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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용 Sep 02. 2018

헤이리 마을 촌장으로 산다는 것

헤이리의 신비한 게스트하우스

# 헤이리에 살고 계시네요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안수(이하 안) : 저는 이안수라고 합니다. 매년 나이를 잊어먹어요(웃음). 제가 태어난 해는 1957년으로 부모님께 들었습니다. 지금은 이곳 모티프원에서 주로 청소를 하고 있고, 찾아오시는 분들과 대면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먼저 이름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궁금합니다.

안 : 정식 명칭은 ‘motif#1’입니다. 숫자를 강조하는 ‘#’이 들어가 있죠. ‘motif’는 ‘주제’를 뜻하는 프랑스어입니다. 영어의 ‘Theme’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죠. 이곳은 원래 ‘Artist Residence’ 예요. 창작하는 예술가가 와서 같이 창작을 하거나 본인의 생각을 가다듬는 장소를 활용되길 원했어요.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모티프예요. 어떤 주제, 어떤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죠. 예술가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인생의 테마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모티프원(motif#1)은 ‘내가 어떤 테마를 가지고 삶이라는 긴 여행을 가야 하는가’와 관련한 가장 우선 되는 주제를 상징합니다. 저도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무엇인가’에 대해 항상 고민했어요. 그 고민을 공간에 자연스럽게 발현시켰죠.


 저희 식구를 포함해서 주위 사람들 모두 이름이 너무 어려워서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할 것 같다고 걱정했어요. 대부분 반대했죠. 그럼에도 다른 누군가를 위한 이름을 짓기보다, 내가 가슴에 담아오면서 스스로 질문했던 의문이었기 때문에 모티프원으로 지었습니다. 다른 이들도 같은 질문에 대해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아 제 고집대로 명명했어요.


모티프원 서재 '라이브러리 0'


‘라이브러리 0’이라고 부르는 서재 공간도 함께 있습니다. 어떤 기능을 담은 공간인가요?

안 : 서재에는 1만 4천여 권, 각 방마다 수백여 권의 책들이 있어서 머무는 사람들이 손만 뻗으면 원하는 책을 쥘 수 있어요. 모든 책은 각자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죠. 필자와 필자가 등장시키는 인물들이. 그런데 그 이야기가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먼저 비워야 해요.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어떤 좋은 말도 들어오지 않죠. 수많은 석학이 책에 좋은 내용을 담아 이야기를 하지만 그 내용을 받아들이겠다는 비어있는 마음이 아니면 무용지물인 거예요. 저는 책을 빼어 들면 그 책에 순종할 생각을 해요. 내 마음을 다 비우겠다는 생각으로. 다른 분들도 같은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텅 빈 마음으로 책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라이브러리 0’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 여행 기자로 시작했습니다

대표님 본인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첫 직장 생활을 여행 잡지사의 기자로 시작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어떤 계기로 기자 활동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안 : 전공이 영어영문학이에요. 문학을 공부 하기보다 소통을 위한 도구로써의 언어에 대해 매력을 느꼈어요. 또 언어는 특정 문화권의 산물이거든요. 갑자기 말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단어라도 생겨날 수밖에 없는 당위가 있어서 생성된 거예요. 언어는 그저 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탄생의 기원을 따라가다 보면 그 민족이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어요. 이런 면에서 외국어 공부가 참 흥미로웠어요. 이런 흥미를 가지게 되면서 직접 해당 문화권에 가보고 싶어 졌어요. 자연스럽게 여행 기자에 시선이 가게 됐죠.



기자 생활 이후 새물결출판사의 편집국장이 되었습니다. 현장에서 발로 뛰기보다 데스크에 앉아 총괄하는 자리일 텐데 성향에 맞았는지 궁금합니다. 

