떳떳한 아빠가 되고 싶더라고요. ‘우리 아빠는 아프리카에 가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줘’라며 자랑스러운 아빠도 좋지만 ‘우리 아빠는 어떤 사람들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앞에서는 행동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가족들이 지원자예요. 아내에게 먼저 물어봐요. 아내가 오케이 하지 않으면 가지 않는 것이 제 원칙이 됐죠. 그동안 많은 나라를 가봤기 때문에 다른 나라 더 안 가봐도 돼요. 이제는 가족과 함께 갈 수 있는 여행 또는 출장을 기대하고 있어요.


결혼을 하면 아내와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게 되는데 직업과 관련하여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손 : 아내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에요. 바이올린을 전공했어요. 그러다 보니 귀가 트여있는 사람이라 톤 앤 매너(Tone & Manner)에 대해 민감해요. 제가 말을 빨리하거나 흥분하면 높낮이가 달라지는데 아내 덕분에 훈련을 했어요. 톤을 낮추고 천천히 말하도록 연습했어요. 그리고 결론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법. ‘좋은 것은 좋은 건데 그래서 뭐?’라고 물어봐요. 굉장히 어렵지만 계속해서 생각하려고 하죠. 공부를 하고 책을 보는 이유이기도 해요. 또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도.

저를 만나고 긴 시간 저를 기다려줬기 때문에 저도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짧다면 짧은 3년이지만 평생을 기다려줄 수 있는 사이가 된 거죠. 남들이 보면 부부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부모가 자식을 무한 신뢰해주는 것처럼 진정한 신뢰가 무엇인지 지혜롭게 깨닫게 해 준 존재예요. 동반자입니다.


멘토로 삼은 사람이 있나요?

손 : 사실 제 멘토는 해외에 있었어요.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나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를 좋아했었어요. 요새 저는 핑(Ping)이라는 책을 좋아해요. 개구리가 부엉이라는 스승을 만나서 훈련을 받고 나서 계곡과 계곡 사이를 뛰어넘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요. 계곡 사이를 뛰는데 그 아래로 떨어져요. 하지만 훈련받았던 것들을 기반으로 나뭇가지를 딛고서 계곡을 뛰어넘는 핑 이야기. 꾸뻬 씨의 행복 여행에서 세상에 나가서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도 좋아해요.


이렇게 여러 좋은 책과 사람을 찾다가 앞서 말씀드렸던 간삼건축의 김자호 회장님과 팀 하스(Timhaahs) 건설 회사의 하형록 회장님을 알게 됐어요. 사람 중심의 비즈니스를 하시면서 직원을 절대 해고하지 않고, 아플 때 같이 아파하고, 질병으로 1년간 못 나온 직원이 다시 출근해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성대하게 그 사람들을 맞이해주고. 인간 중심의 경영 철학을 가지고 비즈니스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도전정신이 샘솟죠. 두 분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어요.


(왼쪽부터 간삼건축 김자호 회장, 팀하스 하형록 회장)


한국에는 당장 수입이 필요한 가정이 있고, 해외에 나가면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고 오시죠.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을 보기 때문에 ‘돈’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을 것 같아요. 돈에 대한 가치관이 궁금합니다.

손 : 저에게 돈을 잘 안 써요. 못써요. 많이 써본 적이 별로 없어요. 저에게 용돈이 한 달에 20만 원도 안 될 정도로. 거짓말 조금 보태면 저에게 쓰고 싶은 마음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쓰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더 배고프고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돈을 쓰면 전혀 아깝지 않은데 저에게 쓰는 것은 정말 어려워요. 저축을 많이 하고 있어요. 선물로 들어오거나 아내가 사준 옷 말고는 제 옷이 거의 없어요. 저희 가정 전체적으로도 자금을 잘 관리해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 더 베풀고. 감사하게도 저희 집이 저렴한 가격에 큰 집을 얻게 됐어요. 플랫폼으로 생각하고 외국인이나 필요한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도록 게스트 룸을 만들어 놨거든요. 간혹 손님들이 저희 집에 오고 있어요.


