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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Jul 07. 2022

내 인생에 찾아온 언니들

나를 아끼고 사랑해준 K-언니들을 떠올리며


내 인생에는 좋은 언니들이 많았다. ‘언니라면 당연히 동생을 보살펴줘야지!’ 하는 K-장녀 스토리는 아니고, 친인척이나 이웃이 아닌데도 따뜻한 호의를 전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며칠 전에 이야기했던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언니도 그렇고(<바람> 시리즈에 등장합니다), 오늘 소개할 멋진 언니도 그렇다. 나는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도 기본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대하는 편인데, 내가 이런 사람으로 자란 것이 어쩌면 언니들의 사랑이 모인 결과물처럼 느껴진다.






 언니들에 대한 기억을 되새겨본건 어린 시절의 편지봉투함을 뜯어보면서였다. 나는 편지에 관한 한 집착광공이다. 7세 이하 시절 삐뚤빼뚤한 25포인트 글씨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주고받은 편지부터 최근에 친구가 준 생일 축하 편지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 손때를 탄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 책상 밑 발치에 있는 서랍 한 칸에 옛날 교과서와 공책 몇 권, 일기장과 편지봉투함이 욱여넣어진 걸 보면 또 할 말이 없다.


 수북한 편지들을 어떻게든 연도별, 시기별로 분류하려다 항상 실패해왔다.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서로 몰래 주고받았던 쪽지까지 끼워져 있어서 정리할 엄두가 안 난다. 거기다 질풍노도의 중학생 시절에는 좋아하는 연예인이 니꺼니, 내꺼니, 내어놓으라느니, 지금 읽기에 머쓱하고 다소 유치한 내용들이 가득 있어서 다 열어보고 싶지가 않다. 그중에 손이 가는 게 있다면 역시 최근에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이다. 다정하고 적당히 어른스러운 말들이 가득 있는 것들. 그렇지만 가끔 아기 시절의 크리스마스 편지 뭉치도 열어본다. 지금과 전혀 다른 손글씨를 보면서, 또 “너의 생일을 정말 축하해!”와 같이 문어체로 삐뚤빼뚤 쓴 애정이 너무 귀여워서.


 어릴 땐 왜 그렇게 크리스마스 편지를 보냈는지 모르겠다. 학교 영어시간에 까만색 도화지에다가 온갖 반짝이를 붙여서 만든 편지지들이 가득하다. 다들 Merry Christmas의 철자를 잘 몰랐는지 어떤 종이에는 merry의 r이 한 개 밖에 없고, 어떤 종이에는 크리스마스의 h가 없다. 그런 갈등을 피해 쿨하게 X-mas라고만 적어둔 친구도 있다. 분명히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줬을 법 한데, 그걸 볼 정신은 없었던 모양이다. 다 같이 수업시간에 편지지를 만들었던 그 뭉치 외에도, 크기와 색깔이 가지각색인 크리스마스 편지봉투들이 잔뜩 있다. 그 시절 감성이 그랬나 보다. 별 특별한 내용이 없는, 그저 건강하고 메리 크리스마스이고 또 해피 뉴 이어라는 말만 가득한 편지지를 굳이 주고받고 싶은. 내년에 같은 반이 안 되면 헤어질 친구들한테 작은 추억을 선물하고 싶은.


 한창 웃으면서 공산품 엽서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중 하나를 발견했다. 개나리색 봉투를 손에 들 때까지도 몰랐다. 안에 든 편지를 열어봤다. 부드럽고 다정한 글씨였다. 편지는 ‘안녕, 너의 맘모스 언니야.’라고 시작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아주 따뜻하고 또 이질적인 기억이 떠밀려왔다. 수영장 타일 벽에 기대어 서 있는 어떤 언니와 그 언니의 목을 끌어안고 폭 안겨있던 내 모습이.






 열 살, 열한 살 무렵 수영장을 열심히 다닌 기억이 난다. 운동과는 담을 쌓았던 내가 유일하게 즐긴 스포츠가 수영이었다. 오리발 접영까지 마스터하고, 스타트한 후에 접영-배영-평영-자유형으로 수영장을 몇 번 왕복한 기억이 있으니 나름대로 즐겁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무슨 반에 속해있었는지, 우리 반에는 어른 같았던 언니가 한 명 있었다. 언니는 키가 큰 편이었다. 분명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은 아니었다. 내 눈에 언니는 정말로 커다래보였다. 난 120m 높이 어린이 수영장에도 겨우 서있는데, 언니는 어른용 수영장 벽에 기대어 설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언니에게 ‘맘모스 언니’라는 이름을 냅다 붙였나보다. 세상에.


난 공룡에는 관심이 없는 어린이였지만 맘모스는 좋아했다. 엄청 크고, 뿔도 달리고, 귀엽게 생긴 친구가 옛날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니 좀 슬펐던 것 같다. 얼음 안에 죽은 맘모스가 꽁꽁 얼어붙어있는 사진들이 아직도 기억나는 걸 보면 그 무렵 내가 제일 좋아하던 것 중에 하나임은 틀림없다. 그래도 언니가 좋아 > 난 맘모스도 좋아하는데 > 그럼 언니는 맘모스야, 라는 뜻은 아니었겠지? 아무래도 ‘언니는 키가 엄청 큰 사람’ 정도의 의미였을 것 같다.


