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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경 emb Nov 08. 2020

할머니의 땡감

들국화-걱정 말아요 그대


"엄마의 할머니는 땡감을 좋아했어" 아버지의 외가댁에서 온 감상자를 열며 엄마는 말했다.

가본 적도 없는 전남 광양에는 아버지의 외가, 그러니까 친할머니의 가족들이 모여 산다.

담 낮은 어느 마을 슬레이트 지붕 근처에는 탐스러운 대봉을 주렁주렁 매다는 몇 그루의 감나무가 있나 보다고, 상처 가득한 감을 뽀득뽀득 닦아내며 나는 생각을 했다.


소박맞은 큰딸은 갈 데가 없었다. 젖먹이 업고 친정에 돌아왔고 놀란 막내아들이 이를 알렸다.

빨래터 인연, 막역한 집에 보낸 시집이었다. 걱정할 리 없다 자신했었다.

생각은 부질없었다. 눈앞에서 딸은 울었다.

한약방을 꾸리다 요절한 남편 대신 집안을 억척스레 이끌어왔다.

과부가 된 스물몇 살 어느 밤, 준비 없이 덮친 현실의 무게감이 다시 찾아와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그렇게 딸과 손녀를 품에 안았다. 기구한 팔자라고 그녀는 밖으로 안으로 곱씹었다.


전북 부안의 바닷가에서 읍내로, 다시 변산반도 해안에서 바지락을 캐다 세간살이를 싸들고 신촌으로.

식민지 시대에 전쟁까지 거쳐야 했을 증조 외할머니의 심경과 굴곡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마는.

여하튼 증조 외할머니와 외할머니는 과부와 소박맞은 딸의 관계로 엉겨 붙어 반세기 넘는 애증을 키워왔다.

사이에 낀 내 어린 어머니는 돌이켜보니 증조 외할머니의 사랑을 꽤나 받았던 것 같다고, 오십 몇 엄마는 지금도 가끔 그런 말을 한다.


호상이었다. 예순이 조금 넘은 나이에 많이 아프진 않으셨고 정신은 맑았다.

애연가였다. 가시기 며칠 전까지도 담배를 찾았다. 신촌에는 끝까지 정을 못 붙이셨단다.

드러누우셨을 땐 엄마를 향해, 계집년 방에도 들어오지 말라며 악을 쓰셨단다. 돌이켜보면 정신이 말짱하신 당신은 일부러 정을 떼려 그러신 듯하다고, 감꼭지를 따던 엄마가 말했다.

뗀 감꼭지를 모아 쓰레기통에 털어 넣던 나는 세상의 다채롭고 풍부한 사랑에 대해 조심스레 생각했다.


초가을 나무에서 떫은 감을 막 따 아삭아삭 베어 먹었을 증조 외할머니를 상상한다.

얼굴은 모르지만 엄마와 할머니로 이어지는 연쇄의 한 축일 그녀는 아마 땡감이 아니라면 감이란 과일을 입에 넣을 수 없는 어떤 시기를 지나왔을 테다.

그게 1900년대 출생 계집아이의 애환인지 혹은 너무 빨리 성년이 되어 건사해야 할 입들을 떠안은 데서 나온 헌신인지 알 수는 없다.

여하튼 그녀의 인생에서 달큼한 감을 만들 후숙의 여유 따위는 없었을 것이라고.

땡감이 좋아져버릴 정도의 애환을 거쳐 나는 태어났을 것이라고.

아직 단단한 감을 닦으며 나는 그녀의 인생을 돌이켰고, 나를 존재하게 한 그녀들의 치열한 삶에 무한한 감사를 보냈다.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시점 몇 안 되는 기억.

<나의 뿌리를 찾아서> 란 숙제가 있었다. 친가 외가로 3대까지 타고 올라가 가족의 이름을 정리해보란 걸로 기억한다.

'외할아버지' 칸을 채울 수 없어 퇴근한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는 이름을 썼다. 망설이다 고(故) 자를 덧대었다. 다시 망설이다 故를 지웠다.

다음날 간식을 챙겨주던 외할머니에게 이유를 물었다. 어떤 대답을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당신은 돌아서서 우셨을까, 혹은 웃었을까.


울거나 혹은 웃으셨을 나의 외할머니는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을 대신해 나를 키웠다.

딸 대신 손녀를 업고, 딸의 일터까지 찾아가 기어이 젖을 먹였다.


이제는 땡감과 익은 홍시를 구분하지 못하는 나의 외할머니에게 홍시 하나를 갈라드렸다.

이렇게 맛있는 과일은 처음 본다며 먼저 익은 대봉을 성큼성큼 퍼먹고도, 당신은 돌아서서 무얼 드셨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눈을 껌뻑이며 빈 그릇을 바라보신다.

감꼭지에 붙은 과실 한 스푼조차 당신이 마저 드시길 바라는 눈빛이 너무 순수해 나는 슬펐고 엄마는 지쳤다.

과부와 소박맞은 딸의 애증은 이렇게 다음 세대로, 순수해진 어머니와 지쳐버린 외동딸로 이어진다.


홍시를 먹는 할머니를 엄마와 함께 바라보며 땡감을 먹는 증조할머니를 반추한다.

여기 얼추 백 년의 시간에 걸쳐 네 명의 여자가 있다.

삶이란 이렇게나 무겁기에 우리는 얼룩져 다음으로 흘러간다.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 버렸죠

그대 슬픈 얘기들 모두 그대여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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