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의 밤

욕망을 숨기지 않아 여의도를 좋아한다.

by 밍경 emb
180411 여의도


서울을 좋아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매력이 있는 도시다. 그러나 서울에서 태어난 나는 서울을 자세히 바라보는 걸 더 선호한다. 제주도의 1/3 크기에서 천만 명이 사는 서울은, 급속도로 발전한 것 치고는 동네만의 색깔을 갖추고 있다.


서울에서도 좋아하는 장소를 꼽으라면 세 곳을 든다.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찝어가며 첫째 나의 고향 동네. 둘째 광화문. 셋째 여의도다.


어쩌다보니 여의도로 출퇴근하고 있다. 겨울 새벽녘 출근길 파천교를 건너며 매일 여의도 고층 건물을 바라봤다. 새볔 하늘엔 보라색과 남색이 오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날씨가 풀리고 봄이 되자 하늘은 주황색과 노란색을 재빨리 빨아들였다. 꽃샘추위와 함께 안개가 찾아왔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한강변 위로 미세먼지와 안개가 겹쳤다. 그중 안개는 두꺼운 책에 끼워진 책갈피처럼 커다란 건물을 두동강내며 흘러내려갔다.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웠다.


180411 여의도


욕망을 숨기지 않아 여의도를 좋아한다. 무인도였던 여의도는 개발 당시 옆에 있던 더 큰 섬을 억지로 파괴한 후 그 모래를 퍼다 썼다. 거주지를 파괴하고 만든 섬에서는 돈과 권력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금융권과 재벌기업은 높은 건물을 세워 콧대를 자랑한다. 정치권과 방송사는 널따란 창을 차지하고 잔디밭과 주차장을 깔아놓은 채 헛기침을 한다.


여의도는 흔히들 잠깐 머무는 곳이라고 말한다. 출근시간 밀물처럼 몰려와 퇴근시간 썰물처럼 빠져나간다는 거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잠깐만. '잠깐'이란 게 뭔데?


새벽 6시 30분 파천교에서 바라본 여의도 고층 건물들엔 대부분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퇴근 후 인근에서 저녁을 먹고 밤 11시쯤, 살짝 취한 상태로 바라본 여의도는 여전히 밝았다. 사람의 24시간중 17시간을 머무르게 하는 동네, 집보다 더 오랫동안 몸을 부비는 장소. 잠깐이란 건, 산술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일까.


이 땅이 섬이란 사실을 기억하면서도 잊어버린다. 여의도의 밤은 오늘도 무척이나 밝고 북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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