안 : 우리나라 잡지사의 구조는 지금도 크게 달라진 바 없겠지만 정말 영세해요. 편집팀이라고 해봐야 10여 명, 광고나 영업팀을 포함해도 30명 미만의 작은 조직이죠. 이런 작은 조직에서는 오랫동안 기자 생활만 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지 않아요. 경제적인 부분이 많이 열악하다 보니 인사이동이 잦고, 제가 현장에 더 오래 있고 싶어도 할 수 없이 데스크 자리로 갈 수밖에 없어요. 누군가 그 자리를 맡아야 하니까 경험이 조금 쌓이면 어쩔 수 없이 밀려 올라가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미디어의 꽃은 누군가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현장성이거든요. 데스크에 앉게 되면 그 재미나 절실함이 없어지죠. 매일 회의하면서 어떤 기사를 어디에 배치할 지에 대한 사무적인 업무를 주로 하게 되니. 한마디로 재미가 없어지죠. 이런 이유에서 제가 자발적 조기 퇴직을 했던 것 같아요. 


이후 행보가 흥미롭습니다. 퇴직 후 마흔여섯의 나이로 미국 유학을 선택했습니다. 

안 : 잡지사 몇 곳을 이동하면서 총 25년 간 미디어 업계의 여러 상황과 여건을 경험했어요. 나이 먹어서 까지 조직의 구성원으로 남아 있기에는 저의 성향과는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만하면 됐다’라는 생각이었죠. 특히 미디어 업계는 어떻게 보면 출퇴근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어요. 예컨대 내가 생산직 근로자로 일을 한다면 퇴근 후 다음 출근까지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죠. 현장을 떠나 있으니까.



 반면 미디어 업계는 그렇지 않아요. 퇴근을 했더라도 항상 뉴스나 신문을 보면서 이 이슈를 어떻게 연관 지을 수 있을까, 타사와 어떤 차별점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죠. 일에서 떠날 수가 없어요. 현장에서 취재를 하더라도 밤 시간에는 원고를 써야 하고. 25년 간 퇴근이 없다고 여겼어요. 중요한 가족 행사가 있더라도 몸은 행사장에 있어도 머리 한 구석에는 일 생각이 남아있고. 


 이런 삶에서 벗어나 패러다임을 완전하게 바꿔야겠다 생각했죠. 한국에 있어봐야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옮겨다닐 뿐이니 전혀 다른 문화권의 삶을 시도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미국 유학은 하나의 빌미였어요. 여행자로 돌아다니기보다 외국의 어느 한 곳에 정주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던 거예요. 여행자는 언젠가 돌아가야 할 입장이기 때문에 정주자의 마음 가짐과 전혀 다른 마음을 갖고 있거든요. 외국에서 정주자의 삶을 살았다는 경험은 전혀 다른 이야기인 거예요.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하더라도 그건 여행자의 시각이고, 현지에서 살아야 하는 정주자는 다른 시각으로 보게 돼요. 


 이를 위해 신분이 필요하더라고요. 학생이라는 신분이 참 좋았어요. 머무는 삶을 살 수 있을뿐더러 어디든 저렴하게 접근이 가능해서 나 자신을 다른 문화권에 던져보는 방법들 중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 왜 헤이리였나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한 곳이 이곳 헤이리입니다. 수많은 지역 중에서 헤이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 : 저는 시골 출신이에요. 제 부모님은 농사꾼이셨죠. 1년에 한 번씩 고향에 내려가 보면 옛 친구들과도 만나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소통의 문제를 느꼈어요. 제가 국민학교 4학년 2학기에 서울로 유학을 왔는데 그때부터 서로 너무나 다른 길을 걸었던 거예요.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서 친구들과 만나도 ‘건강은 괜찮니’, ‘아이들은 몇 살이니’, ‘부모님은 잘 지내시니’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나면 공통된 주제가 없어져요. 만약 고향에서 정착하게 된다면 나의 욕구와 그들의 가치관이 달라서 불편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어느 곳이 좋을지 고민하다가 각각의 다른 생각들이 공존할 수 있고 상호 존중될 수 있는 곳이 이곳이라고 판단하고 택했습니다.


