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청춘
스물아홉 살 Y는 3년차 신문기자였다
아홉수의 초여름 Y는 결혼을 했다 직장을 갖고 나서 만나게 된 사람이었다
바로 다음해 2월 Y의 첫아이가 태어났다 딸이었다 자신의 어릴 적과 똑같이 생긴 생명 덩어리를 보았을 때 Y는 정말 깜짝 놀랬다고 한다 Y는 그렇게 아빠가 되었다.
스물네살 딸은 기자가 되었다 아빠는 여전히 기자 일을 하고 있었다
이쪽 업계를 준비하고 싶다고 말을 했을 때 아빠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너무 오랫동안 준비하진 말라고, 오래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말만 덧붙였다
아빠가 제시한 시한은 1년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6개월 즈음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다.
아빠의 등을 보고 따라 들어온 업계에서 나는 꽤 막 살았다
이 업계의 문화는 독특했다 어느 직종보다도 위계적이고 권위적이었지만 가끔은 윗사람을 삼촌처럼 대할 수 있었다
우리는 부장을 부를 때 '부장님'이라 하지 않고 '부장'이라 불렀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술을 마셔도 절대 한쪽이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마주해 술잔을 비웠다 위아래를 나눠도 결국은 한 명의 언론인이라는 쓸데없는 자부심이 녹아든 결과였다
쓸데없는 자부심은 없다 생각했지만 독특한 문화에 나는 꽤 잘 적응했다 가족한테도 보여주지 못한 모습이 일터에서는 나왔다
막 살 수 있는 일터란 공간엔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와 짜증만큼이나 소중한 자유가 녹아있었다.
우연히 페이스북을 뒤지다 아빠의 계정을 발견했다
아빠의 피드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에게만 보이는 글을 쓰는지, 아예 페이스북을 이용하지 않는지 나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딱 한장 사진이 있었다 프로필에도 걸려있지 않는 사진 한 장.
요새는 입지 않던 양복 정장에 넥타이까지 멘 아빠는 그땐 조금 더 젊었다 아마 마흔 줄의 끝자락으로 추정되는 시간 속에서 아빠는 나무를 배경삼아 술잔을 앞에 두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마도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였으리라 추정됐다 왜냐하면 나는 아빠와 같은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분위기의 자리가 열릴만한 곳은 나와 아빠가 공유하는 '직군'이란 거대한 영역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사진 속 아빠는 아빠가 아니라 기자란 직업을 가진 Y였을테다 Y가 보여주는 미소는 아빠의 미소와는 또 미묘하게 달랐다
처음 보는 Y의 미소는 꽤나 멋졌다 오랫동안 기억나는 웃음이었다
직업을 갖고 막 살면서도 간과한 게 있었다 내가 막 살 수 있는 공간을 얻은 것처럼 아빠 역시 일터에선 자유로웠으리란 생각이었다
집에서 보던 아빠와 일터에서의 Y는 아마도 꼭 나만큼이나 달랐으리라고 지금의 나는 추측해본다.
생각해보니 나는 일터 속에 있는 아빠의 모습을 알지 못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도, 후에도 아빠의 일터에 찾아갈 일은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사실상 Y라는 사람은 알지 못하는 셈이었다 나를 낳아준 사람이지만, 아빠이지만.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Y의 일터와 Y의 영역과 거기서 나오는 행복을 나는 굳이 뺏고 싶지도 관찰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나는 빌었다 스물 몇 년동안 이어졌을 아빠로서의 삶은 무척이나 피곤했을 테다
그 삶에 Y의 일터는 많은 경우 스트레스와 짜증의 공간이었겠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 당신의 미소만큼이나 달큰한 순간을 만들어줄 수 있었길 빌었다
당신과 내가 공유하는 일터가 오로지 당신을 위해 조금 더 유지되길 나는 바랬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영가가 구슬퍼
가고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