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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Jun 07. 2022

바다로 가는 기차

나에게

    

나에게 센쥬니페로가 있다면 그런 곳일거라고 생각했어. 청록색 바닷물이 이리저리 파도치는 사이로 기찻길 하나가 놓여져 있는. 언제 기차에 탔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나무판으로 된 간이식탁에 팔꿈치를 대고 레몬차를 마시면서 창밖을 바라보는거야. 바람소리, 파도소리를 듣자. 그 소리에 잠도 자고, 그 소리에 아침을 깨우자. 가끔 걷고 싶을 때면 끝없는 철길 위를 걸어봐도 좋겠다.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다시 기차에 타서는 뜨개질도 하고, 십자말풀이도 하고. 


무얼 그리워하는지 모르면서도 누군가가 자꾸 보고 싶을 때가 있잖아. 그러면 작은 간이역에 내리자.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모래 위를 천천히 걷자. 아직 세상을 떠나오지 않은 너의 평안과 안녕을 바라는 내 마음을 담아서. 언젠가 삶에 지친 너가 기차에 오르게 된다면, 가만히 너를 안아줘야지. 들꽃이 가득 핀 동네에 내리자. 두부를 많이 넣은 채식 유부초밥을 먹자. 뜨개질한 담요를 덮고 너에게 동화책을 읽어줘야지. 낮잠도 자자. 아, 너한테 드디어 자전거를 배워야겠다. 여기서는 넘어져도 아프지 않을테니까. 축축한 흙과 가벼운 모래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발자국도 새기자. 미역으로 반지 하나, 팔찌 하나 만들자. 그러고 나서 너를 돌려보내줄게. 


너는 새로운걸 빨리 배우잖아. 소라고동 안에 굽이치는 소리, 햇볕이 팔에 닿는 촉감, 맞잡은 손 사이에 약간 축축하고 따뜻한 습기, 천천히 잠에 드는 고요함, 그런 걸 잘 챙겨가렴. 모든 날의 모든 순간이 힘에 부쳤을 수도 있지만, 괜찮아. 오늘의 평온을 고이 담아가면 내일을 잔잔하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거야. 어제는 지나갔잖아. 오늘이 내일이 되고, 내일이 모레가 되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가다보면 마음이 편해질거야. 바다 위를 끝없이 지나는 철길 위를 걷는 것처럼 살다가, 우리 다시 만나자.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의 내가 나에게.


미역이 발에 감기는 제주도의 바다. 삶에 지칠 때 몸을 맡길 곳이 있다는게 얼마나 저를 따뜻하게 해주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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