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낮의 로마에서 달의 모양을 미리 예언할 수 있었다
로마의 반달
2018년 10월 13일 토요일부터 2018년 10월 21일 일요일까지 대통령을 따라 순방을 다녀왔다.
출장을 간 나라는 프랑스, 이탈리아, 바티칸, 벨기에, 덴마크였다.
운 좋게 잠시 들렀던 스웨덴을 합치면 여섯개 나라를 찍고 왔다.
1.업무
출장은 생각보단 힘들지 않았다 나는 운이 좋았고 또 미처 몰랐지만 긍정적인 성격이라 9일 동안을 정말로 재미있게 보냈다.
일은 11시쯤까지 하는 게 보통이었고 잠은 보통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쯤 들었다 3시까지 침대 속으로 못 들어간 적도 이틀을 넘겼다.
기상은 대부분의 경우 6시쯤이었다 오전 8시엔 숙소 방에서 나와 조식을 먹었고 오전 9시엔 스탠딩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가 오전 11시쯤 호텔 일터로 복귀했다.
이후엔 쉬다 일하다를 반복하며 저녁 11시쯤까지 자리를 지켰다 때로는 취재 순번에 맞춰 현장에 나가기도 했다.
장소를 바꾸니 업무의 모든 과정이 놀이 같았다 잠을 못 자는건 조금 피곤했으나 재미는 졸음을 어느정도 이겨냈다.
2.달빛
9일동안 초승이던 달은 차올라 반달이 되었다 반달을 넘어 배가 불룩해진 달빛을 받으며 덴마크 코펜하겐을 떠나 서울로 왔다.
달빛이 무척이나 밝다는 건 DSLR 카메라를 사고야 알았다 정말로 밝았던 조명도 달에 카메라 초점을 맞추면 쉽사리 빛을 잃었다 그게 참 신기했다.
7시간의 시차 덕분에 서울의 친구들보다 7시간 늦은 삶을 살았다 오늘은 정말 예쁜 반달이 떴네, 라는 한 친구의 연락을 받아 나는 한낮의 로마에서 달의 모양을 미리 예언할 수 있었다.
7박 9일 동안 낮마다 그날의 달 모양을 전달받았다 그리고 밤마다 달을 보며 오전의 황홀함을 되새겼다.
늦게 살아가는 시간을 이렇게나 밀도있게 느낀건 처음이었다.
3.추억
6개 나라 중 4개 나라를 이미 가보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다시 봐도 그토록이나 찬란했고 좋았다.
드럼통 위에 쏟아진 생맥주와 그 물기에 처박힌 담배 꽁초.
아침 7시 반 테라스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 잔에 종이 신문을 펼쳐보던 파리의 젊은 여자.
그토록 도난이 잦다는 로마에서도 새벽 1시까지 스페인 광장 앞에 경계 없이 앉아 있던 여행객들.
벨기에의 언덕에서 키스하던 연인들.
콜로세움 앞에서 혼자 다니니 여행길 조심하라던 한국인 가족.
낮은 구름이 꼭 머리를 찧을 것 같던 덴마크의 하늘.
줄지어 이어지는 유럽의 자전거.
추위를 에는 깨끗하고 상쾌한 북유럽 공기.
호수와 바다와 풀과 밭과 집과 개가 함께 살던 말뫼의 시골마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에서 언뜻 느껴지는 답답함과
해석할 수 없는 언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순수한 운율들...
추억은 소중했고 남겨놓아야 할 모든 것들이 탐나 참을 수가 없었다.
비행기로 열두시간 거리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이 아름다워 나는 일을 해도 힘이 빠지지 않고 맥주를 마시며 달만 바라봐도 행복했다.
4.사진
DSLR이 열심히 일했다.
내가 살던 나라 프랑스, 다시 찾은 도시 파리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다 그래서 매번 아침마다 다른 스탠딩 포인트를 찾아 헤맸다.
스탠딩 포인트란 시청자들이 알아볼 수 있는 상징성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기에, 나는 도시를 뜯어보진 못 해도 최소한 호텔에만 매이지 않고 이곳 저곳을 다니며 틈 나는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사람의 이야기가 좋고 그래서 인물 사진을 좋아한다 기회가 닿는대로 동행인들을 찍었다.
그들이 좋아하니 나도 좋았고 동행인들에겐 스냅 사진을 선물로 주었다.
때론 글보단 사진 한장이 더 많은 기억을 뭉쳐 보관했다 그러니까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는, 정말 온전히 이기적일 정도로 나의 기억을 잡아채 묶어놓기 위해서였다.
그 사실을 안 시점이 너무 늦은 듯해 안타까워 카메라를 더 열심히 들었다.
누군가는 그 의미를, 나보단 더 빨리 알길 바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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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대통령의 순방 관련 이야기는 문제가 되지 않을 부분만 소중히 골라 '현장의 뒷이야기'에 담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