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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Jun 10. 2022

장 건강

고등학생을 습격하는 학교에서의 '급똥'과 변비에 대하여


고등학교 시절은 그야말로 내 암흑기였다. 전체적으로 골고루 고통스러웠던 시절이었지. 그래서 그런지 짠한 에피소드도 많다. 그중에 7할은 똥-ddong-에 관한 이야기다.


이야기가 다소 드러울 수 있습니다. 똥 이야기를 기피하신다면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내 생각에 한국 고등학생의 신체적 질병 1위는 위, 2위는 장 문제일 것 같다. 어마어마한 스트레스, 수면 부족, 불규칙한 생활습관까지 삼박자가 잘 갖춰져 위경련부터 장트러블까지 골고루 있을 것 같아. 모든 학년마다 같은 반에 ‘장트러블터’라고 불리는 사람이 한두 명은 꼭 있었다. 시험 스트레스에 폭식과 설사를 오가는 학생도 있었고. 반에 있는 학생들 3/4는 응가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었고, 그 모두는 나머지 1/4의 ‘똥 잘 싸’들을 부러워했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내 눈에 학교의 시설은 경악 그 자체였다. 특히 화장실이. 추운 겨울에 처음 교실에 앉았던 날이 아직도 오감으로 새겨져 있다. 진심으로, 아파트 복도만큼 추웠다. 교실 바닥이 아파트 복도 바닥 재질이랑 똑같았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는 학생은 많은데 자습실도, 급식실도 따로 없어서 모두가 아침 7시부터 밤 11시 40분까지 한 공간에서 부대꺼야 했다. 화룡점정은 역시나 화장실이었다. 스산하게 다 벗겨진 타일 벽, 떨어져 나가려는 문짝, 그리고 80년도에 지어진 것 같은 - 쪼그려 앉는 변기. (이것도 감지덕지인 시절이 물론 있었겠지만, 제가 졸업한 중학교에는 양변기가 있었다고요...!) 앞사람의 흔적을 제법 잘 볼 수 있는데, 또 레버를 밟으면 쿠와아아악 물이 다 튀면서 내려가는 거. 화장실에 올 때마다 오만상을 찌푸리고 쪼그려 앉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혹시 변기가 막혔나 물을 한 번 내려보고는, 안으로 들어가 경첩이 빠지려는 문짝을 손가락 끝으로 밀면서 쪼그려 앉던 순간.


시설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우리들은 집에서만 응가를 할 수 있다는 믿음에 차있었다. 학교에서 똥을 싸는 게 도저히 용납이 안 됐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관념이 있는 것 같아. 하지만 집에 느긋하게 있을 시간이 있어야 화장실에 갈 시간도 있지. 내가 다녔던 학교는 0교시도 있었고, 심야 야자라고 해서 11시 40분까지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도 있었다. 0교시 시작 전에 학교에 도착하려면 집에서 6시 반쯤 나가야 했고, 야간’자율’학습을 끝내면 열한 시가 넘어야 씻고 누울 수 있었다. 집은 거의 잠만 자는 기숙사였던 셈이다. 화장실에 가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어렸던 우리는 학교에서 똥을 싸지 않으려 버틸 만큼 버텼다. 하기사, 질풍노도의 고등학생 시절에 ‘누구 똥냄새가 쩔더라’, 이런 소문이 퍼지면 하루의 16시간 40분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지만 슬슬 선택권이 우리에게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하루의 2/3을 학교에 있는데, 뭐. 처음에는 모두가 쉬쉬하며 몰래 화장실을 찾아다녔다. 발가락이 떨어질 것 같은 추위에 맨엉덩이를 까고, 무릎이 뽀개질 것 같은 변기 위에서 “빨리 나와라”를 거듭 되뇌는 열일곱 살의 마음이란. (하지만 똥 싸기에 좋은 자세이긴 했다.)


한두 달이 지나자 많은 학생들이 득도하기 시작했다. 변비 환자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하루 종일 움직이진 않고 앉아서 먹기만 하는 주인을 참아주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학교 당국은 학생들의 공부시간을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체육수업 시수을 줄이고 또 줄였고, 결국 없애버렸다. 등하교 시간에라도 걸어야 할텐데 학생들은 버스에서 자기 바빴고, 쉬는 시간에는 책상에 엎드려 자기 바빴다. 변비와 설사를 오가는 환자가 급증했다. 조용한 교실에서 갑자기 몸을 습격하는 똥 타이밍에 미쳐버릴 것 같았던 친구들은 조퇴를 선언했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똥 싸러 집에 가야 한다’는 고등학생이 ‘정신이 빠졌다’고 생각하는 선생님들 덕분에 학생들은 학교에서 똥과 사투를 벌였다.


