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겨울-딱 하루짜리 속초

6일 연속 근무를 마친 다음날, 오전 7시에 속초로 가는 버스를 탔다.

by 밍경 emb

올해 7년째 알고지낸 친구들이 있다. 함께 대학을 다녔고 꽤나 친했다.

학교를 다닐 땐 방학이 겹치니 자주 함께 놀러 다녔다. 졸업을 하니 같이 여행을 갈 틈이 없었다.

어떻게든 하루라도 시간을 맞춰보잔 이야기가 나왔다. 근무표를 바꾸고 바꿔 어떻게 하루 틈을 냈다.

6일 연속 근무를 마친 다음날, 오전 7시에 속초로 가는 버스를 탔다.


강원도 속초 @emblem

속초의 첫인상은 신기했다.

눈 내린 산과 투명한 바다가 앞뒤로 도시를 감쌌다. 대부분의 마을은 걸어다닐 수 있었다.

서울 토박이인 나는 일단 한국에 이렇게 작은 도시가 있다는게 재밌었다.


그래도 오전 9시의 속초는 쌀쌀했기에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곧장 등대해변으로 갔다. 해변길로 향하는 길에 내렸는데도 여전히 산은 잡힐듯 보였다.

어느 주택가 앞에 걸려있는 말린 물고기를 보고서야 이 곳이 항구마을이란걸 실감했다.


강원도 속초 @emblem

사실 등대해변은 근처에 유명한 물회 음식점이 있다 해서 왔다. 오전 9시 반부터 물회를 파는 집이 흔하진 않았다.

물회로 떼돈을 벌었다는 집의 물회맛은 그저 그랬다. 추운 날 먹은 추운 음식 때문에 몸이 으슬으슬 떨렸고 식당은 약간 쌀쌀했다.

물회보단 함께 먹은 성게알비빔밥이 감칠맛나 한 그릇을 싹싹 비웠다. 물회를 먹으며 바라본 바다가 너무 예뻐 맛을 따지지 않고 바로 옆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아직 아침이라 카페엔 사람이 없었다. 한 시간 정도 카페를 우리 것마냥 쓰고 나니 두 명의 군인이 들어왔다. 시끄러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말이 없었다. 두 군인은 함께 커피를 마셨고 조용히 바다를 바라봤다.

속초에서 군인들은 꽤 많이 보였다. 이상하게 군인과는 연애해본 적이 없었어서, 아마 근처에 군부대가 있겠거니 추측만 해봤다.

커피 맛은 풍경과 뒤바꿨는지 별로였다.


강원도 속초 @emblem


몸이 녹자 우리는 등대해변을 따라 걸으며 동해를 바라봤다.

깨끗한 모래가 서벅거렸다. 동해를 자주 오진 않았는데, 서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한국에서 에메랄드빛 바닷물을 볼 수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온도만 빼면 어느 열대해변과도 다를 게 없었다. 날이 풀리면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와야겠다 생각했다.


강원도 속초 @emblem
강원도 속초 @emblem


사실 속초는 오래된 관광지라 여행객이 많다. 그런 것치곤 시골 현지의 분위기가 진하게 남아 있었는데, 특히 바닷마을 특유의 정제되지 않은 비린내가 퍼졌다.

가장 유명한 관광해변 근처에선 반찬용 말린 물고기를 팔았다. 바닷일을 하며 살아온 게 티가 나는 어르신들은 아스팔트 위에서 추위를 녹이려 불을 피웠다. 방금 선착한 배는 잡아들인 잡어를 분주히 항구에 털었고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은 그물에서 일일히 물고기를 떼어냈다.



강원도 속초 @emblem


함께 간 친구가 셋에 나까지 넷이어서 자연스럽게 둘씩둘씩 맞춰 도시를 걸었다. 사람을 찍는 걸 좋아하는 나는 모델이 셋이나 되니 실컷 사진을 찍었다.


강원도 속초 @emblem

계획에는 저녁에 활어회를 먹자 했는데 친구들은 속초 곳곳에서 보이는 물곰이란 글자를 신기해했다.

물곰탕은 곰치탕인데 흐물거리는게 호불호가 갈려도 난 좋아한다 했더니 갑자기 저녁메뉴가 물곰탕으로 바뀌어버렸다.


강원도 속초 @emblem


아침에 택시를 타고 들은건데 요새 속초에는 오징어가 잡히질 않는다 했다.

정말로 오징어배들은 속초 항구에서 놀고 있었다. 오징어배가 다른 생선을 잡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속초의 어부들은 그물 손질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텅 빈 배에도 정돈된 그물이 가지런히 실려 있었다.


강원도 속초 @emblem


점심은 1박 2일에 나와 유명해진 생선구이였다.