베풀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긴 해요. 후원해 줄 수 있는 투자자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제가 비즈니스를 해서 돈을 더 많이 벌 수도 있죠. 그런데 아버지와 형이 사업을 했기 때문에 저는 안정적으로 가고 싶었어요. 할 수만 있다면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곳에 쓰고 싶은 돈에 대한 욕심도 있죠. 그리고 저는 해외 현장 경험이 많아졌기 때문에 1,000만 원이 생기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알잖아요. NGO로서 도울 수도 있지만 제가 CEO가 되어서 누군가의 후원을 내걸지 않고서도 유치원, 병원 같은 시설들을 적재적소에 공급하고도 싶어요. 아주 적은 금액이라도 상관없어요.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사람들이 동참하겠죠.


꿈이 무엇인가요?

손 : 이십 대 전까지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 꿈이었어요. 사실 막연하죠. 세상 모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불가능하고. 이십 대에는 총 세 가지 꿈이 있었어요. NGO에서 일하는 것, 선생님이 되는 것, 뮤지컬 분야에서 일하는 것. ‘다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현재 NGO에서 일하고 있고, 장애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기도 해요. 이루고 싶은 것은 다 이뤘는데 지금부터 이루고 싶은 것을 생각해보면 가교 역할을 더 많이 하고 싶다는 꿈이 있어요. 어려운 사람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돕고 사업을 통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 역할. 하형록 회장님이 주차장을 아름다운 건물로 승화시켰던 것처럼. 예전에는 사람들이 주자창 건물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팀 하스의 주차장은 밝아서 안심하고 다닐 수 있고 주변 상권이 회복되는 가치를 창출했거든요. 이런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요.

NGO은 기구(Organization)이지만 한 사람이 NGO가 될 수도 있어요. 제가 있는 영역에서 NGO가 될 수 있어요. 각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NGO가 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꿈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이 많이 힘들어합니다. 꿈을 꿀 수 없고 꿈이 있더라도 여러 요인으로 인해 좌절하는 청년들에게 격려의 말 부탁합니다.

손 : 저도 삼십 대 중반이라 제가 가지고 있는 짧은 경험을 그들에게 말해줄 수 없겠지만, 제가 스물여덟 살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때 이렇게 이야기해주신 분이 있어요. 나이 지긋한 어른이심에도 ‘난 아직도 세상에 대해 잘 모르겠어’라고. ‘이 재밌는 세상을 우리가 같이 알아가 보고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보자’라고. 물론 젊은이들에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어요. ‘세상이 쉽지 않은 곳이지만 한 번 살아보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저를 ‘생계형 마케터’로 소개했듯 분명히 길이 있어요.


‘끝까지 노력하고 포기하지 마’라는 어쭙잖은 위로를 하고 싶은 생각은 아니에요. 분명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생기든, 메일을 보내든, 찾아 가든, 후원을 받든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저희 회사에 스펙 좋은 사람들 정말 많아요. 제가 그런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수많은 방법들이 하나하나 쌓였기 때문이에요. 본인이 계속 만들어가야 해요. 당장은 원하는 꿈과 멀더라도 지금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기회를 보는 눈을 키우면 언젠가 기회는 반드시 와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월드비전과 같은 NGO에서 일하기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손 : 많은 분들이 질문해요. 어떻게 하면 NGO에서 일할 수 있냐고.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언어를 공부하는 것도 좋은데 저는 개인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영양학이나 요리를 배우면 들어와서 영양보건을 담당할 수 있잖아요. 한 분야만 생각하지 말고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해요. 언어가 중요하지만 언어가 준비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분야들이 있어요. 물론 언어가 준비되면 할 수 있는 분야가 더 넓어지죠. 저도 더 공부해야 하고.


마치 슈퍼맨을 찾는 것과 같아요. NGO는 각자가 슈퍼맨이에요. 말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커뮤니케이션도 잘하면 더 좋고요. 체력도 좋아야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다양한 생각을 하고 이곳에 들어와서 정신적으로 버틸 수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해요. 급여를 많이 받는 대기업에서는 그만큼 힘든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NGO에서도 어떤 부분들이 힘든지를 알고 들어와야 해요. NGO가 하고 있는 봉사활동의 기회들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장단점을 파악하면 좋아요.

* 본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허가를 받아 작성한 게시물이며 본 글의 저작권은 게시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지구 끝 다리 놓는 NGO 손제덕 씨와 Jeduck_son@worldvision.or.kr을 통해 연락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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