우리는 똥을 싸러 간다는 걸 여러가지 은어와 동작으로 표시했다. 일단 손에 두루마리 휴지를 들었다면 100%였다. 쉬는 시간 10분 혹은 식사시간을 이용해서 빈 화장실을 찾아 똥을 싸고, 비밀리에 조용히 빠져나왔다. 모두가 모두에 대한 첩보전을 하고 있었다. 서로 건물 반대편의 사람 없는 화장실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지금 비었다’ 혹은 ‘내가 갔다 왔으니까 10분 뒤에 가줘, 제발’같은 대화가 돌아다녔다. 슬픈 표정으로 돌아오면 실패했냐며 위로를 건넸고, 기쁜 표정으로 돌아오면 진심을 다해 축하했다. 사람이 없는 화장실에서 나 혼자 양치를 하는데 누가 휴지를 들고 들어온다면 그 순간부터 나는 죽일 놈이었다. 빨리 화장실을 비워줘야 하는 의무감에 칫솔을 닦달했다. 나와 비슷한 시간에 화장실에 오는 다른 반 친구들과 안면을 텄고, 나중에는 각자 화장실 한 칸씩에 들어앉아서 쿨하게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다.


학년이 올라가자 모두의 변비가 만성적으로 악화됐다. 화장실에 가는 게 정녕 축제가 되기 시작했다. 원할 때 황금색 응가를 누는 사람은 가히 축복받은 존재였다. 방귀를 뿡뿡 뀌는 장트러블터가 두루마리 휴지를 치켜들며 횃불을 든 자유의 신상처럼 일어나면 다들 박수를 치고 파이팅을 외쳤다. 물론 가부장적인 분위기에서 그럴 수 있는 애들은 남자에 한정되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 그 나이는 똥 싸는 것도 재밌는 나이였다.




나도 장과 고군분투한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사실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뇌가 신호를 보낼 때 고분고분히 갔더라면 문제가 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 다중이용시설에서 응가를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조금만 참고 집에 가서 화장실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자율학습 시간을 버텼다. 결과는? 똥은 ‘들어가’고 없었다. 잠잘 시간을 쪼개서 변기에 앉아있어 봤지만 나는 내 장과 타협을 보지 못했고, 다음날 비슷한 문제가 또 반복됐다. 우리 사회는 학생이 학교에서 똥을 싸도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교육했어야 했다. 조용한 야자 시간에 냅다 방구를 갈기지 않으려 몸을 배배 꼬던 고등학생들, 요즘은 변비 없이 잘 살고 있나 궁금하다.


TV에서 봤는데, 매일 대변을 보지 않아도 내가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면 그건 변비가 아니랬다. 물론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거기 해당되지 않아서, 공부 스트레스를 받는 수준으로 똥 싸는 것에 대해 고통받았다. 대학생이 되어 갑자기 화장실에 갈 시간이 넘치고, 운동도 시작하면서 장 건강을 되찾긴 했다. 그렇지만 10대 후반의 유약한 멘탈에 이 문제가 너무 깊게 새겨진 나머지 나는 요즘도 열심히 프로바이오틱스를 먹는다.(영양제에 관심 없는 내가 유일하게 먹는 게 유산균이다.)


사회인이 되고, 주당 50시간이 넘게 근무를 하면서 또 간간히 동료 직원들과 똥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고등학생 때처럼 우리는 사람들이 잘 안 가는 화장실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의 성공적인 외출을 응원한다. 그래도 이제 신호가 왔을 때 화장실을 갈 수 있는 건강한 분위기가 조성되긴 했다. 암, 돈 벌러 다니면서 화장실 정도는 내 맘대로 갈 수 있어야지. (월급 받는 시간에 똥을 싼다고 '응가렉스(응가+플렉스)'라고 불렀다.) 그런데 또 회사에 있다보면 바빠서 미치겠는 나머지 양치도 못할 때가 많다. 일에 치여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어서 방광염이 속출할 정도인데, 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는 생각이 오늘도 머리를 스친다. 고등학생 때도, 다 자라 어른이 되어서도 배변욕과 화해하지 못하는 직장인들이여. 여러분의 장은 건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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