모티프원의 여러 객실


‘여행자의 하룻밤’이라는 책을 집필했습니다. 만나온 여러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엮었는데, 독자들과 어떤 내용을 나누고 싶었나요? 

안 : 저는 이곳에서 사람을 만날 때 멘토와 멘티의 관계를 정의 내리지 않고 수평적인 관계를 항상 염두에 둬요. 제가 모르는 상대방을 만날 때 그를 먼저 스승으로 여기고 다가가요.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각양각색이고 다이내믹해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감동으로 다가와요. 누구나 내가 살아온 인생과 다른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본인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미안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았는데 그중에서 공감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이야기들을 묶어서 책으로 만들었죠.


이안수 대표의 저서 '여행자의 하룻밤'


 제가 감동을 느낀 다른 이야기들은 책이 아니더라도 미디어에 계속 글을 쓰고 있어요. 제가 이곳에서 존재하며 살아가는 한 해야 하는 의무로 생각하고 있죠. 내가 농사꾼이면 농사를 지어서 보답을 할 텐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존재 이유라는 의무감을 가지고 쓰고 있어요. 


청년뿐 아니라 모든 사회인들의 공통된 관심 주제이자 고민거리가 바로 돈입니다. 모티프원을 건축할 때에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은데, 돈에 대한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안 : 쌓으면 쌓을수록 갈증 나는 것이 돈인 것 같아요. 절제하면서 제어할 필요는 있겠다 생각해요. 달라이 라마가 ‘오늘 먹을 만큼만 일하라’고 했죠. 한 끼에 5천 원짜리 밥을 먹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내 영혼을 쥐어짜면서 연봉 1억 원을 벌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오히려 그 시간을 본인의 영혼을 풍족하게 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죠. 


 스스로 생각하는 살림의 규모, 목표의 규모를 설정하는 것이 먼저예요. 무조건 높은 연봉의 직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지도 따져봐야 해요. 월급이 더 낮은 직업이라도 그만큼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거죠. 내가 어떤 가치에 삶을 할애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정의할 수 있다면 고민이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요? 

안 : 모든 시간이 너무나도 편안해서 어떤 일을 하든 거슬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목표예요. 그럴 나이가 된 것 같기도 한데 불쑥불쑥 화가 날 때가 있어요. 자연스럽게 다듬어 가면 좋겠어요. 두 번째 목표도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나온 지 13년 가까이 됐어요. 그전까지 내가 먼저 어딘가 찾아가는 삶을 살아오다가 이곳에서 지내면서 누군가를 맞이하는 삶을 살게 됐어요. 아무리 재밌고 흥미로운 일이라도 10년이라는 세월이 넘어가면 변화를 주고 싶죠. 이제부터는 저를 찾아왔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다시 찾아가고 싶어요. 몇 년 안에 다시 세상을 주유(周遊)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정처 없이 떠도는 삶이 아닐까 싶어요. 


청년들이 힘겨워하는 시대입니다. 취업 문제, 결혼 문제, 소통의 문제 등 어느 시대보다 많은 문제점을 토로하는 현시대 청년들에게 인생을 먼저 살아본 선배로서 조언과 응원의 한마디 부탁합니다. 

안 :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또 다른 기회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시간이 지나 봐야 옳은 선택인지 아닌지 알게 되죠. 나중에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면 실패라고 정의를 내려버려요. 그리고 실패했다고 좌절하죠. 



 사실 실패는 또 다른 기회예요. 끝이 아니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을 바꿔서 상황을 직면하면 좋겠어요.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 힘든 상황에도 웃을 수 있어요. 모든 상황에서 옳은 선택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수많은 오류들을 수정하면서 살아가는 거죠. 수많은 사람들도 똑같이 오류를 발생시켜요. 실패에 친숙해지고 실패의 친구가 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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