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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경 emb May 06. 2018

그 감나무 한 그루

들국화-이별이란 없는거야


나와 나이가 같은 그 나무는 말라 비틀어진 곶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내가 태어나기 한 달쯤 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던 평범한 하루였다. 아마도 주말이라 추측해보는데, 아버지가 평일 낮에 아파트 주변에 계셨다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선물로 들어온 곶감 중 하나를 입에 문 채 한 층에 열 가구가 있는 아파트 앞 보도블럭을 걷고 계셨다. 아버지가 베어 문 곶감 안에는 씨가 들어 있었다. 거슬리기만 하던 작은 씨를, 아버지는 근처에 있던 버려진 항아리 안 흙더미에 뱉어버렸다.


다시 평번한 하루들이 지났다. 최소 하루에 두 번 이상 항아리 앞을 지나다녀야 하던 아버지는 어느날, 담뱃재 항아리 안에 푸른 싹이 자라난 모습을 보았다. 외할머니가 달려왔고, 새싹은 아파트 입구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있던 공동 화단으로 옮겨졌다. 어린 감나무 싹이 미처 자리를 잡기도 전에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


다시 들어도 판타지스러운 이야기다. 그러나 아파트 좁은 앞마당 앞에서 자라던 그 작은 감나무는, 실제로 그 곳에 있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오래된 필름영화처럼 뚝뚝 끊겨 있지만, 아득이 남아있는 감나무는 내 키보다 훨씬 작고 약했다.


나는 감나무를 좋아했다. 그 나무는 누가 뭐래도 내 나무였다. 비가 오던 날이면 가지 하나도 꺾일까 노심초사했다. 홍수라도 오면 나무가 뿌리채 뽑힐까 걱정스러워, 7층 높이 아파트 창문에 매달려 나무를 바라보다가 어머니에게 혼쭐이 났다.


초등학교를 들어갔다. 나도 아빠처럼 하루에 최소 두 번 아파트 앞 화단을 걸어다녀야 했다.


아침마다 감나무와 인사를 했다. 감나무와 나는 키재기 경쟁을 했는데, 학교를 가기 전 화단으로 뛰어들어가 나무 앞에 서서 키를 재고 다시 학교를 향해 달려가곤 했다. 그 때 나무는 나와 키가 엇비슷했다. 가지에도 제법 힘이 실려 튼실한 이파리가 붙어있었다. 아파트 상가의 미술 학원에서, 난 몇 장인지도 모를 감나무를 그렸다. 그림 속 감나무는 나보다 키가 컸고, 주황빛의 단감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드디어 이 나무가 열매를 맺었다. 알은 작았다. 그래도 내 나무의 성과였다. 감은 동글넙적했지만 조금 떫었다. 퉤퉤거리면서도 손에 쥐어진 작은 감을 전부 먹었다. 댓 개의 감 중 맨 위의 두 개는 까치밥으로 남겨두었다.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이사를 갔다. 같은 아파트 단지였지만 걸어서 15분은 걸렸다.


어머니에게 감나무를 데려가면 안 되냐고 용기내서 물어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거절당했다. 당시 나무는 나보다 커져 있었다. 뿌리는 화단 깊숙이 박혀 있는 상태라 사람을 불러 퍼내야 할 정도였다. 어느새 감나무는 나의 보살핌이 필요 없어 졌다. 비가 오지 않아도 스스로 땅 깊은 곳에 뿌리를 내어 물을 찾아 먹는 나무에게 나는 자주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약속을 했다. 생각해 보니 약속한 이후 십오년이 훌쩍 넘었다.


중학생 땐 못해도 한 달에 한 번은 나무를 보러 갔다. 나무가 너무 웃자란 듯 싶으면 경비 아저씨에게 칼을 빌려 가지치기도 해주었다.

감이 익을 계절이 되면 외할머니와 함께 화단을 찾아갔다. 손에 닿을 곳에 열린 감 열몇 개를 따와 가족들과 나누어 먹었다. 나머지 감은 아파트 경비 아저씨와 청소 아주머니의 간식이 됐다. 아파트의 꼬맹이들이 설익은 감을 몇 개씩 따가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래도 불문율마냥, 맨 윗쪽 까치밥 몇 개는 남겨놓았다. 나도, 할머니도, 경비 아저씨도, 청소 아주머니도, 아이들도.


그 월례행사가 도대체 언제쯤 끊겼는지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머릿속에 감 대신 수학 공식이 들어갈 때쯤이었을까. 나보다 키가 커버린 감나무에 질투심을 느끼는 대신, 못 들어갈 상위권 대학교의 이름들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을 때였을까. 혹은 내 마음이 왕복 30분 거리를 느긋하게 왔다갔다할 여유를 잃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예전 아파트 근처를 지나갈 때면 항상 감나무 생각을 했다. 살던 집의 구조보단 감나무가 먼저 떠올랐다.


며칠 전.


나와 나이가 같은, 말라 비틀어진 곶감에서 시작된 나무가 밑동만 남기고 잘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전 아파트 노인정을 찾아뵙던 외할머니가 이야기해줬다.


왜 잘렸는지 이유는 모른다. 내가 따질 것도 아니었다. 내가 아는 건 그 작은 화단 근처 나무 몇 그루가 함께 뽑혔다는 것 뿐이었다.


사실상 그 나무가 자라는 공간은 내 땅이 아니었다. 엄밀히 말해 감나무는 내 나무가 아닌, 아파트 전체의 재산이었다.


슬픔이 느껴지진 않았다. 다만 여러 생각은 스쳐 지나갔다.


나와 나이가 같으니 이제 스물 몇 살이 되었겠지.

밑동이 드러난 나무에는 스무 줄 넘는 나이테가 있었겠지.

본래 감나무란 종의 줄기는 가늘던데.

길가 은행나무들처럼 크진 못했을 거야.


감나무가 사나운 홍수에 뿌리채 들려 뽑혀 버릴까,  마음 졸였던 시절이 이제 정말로 꿈처럼 느껴졌다.



다시 말하지만 슬프진 않았다. 그러나 그 감나무는 나와 나이가 같았고, 말라 비틀어진 곶감에서 시작해 버려진 항아리 속 담뱃재에서 삶을 시작했다.


적어도 그 아이를 위해 조사를 써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지 않은 감정이 정리되면 그 화단을 찾아가봐야겠다.




가면 어딜 가니

좁은 이 마음속에

언제나 별빛처럼

너는 반짝일텐데


웃으며 나를 보내줘

언젠가 만나겠지

새로운 마음으로


이별이란 말은 없는거야

이 좁은 하늘아래

안녕이란 말은 없는거야

이 세상떠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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