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두 눈 부릅뜨고 지키는 골목은 민간인들의 영역이었다
출근길엔 경찰을 두 번 지나친다 한 번은 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 문 앞을 통과하기 전이고 다른 한 번은 청와대 근처로 가는 언덕배기 길목에서다.
사복을 입고 잡담도 자주 나누는 춘추관 문앞 경찰과 달리 언덕배기 경찰들은 제복을 빼입었다 언덕배기 경찰들의 나이는 많아봐야 삼십대 언저리를 웃돌아 보였는데, 교대 근무를 하는지 언덕배기 경찰들의 얼굴은 매번 바뀌었다 그러나 얼굴만 바뀌고 같은 제복을 입고 있으니 나는 이 사람들을 매일 봐도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매트리스의 복제된 스미스 요원 같이 느껴졌다
하여튼 스미스 요원 경찰들은 항상 두 명씩 짝을 지어다녔다 한 명은 길목에 서있었고 한 명은 네모난 푸른 통 속에 들어가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지켜만 보았다 통제도 검문도 검사도 없었다.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언덕배기 경찰이 두 눈 부릅뜨고 지키는 골목도 민간인들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 곳에는 주민들이 살고 가게가 운영된다 어린이집도 있고 미술관도 있었다.
처음으로 언덕배기 경찰을 넘어 청와대 골목에 들어왔을 때 나는 조금 놀랐다
푸른 경찰 부스가 바라보는 쪽은 삼청동 메인 거리였다 거기는 오설록이니 스타벅스티 하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잔뜩 있었는데 한옥의 결을 그대로 살린다면서 지붕만 남기고 쉴새 없이 공사를 했다 그 사이 임대료는 치솟았고 주인은 자주 바뀌었다 삼청동 골목 곳곳에는 항상 임대라는 글자가 펄럭거린다
그러나 푸른 경찰 부스 뒤 청와대 골목에 있는 구멍가게의 간판들은 도대체 언제 세워졌는지 궁금해질 정도로 낡아 보였다 좁아터진 인도의 오른쪽에는 마룻바닥색 장판을 대충 잘라 깐 평상이 한 자리를 떡 차지하고 있었다 꽈리 덩굴은 가로수인 은행나무를 휘어감고 올라갔는데, 분명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는게 틀림 없을 정도로 잘 손질되어 있었다.
가끔 이른 점심을 먹고 구멍가게와 골목길을 돌았다 구멍가게 주인 혹은 가족 아니면 친구인 듯한 주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뽀글머리 파마를 한 할머니와, 누가 봐도 한국의 70대 노인인 할아버지는, 신문을 보거나 장기를 두거나 부채질을 했다 젊은 부부가 집 근처를 서성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가게와 연결된 가정집의 철문은 훤히 열려 있곤 했다.
열린 집안 마룻바닥엔 종 모를 애완견 한 마리가 누워있었다 바로 앞 평상엔 잘 쳐줘야 초등학교 저학년쯤 됐을 까까머리 남자아이가 가방도 벗지 않은 채 평상에 걸터앉아 발장난을 쳤다.
한창 일을 하다 입이 심심해 껌을 사러 구멍가게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편의점까지 내려갈 시간은 없었고 구멍가게는 나름 괜찮아 보였다
무설탕 천연 치클 자일리톨을 사고 싶었지만 그런 건 없었기에, 나는 빠르게 포기를 하고 롯데껌 하나를 집었다 가게 저 편에서 회색 머리 할아버지가 소리 없이 나왔다
나는 고민도 안 하고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내 딴에는 삼성 페이가 되지 않겠단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이었다 그런데 회색 머리에 비해 주름이 많던 할아버지는 무척 난처해했다 "우리는 카드 받는 기계가 없어캈꼬..."
카드 지갑이면 족했지 현금 넣은 지갑은 잘 안 챙기고 다녔던 나는 약간 당황했는데, 웬일로 아주 다행이도 주머니 속에 명함 지갑이 있었다 지갑 속 숨겨둔 비상금 삼천원 중 천원을 빼 할아버지에게 건넸다 할아버지는 씩 웃으며 천 원을 받았다.
어쩐지 이 곳이 카드 기계는 앞으로도 들여올 것 같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청와대 춘추관에 가까워지면 예술 갤러리도 심심찮게 눈에 들어왔다 아니 사실은 꽤나 많았다 춘추관이 지도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초행길인 사람이 길을 헤매면 춘추관에 상주하는 객식구들은 춘추관 10초 거리에 있는 갤러리 이름을 가르쳐주며 이쪽으로 오라고 지시하곤 했다
복작스러운 구멍가게와 달리 갤러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거의 보지 못 했다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더욱 그랬다.
딱 한 번,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온 50대 가량의 남자 무리를 목격했다 한국의 흔한 아저씨라기보단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같은 사람들이었다 머리에 두건까지 동여맨 중년 히피들은 흰색 갤러리 입구에 둥그렇게 모여앉아 말보로로 보이는 담배를 피워가며 하늘을 구경했다.
늦여름이었다 바깥 날씨를 구경하긴 딱 좋긴 하지, 라고 나는 생각했다 건조한 글을 써서 먹고 사는 나는 예술가의 세상을 정말이지 잘 모르니까. 그 이상의 이해는 불가능했다.
춘추관에 가장 가까운 곳에는 카페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다른 카페들은 죄다 언덕길을 종종 내려가야 했고 왕복 걸음으로만 10분쯤이 걸렸다 일 분이 소중한 아침엔 금쪽같은 시간이었다
청와대 춘추관 근처는 유동 인구가 많은 편이 아니고 청와대 본관과는 거리가 좁 있는 편이다 사업상의 목적을 따져봤을 때 이 카페가 노리는 손님들은 필시 피곤에 찌들은 춘추관 기자들이었을 거라고 나는 추측했다.
로스팅 기계마저 갖추고 있었지만 카페가 어째 별로 믿음직스럽지가 않아 며칠 동안 언덕길을 왕복하며 프랜차이즈 카페를 찾아가 커피를 담아왔다 그러다 딱 한 번, 시간이 여의치 않아 바로 앞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마셨다.
예상대로 커피는 맛이 없었다 심하게 맛이 없었다. 예상이 너무 들어맞아 맥이 빠진 나는 다시 언덕길을 종종 내려갔다 제복을 입은 경찰을 넘어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렀다.
하루에 두세 번씩 여기서 커피를 사나르는 일상을 계속 하기로 결심했다 풍경이 좋고 이야깃거리가 많으니 그 정도 오르막길을 오르는 수고쯤은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골목에서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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