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사진을 참 많이 찍었다. 여전히 동네 산책을 나갈 땐 카메라를 가져간다.
일단 태어나고 자란 곳이 좋았다. 나는 평소 무언가에 애착을 갖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데도 유독 이 곳을 사랑한다.
사진보단 글이 적절한 이야기 같다. 동네 예찬가는 언젠가 꼭 풀어내고 싶은 이야깃거리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동네밖에 찍을 게 없었다. 쉬는 날엔 동네를 떠나질 않았다.
일을 하니 쉬는 날이 소중했다.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이 정말 너무 좋았다.
하는 일의 특성상 꾸미는 건 필수적이다. 단정한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 게 업무의 일환이었다. 옷도 화장도 취미로는 좋아했다. 다만 하고 싶은 게 해야 하는 일이 되니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일은 피곤해져버렸다.
몇 개월 동안 일주일 중 하루밖에 쉬질 못 했다. 자연스럽게 쉬다는 단어는 곧 꾸미지 않는다는 의미가 되었다.그 날엔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밖에 나갈 약속을 잡지 않았다.
쉬는 날 꾸미질 않으니 돌아다닐 영역은 동네로 한정됐다.
집이 갑갑하면 아무 옷이나 걸쳐입고 모자를 눌러쓴 채 반경 2키로 내외를 돌아다녔다. 그 안엔 두 개의 영화관과 서너 개의 서점, 세지도 못할 만큼 많은 카페가 있었다.
여가의 모든 조건이 충족되니 불편함을 느끼지 못 했다. 그래서 쉬는 날은 나름 행복했다.
아주 가끔 동네 친구와 반경 2키로 밖을 벗어났다. 그럴 땐 골목들을 찍었다.
서울의 골목은 특색도 재미도 없다고 생각했다. 홍콩의 거주지 같은 우울함도, 유럽의 100년 넘은 건물에 흐르는 멋스러움도 없다는 마음이 꽉 차 있었다.
매년 매주 매일 재개발로 투닥거리는 복덕방 세상이 그냥 싫었다. 우리 집은 건물 따윈 없었고 나는 어렸으니 집과 땅과 건물이란 건 너무 먼 세계 이야기였다.
카메라를 사고서야 서울의 골목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았다.
서울이란 명사 단어는 롯데타워나 한강 그리고 남산을 향할진 몰라도, 서울스럽다는 형용사는 붉고 획일적인 벽돌과 오래된 아스팔트의 갈라진 틈새와 촌스러운 골목길 간판과 낡은 전신주와 아무렇게나 세워진 차들이 얽힌 골목들에 있었다.
그래도 골목을 찍으면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그게 가장 예뻐 보이니 어쩔 수 없었다. 공통점은 있었다. 도시 속 낡은 이야기들이었다.
50년대에서 70년대까지의 사진을 걸어둔 전시회에 간 적이 있다. 그 시대의 일상 자체가 주제였다. 누가 찍었는 지도 모를 사진들이 한가득 걸려 있었다.
명동과 신촌의 평범한 도로조차 신기했다. 사람의 표정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내가 좋아하는 모습은 내가 담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카메라를 사게 된 이유였다.
관광지의 풍광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충분했다. 유명한 곳의 모습은 쉽게 변하지 않았고 그런 곳을 비싼 장비로 잘 찍은 사람들의 사진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내 사진기에는 예쁜 것보단 좋은 걸 찍고 싶어졌다. 예쁜 도시에도 좋아하는 모습은 많아서 2018년 여름을 담아낼 틈바구니를 찾아다니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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