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가 얘기를 하다보니 생각난 에피소드가 있다. 좀 더 드러운 이야기다. 단체로 후천적 변비에 걸려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다보니 내가 장염과 식중독에 한 번씩 걸렸던 게 생각났다. 그것도 역시 고등학생 때였다. 응가 타이밍을 놓쳐서 원하는 시간에 화장실을 못 가곤 했었지만, 참다못한 소화기관이 반란을 일으켜 강제 디톡스를 시켰던 적이 있다.
어릴 적 나는 위가 정말 튼튼해서 폭식을 하고도 두세 시간 만에 소화를 해내는 능력이 있었다. 내 위는 상한 음식이 들어와도 대충 주무른 다음 밑으로 싹 내려보내는 편이었다. 장염은 보통 구토와 설사를 동반하지만, 튼튼한 위 덕분에 난 둘 중에 하나만 있었다. 열도 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5일씩 앓아누울 지경에도 나는 며칠 화장실만 가면 멀쩡해졌다. 그래서 난 장염에 걸리면 “장을 비울 시간이군.”하는 쿨한 마음으로 물 마시고 화장실 가고, 물 마시고 화장실 가고 그랬다.
하지만 당시엔 문제가 있었다. 바야흐로 초여름이었다. 춘추복을 집어넣고 하복을 장착한 후였다. 나는 학교 앞 카페에서 다음 날 있을 토론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팀을 꾸려 참가했던 대회였고, 발언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그런데 먹으면 죽죽 나오는 장염에 걸린 게 아닌가. 그 전날 학교에서 이미 지옥을 경험한 후였다. 수업시간에 날 덮친 강력한 배변욕 때문에 나는 휴지곽을 구기며 1분 1초를 세다가 결국 쉬는 시간을 5분 남겨두고 “화장실 갔다 오겠습니다.”를 외쳐야 했다. 그 짓을 다음 날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또 할 수는 없었다. 오늘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아야 한다는 게 자명했다. 그렇지만 뇌를 팽팽 쓰면서 가만 버티려니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과일은 몸에 좋으니까, 하면서 딸기에이드를 조금 마셨던 것 같다.
결과는 뻔했다. 물만 먹어도 뒤로 나오는데, 크림 묻은 딸기를 먹었으니 내 장은 당장에 화가 났다. “내가! 아무것도! 넣지! 말랬지! 나는 지금! 내보내는! 중이란! 말이야!” 한 마디 한 마디 박자에 맞춰서 장이 수축하는 기분이 들더니, 정확히 30분 후에 나는 딸기를 낳았다. (죄송합니다) 그건 정말 딸기였다. 플레이팅은 달라졌지만, 방금 내가 먹었던 그것. 하이얀 도자기 안에 투명한 물이 반쯤 차 있고, 반쯤 뭉캐진 딸기 몇 개가 그 위에 둥둥 떠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0순위다. (그래요, 물 내리기 전에 제가 뭘 쌌는지 봤습니다.) 식도부터 위, 십이지장을 통과하기까지 30분밖에 안 걸렸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진짜 아-무-것-도 먹으면 안 되는구나. 먹짱이었던 난 정말, 너무 배가 고팠다.
그래도 그날은 밖이라 뭘 먹어봤지, 다음 날은 절대 안 되는 법. 나는 이틀을 물만 먹으며 보냈고, 덕분에 바짝 긴장했던 대회를 잘 끝마칠 수 있었다. 튼튼한 나의 위장은 금방 나에게 음식을 허락해주었고, 장염이 휩쓸고 간 자리는 3일만에 일상을 되찾았다.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던 고등학교 시절에 장염만 걸렸을 리 없다. 어느 날 나는 모두가 괜찮은 와중에 홀로 식중독에 걸렸다. 아직도 무슨 음식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뱃속에서 트럭 엔진 같은 소리가 자꾸 나고, 속이 울렁거렸다. 조퇴를 하고 병원에 갔다. 내과 의사 선생님은 내 배에 청진기를 가져다 대시더니 “꾸루룩 꾸루룩 난리가 났네요.”라고 하셨다. 맨 귀로 들어도 들리는 소리를 굳이 청진기로 들으시다니, 선생님도 참. 난 식중독으로 판명이 났고, 지사제를 처방받았다.
그날은 얌전히 약을 먹었다. 그런데 몸 상태는 똑같았다. 아니, 더 안 좋아진 것 같았다. 지사제는 뒤집어진 내 속을 낫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설사만 아슬아슬하게 막는 것 같았다. 출구가 막혔을 뿐이고, 내 배에서는 여전히 막힌 하수구같은 소리가 났다. 이 처방에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바이러스가 나가야 이 사태가 종결될 것 아니야. 얼추 3일만 고생하면 바이러스도 몸 밖으로 나갈텐데, 뭣하러 출구를 막아서 교통체증을 유발할까 싶었다. 나는 임의로 약 먹는 걸 중단했다.(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는 ‘어차피 다 나와야 하니까’ 하는 마음으로 그냥 밥을 먹었고, 짠한 마음에 엄마가 사주신 한정식 한 상을 다 먹었다. 튼튼한 위는 아무것도 위로 뱉어내지 않았고, 장은 오랜만에 찾아온 디톡스 기회를 누렸다. 신명나게 화장실을 들락거린 후, 며칠이 지나고 나는 또 멀쩡한 컨디션을 회복했다.
어른이 되고, 여러가지 시련을 거치면서 나는 위출혈 환자가 되었다. 덕분에 6개월마다 한 번씩 위내시경을 하고 있지만, 그러다보니 내가 뭘 먹는지 훨씬 신경을 쓴다. 이제 식중독과 장염에 시달릴 일은 잘 없다. 그래도 가끔 폭식이 도지면 화장실을 한두 번씩 들락거릴 때가 있고, 그러다보면 어릴 때가 생각난다. 음식을 쓸어넣고는 변비에 시달리던 시절. 화장실 가는 것도 손 들고 물어봐야 했던 시절. 장염과 식중독에 시달리면서도, 손끝이 하얘지도록 책상 모서리를 부여잡고 쉬는 시간까지 버텨보려던 마음. 휴지곽을 움켜쥐고 “진짜 1분만 참아줘, 진짜 제발.” 되뇌면서 복도를 질주해 화장실로 달려들어가던 마음. 지나고 나면 또 비위생적이고 즐거운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