우리 반 수업은 오후 서너 시였다. 그 때 수영장에 있었으니, 언니는 아마 고등학생이거나 대학생이었을 것 같다. 언니의 글씨는 꽤나 정갈했고, 내 기준에서 그건 절대 중학생의 글씨체는 아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고등학생 선수반 언니가 잠시 옛 코치님 수업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그 정도의 나이. 그때 나는 언제나 인간을 좋아하는 골든리트리버와 같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언니를 보자마자 무척 좋아했을 것이다. 아주 키가 크고 멋진 언니가 있는데, 심지어 내가 치대도 귀엽게 봐준다고? 얼마나 신이 났을까.


쪼마난 애가 자신을 맘모스라고 불러제끼면서 귀찮게 구는데도 언니는 날 잘 놀아줬다. 내가 학교에서 뭐가 어땠고, 이랬는데, 하면서 종알종알하면 언니는 오냐오냐 하는 눈으로 내 말을 들어줬던 것 같다. 무엇보다 수영장에서 춥다 싶으면 언니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어린애가 안아달라고 부대끼는 것도 잘 받아줬던 모양이다. 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게 그 따뜻함과 서늘함이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온도. 몸이 식어 차갑게 느껴지는 수영장 안에서 두 팔로, 몸통으로, 매달린 두 다리로, 또 마음으로 느꼈던 언니의 체온.


열 살의 내가 귀엽긴 했을 거다.(근거 없는 자신감) 통통한 아기배를 달고 다니며 언니 좋아요! 언니! 하는데 귀엽긴 했겠지. 그래도 잠시 귀여운 걸 보는 거랑 몇 달을 매일매일 놀아주고 안아주는 것은 천지차이다. 후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육아노동에 가깝다. 언니도 어린 나이에 갑자기 사촌동생 같은 아기를 돌봐주게 생겼으니,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냉정하게 뿌리쳐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을 텐데, 어린 나를 보살피고 사랑해줘서 정말 고맙다. 언니는 그만큼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나보다. 사랑이 필요한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을 만큼 어른이었나보다.






요즘 내 현생에서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 사랑하는 언니에게 매달릴 나이는 지났으니, 이번에는 내가 멋진 언니 역할이다. 몇 달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체육관에 초등학교 4학년 친구가 있다. 하루에 두 시간 수영 수업이 있어서 체육관에는 저녁 수업에 오게 됐다. 아기는 수영장에서 선수반 수업을 듣는다. 그런 뒤에 체육관에 오는데, 두 시간 동안 혹독하게 체력훈련을 한 사람 같지 않게 에너지가 넘친다. 10분만 몸을 움직이는 걸로도 죽을 맛인 나와 동기는 이 아이의 체력이 감당이 안 된다. 그래도 “놀아주세여!’하면서 착 달라붙어오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한창 주변의 관심이 필요한 나이다 보니 자기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한다. 늘상 지쳐있는 언니들에게 어찌나 힘이 되는지. 이짜나여, 어쩌고가 그랬는데여, 그래서 제가 일케 일케 해가지고여, 잘했죠? 목소리만 들어도 힘이 난다. 이젠 아이의 요일별 방과후 스케줄을 외울 지경이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가끔씩 아이의 쨍알거림이 귀찮기도 하다. 숨을 몰아쉬면서 겨우겨우 물을 먹고 있는데 옆에서 쉬지 않고 놀아주세요, 같이 뭐 해요, 이거 보세요, 나 물구나무서기 잡아주세요, 하면 힘에 부친다. 그래도 언제 그랬냐는 듯, 아기의 높다란 목소리 톤과 날렵한 몸놀림이 내 정신을 뺏아가고 없다. 내 눈에는 기인열전 같은 멋진 동작들을 실컷 보고 있자면 이 아이의 사랑스러움이 어찌나 가슴을 뻐근하게 내려치는지, 귀여워! 죽겠다!





 그래서 요 며칠 가끔 맘모스 언니 생각이 났다. 내가 지금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에게 관심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난 게 언니 덕분인 것 같아서. 굳이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관계에서 사랑으로 상대방을 감싸안고, 챙겨주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안다. 낯선 타인에게 다정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능력. 크리스마스 편지를 주고받자는 꼬꼬마의 부탁에 편지지를 사고, 예쁜 색깔 펜을 골라서 뭐라고 글을 쓰고, 그걸 잊지 않고 수영장에 챙겨 와서 내게 건네준 그 언니의 그 시절에 사랑과 감사를 보낸다. 누군가를 떠올렸을 때 다정한 품이 먼저 생각나는 사람. 나도 그런 사랑이 되어가는 것 같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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