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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Jul 04. 2022

두려움

오늘의 시: 여덟 번째


걱정하지 말자. 걱정해서 바뀔 것이 없다. 괜히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면서 고통받지 말자. 다 잘 될 거다. 잘 될 거야. 다 잘 되게 되어있어. 잘해왔잖아.


라고 해도 걱정이 없어지지 않았다. 무뎌지지 않았다. 10분마다 한 번씩 그 생각들이 불쑥불쑥 치밀고, 가끔 꿈에도 나왔다. 결국엔 눈덩이처럼 불어나 상상해보지도 못한 시나리오로 현실에 불어닥쳤다.


누군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걱정을 억누르지 말라고 했다.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꾹꾹 밀어넣다보면 무의식 저장고가 넘쳐서 펑, 터져서 더 고통스럽다고 했다. 걱정이 올라오면 그때그때 걱정을 바라보라고 했다.


걱정을 마주본다. 내 무의식 상자 속에 욱여넣던 생각들을 꺼내본다.

나의 두려움 1: 성공하지 못할까 봐 두렵다.

‘성공’이 뭐지? 요즘 세상에는 일단 경제적 부 아닐까. 아, 그럼 난 가난하게 살기 싫었던 거구나. 왜 그게 싫었을까? 하루하루 집 앞 내과에 갈 돈도 아끼면서 살기는 싫어서, 2년에 한 번씩 전세 옮기는 걱정을 하기 싫어서, 마이너스 통장이 연체될까 전전긍긍하기 싫어서. 이 식당은 너무 비싸니까 다른 곳 가자, 해외여행은 너무 돈이 많이 든다, 수상스포츠는 무슨 그냥 달리기나 해라, 이러기가 싫어서. 좋아하는데 못 하는 것만 자꾸 생길까 봐 그게 싫어서.


아, 나는 돈이 없어서 뭔가를 못 하는 게 싫구나. 당연하지, 무서운 게 당연하지. 이사를 자주 다니는 것도 싫구나. 아니 뭐, 좋은 집으로 이사 가는 거야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게 싫은 거구나. 나에게는 편안한 집에서 살고 싶은 욕구가 중요하네. 돈 때문에 싫은 소리 듣는 것도 싫구나. 그래, 당연하지. 누구나 싫어할만한 일이지. 더 깊이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기 싫어서’ 혹은 ‘무시당하기 싫어서’도 이유가 되겠다. 기저에는 그런 감정이 있었네. 또 나는 좋아하는걸 마음껏 즐기면서 살고 싶구나. 그런 욕망이 있었어. 나한테는 취미생활을 즐겁게 영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구나. 나는 그런 사람이었구나.


다른 서랍도 열어본다.

나의 두려움 2:  건강해지지 못할까 두렵다. 네, 위암입니다, 가족력도 있으신데 조심하셨어야죠. 이런 통보를 받을까 봐 두렵다. 맛있는 걸 먹기는커녕 병원에서 몇 달 고통스럽게 버티다 떠나게 될까 봐 무섭다. 아파서 죽을까 봐 무섭다. 아픈 데가 많아서 두렵다. 어릴 때처럼 50m 수영장을 자유롭게 왕복하는 것은 꿈도 못 꾸고, 작아진 폐로 겨우겨우 호흡하면서 의자에 앉아 생활하게 될까 봐 두렵다. 어깨는 부서질 것 같고,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온갖 통증을 달고 살면서 아무렇게나 살다 갈까 봐서 무섭다.


내가 생각보다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이었구나. 많이 아팠다보니 ‘이러다 큰일 나겠네.’ 생각을 많이 했구나. 고통스럽게 아픈 것이 두려웠구나. 통증이 두려웠구나. 병으로 끝없이 돈을 쓸까 봐도 무서웠나보다. 자유롭지 못할까 봐도 두려웠구나. 가고 싶은 곳에 못 가고, 좋아하는 운동을 마음껏 하지 못할까 봐. 어쩌면 일상생활조차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면서 그저 되는대로 살아갈까 봐, 그래서 점점 더 건강을 잃을까 봐 두려웠구나.

내 마음 안에 이런 두려움이 있었구나. 난 이런 게 무서웠구나.


또 그렇게 말씀하셨다. 똑같은 걱정이 다시 올라와도 마주보세요. 인정해주세요. 그런 두려움을, 그런 생각을 바라봐주고, 또 관찰해보세요. 고통을 밖으로 꺼내두면 점점 사라집니다. 두려움에 저항하지 않으면 무의식 차원의 두려움이 점차 사라져요.


이런 작업을 해나가면 되는 거구나. 똑같은 걱정이 수십, 수백 번 떠올라도 그때마다 느끼면 되는구나. 내가 평생 무의식 속에 욱여넣은 것을 하나씩 꺼내보면 되는구나.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편안하고 고요한 존재만이 남겠구나. 그렇게 가벼워지겠구나.






나탐님께서 며칠 전에 올려주신 유튜브 영상을 이제 봤습니다. (아래 붙여두었습니다.) 날이 무더워서 오늘 오후에는 도서관에 앉아 차분하게 내 걱정들을 들여다봤습니다. 사실 아주 내밀한 두어 가지는 공유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요즘 제 삶을 잠식하려 하던 걱정 두 가지를 털어놓아 봅니다. 우리 모두 조금씩, 가벼워져가요.



걱정이 계속된다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 걱정을 덜어내는 방법 by 나탐님

https://www.youtube.com/watch?v=1DZkfgCo7I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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