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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용 Nov 17. 2016

초겨울 : 망치로 맞은 하루

머리와 가슴에 맞았다

2016년 11월 16일 저녁 6시 10분.

이어폰을 꼽고 버스에서 내려 잠실역으로 지하철을 타러 걸어가는 바쁜 걸음.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망치로 맞았다. 그것도 머리와 가슴 두 곳에.




스무 명가량 사람이 모여있다.

대부분 원을 둘러 서있고, 시선의 중심에는 대여섯이 쪼그려 앉아있다.

뭘까 궁금해 가까이 가보니 할아버지 한 분이 가운데 누워있다. 

왜 이러세요? 쓰러지셨어요.

어떻게 넘어지셨어요? 갑자기 뒤로 넘어지셨어요. 머리를 세게 부딪히셨어요.

흔히 역 앞,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공식 구멍가게를 운영하시는 할아버지다.


어라. 이상하다 나. 머뭇거리는 나. 관성의 법칙을 이렇게 잘 지킨 적이 있던가. 가던 길을 계속 가야 하나 고민하는 나. 걸음은 멈춘다. 약 3분가량 주변을 서성거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내 시선과 주의는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싼 무리들. 지금 내 약속을 지켜야 해서 갈등했다기보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쳐다볼까 하는 두려움. 괜히 늦게 와서 생색낸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두려움.

할아버지의 안위보다 내 자존심이 더 중요하던가.


할아버지의 안위보다 내 자존심이 더 중요하던가


행동하는 지성. 무너짐.

머리에 한 방.

문을 닫아야 하신단다. 왜 그리 찡한지. 가슴에 한 방.

누워 계시면서도 보호자 없다고 연락하지 말라 신다. 가슴에 또 한 방.



자신의 건강보다 가게를 걱정하는 눈빛과 말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외려 찡하다. 왜 주체보다 객체를 우선하실까. 할아버지의 몸을 외로움이 타고 흐른다. 겨울 한기만으로도 추울 텐데 얼마나 더 추울까. 상상하기 싫어진다.


구급차가 왔다.

응급요원들의 부축으로 환자 의자에 앉으신다. 하필 시선이 가게를 향하도록 앉았다. 한 시민이 땅에 떨어진 할아버지의 털모자를 구조요원에게 건네준다. 구조요원은 의자에 앉은 할아버지에게 다시 건네준다. 주섬주섬 느릿느릿 다시 털모자를 쓰시고. 내 입에선 탄식이 나온다.


내 입에선 탄식이 나온다


할아버지의 걱정 어린 눈빛과 말투에 모여있는 시민 모두 가게 문을 닫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를 빤히 지켜보시는 할아버지.

가게 안은 너무 자그마하다. 젊은 지성들에게 50분 일과, 10분 휴식은 어릴 적부터 지겹게 들어온 상식. 가끔씩 바람 쐬러 나오긴 하실까. 이 상식을 알고 있긴 하시나.

꾸역꾸역 가게 안을 정리하고 문을 잠갔다. 이제야 할아버지는 안도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신다.

그리고 모두 흩어짐.

저녁 6시 35분.



무언가에 세게 맞아본 사람은 안다.

세게 맞으면 아프기 앞서 띵하다. 정신이 없다. 내가 잠실역으로 내려가는지, 걸어가는지, 어디로 가는지.


잠시 정신을 차리고 방금 일어난 일을 반추해보니 매해 겨울마다 맞았던 것 같다. 강도만 달랐을 뿐.

리어카에 박스를 싣고 가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거의 막차가 다닐 무렵 조끼를 입고 아직도 마대자루로 지하철역 계단을 닦으시는 아주머니.

그분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고 일반화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다. 다만 절대빈곤이라는 경제학 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일반적인 사람에게는 측은지심이 있기 마련이다.


행동하는 지성은 오늘 한 번 더 넘어졌다. 크게. 다행히 이번엔 내 머리와 가슴에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작용한다. 크게 넘어졌으니 크게 마음먹고 지성으로 행동하자. 내가 '지금' '내 자리에서' '조금이나마' '내 능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새 들떴나 보다. 흥분했다. 의도가 불투명해진다.

그들을 진정으로 위함인가, 내 마음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함인가.

행위의 동기와 결과에 관한 케케묵은 논쟁이 떠오른다. 후자를 선택하자니 이상하게 아직도 마음이 불편하다. 전자이길. 아 종잇장 같은 내 영혼. 아멘.


그들을 진정으로 위함인가, 내 마음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함인가



원래 갈 길을 가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이들은 평온하다.

내가 다른 정류장에서 내렸더라면.

아니다. 고개를 휘젓는다.

망치로 맞아서 다행이다. 내 머리와 가슴이 흔들렸다. 그리고 겨울은 이제 시작됐다.


*급박한 상황이라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두서없이 작성하고 직접 찍지 못한 이미지를 사용했음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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