20분을 기다려 일인분에 만 사천원짜리 생선구이를 시켰다. 열 가지정도 되는 생선이 나왔는데 불조절을 잘 한건지 생선이 신기한건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손님이 생선을 구울 필요 없이 직원들이 돌아다니며 생선을 자르고 발라줬다. 동남아에서 온 듯한 직원들은 어느 누구보다 프로같은 손놀림으로 생선을 구워냈다.


강원도 속초 @emblem
강원도 속초 @emblem

배까지 채운 뒤엔 속초 중앙시장을 찾았다.

닭강정이 그렇게나 유명하다는데 줄도 길고 다들 생각이 없어 먹진 않았다. 어차피 요새는 전국에 닭강정도 배달되는 시대인데 사갈 필요도 없다 생각했다.

대신 씨앗호떡이라는 걸 각자 하나씩 사들고 시장을 구경했다. 아침에 봤던 말린 물고기들은 시장에서도 계속 나왔고 나는 오히려 활어보단 말린 물고기에 속초란 항구도시를 연결짓게 됐다.


강원도 속초 @emblem

네 시쯤 되어선 아바이마을에 가려고 금강대교 근처로 갔다.

역시나 바닷물이라 낚싯배가 곳곳에 배여 있었다. 전혀 꾸밈이 없는데, 다리와 낚싯배와 그림자와 하늘이 묘한 색깔의 조화를 이루며 풍경을 만들었다.

우리는 커피 한 잔씩을 사왔다. 다행히 겨울 치곤 날씨가 따듯한 편이라 난간에 매달려 예쁜 경치와 함께 수다를 떨었다.


강원도 속초 @emb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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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이마을로 가려면 갯배란 걸 타야 됐다. 건너편 항구까지 20초 정도 줄배를 타는 거였다.

아무래도 동전보단 카드에 익숙한 우리들이라 편도 500원짜리 배를 타기 위해 현금을 뒤지고 뒤졌다.


강원도 속초 @emblem

아바이마을은 섬이 아니다. 그저 실향민들이 모여살던 데서 유래된 이름이었는데, 단지 아바이마을로 가려면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 구조라 갯배를 타고 들어가는 거였다.

아바이 순대의 고향이라더니 정말 곳곳에 아바이 순대집이 있었다. 하루짜리 여행이라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는데 아바이 순대는 선택에서 밀려 먹지 않았다.


아바이마을 위로 금강대로가 지나가 우리는 아바이마을에서 보이는 등대까지만 걷고 위로 올라가자 결정했다.


강원도 속초 @emblem

이 곳에도 역시나 이름을 알 수 없는 물고기들이 줄줄 걸려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속초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아바이마을에서 건졌다.


강원도 속초 @emblem

금강대교 위에서는 솔직히 속초보단 우리들이 더 중요했다.

해도 저물어가고 날씨는 추워졌지만 우리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장난스런 포즈를 취하고,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나가는 커플에게 네 명의 사진을 부탁하니 그 커플은 우리가 너무 안 친해보인다며 포즈를 좀 취해보라고 이리 저리 시켰다. 우리는 진중한 포즈를 취하면서도 서로를 엉덩이로 힘차게 밀기 시작했는데, 겹치고 밀려서야 자연스러운 웃음이 터져왔고 네 명은 그 때 찍힌 사진을 가장 좋아하게 됐다.


강원도 속초 @emblem

금강대교를 넘어서는 저녁을 먹기 전 영금정으로 갔다. 원래 해가 지는 걸 바라보고 싶었는데 걸어 도착하니 해는 이미 다 떨어져 밤이 됐다.

그래도 어스러미가 남아 밤기운에서도 산맥을 봤는데 거기에 도시의 빛이 함께 담겼다. 바닷물이 거울이 된 속초의 저녁은 상상보다 화려한 색을 보여줬다.


강원도 속초 @emblem


영금정과 달을 함께 담기엔 내 카메라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영금정을 내려와 그렇게 기대하던 물곰탕을 먹었다. 나만 좋아할 줄 알았던 맑은 지리국물을 시켰는데 다들 맛있다며 찬사를 했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는 저녁 9시 반이었다. 한시간 반쯤이 남아 바닷가 근처 아무 카페에 들어가 수다를 떨었다.

8시 반쯤 됐을 때 바닷가에서 폭죽이 터져나왔다. 여행의 마무리를 알리는 신호같아 끝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나는 다음날 정상출근이 예정되어 있었고 택시를 타고 집에 실려왔다.


한국은 내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여행은 체력을 쓰면서까지 갈 가치가 있는 선택이었다.

네 명은 모두 다른 길을 선택했고 20대는 거의 끝나갔다.

스무살 때 처음 함께 떠난 여행이었다. 이십대 끝자락까지 여행을 이어가긴 쉽지 않았다.

시간도, 돈도, 미래도, 노력도, 운도 따라야 할 일이다. 그 모든게 갖춰져 다행이라 생각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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