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가을-달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

가능성이란 단어는 퇴근길 삼청동 하늘의 조각달처럼 허망하게 떠다녔다

by 밍경 emb
삼청동의 조각달

삼청동의 조각달


삼청동 퇴근길은 말도 안 되게 평온했다 구름 없는 하늘에는 곤색과 황색이 어색함 없이 섞여 있었고 오래된 스마트폰도 확연히 잡아내는 조각달이 떠있었다.


이십대 중반 마지막 겨울은 벌써부터 찾아왔다 바람이 제법 차 꺼내입은 코트를 움켜쥐었다.


멋진 사람과 편안 사람, 똑부러진 사람과 능청스러운 사람

되고 싶은 이미지는 분 단위로 바뀌었다 평생 오지 않을 듯했던 반오십을 넘은 나는 결국 아무 사람도 되지 못했다

정하지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럼 무얼 했냐 물을텐데 대답을 하려 했더니 소소한 일상들만 켜켜이 쌓여 있어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일 년 넘게 연애조차 하지 않았고 사랑은 더욱 없었다 호감이 가는 이는 있었지만 기댈 수는 없었다 그랬던 이십대 중반도 찬바람과 함께 끝나가고 있었다.


삶을 달처럼 조각조각 나누어 색칠해본다면 20대 중반의 나는 채도가 확 떨어진, 하늘보다 어두운 주황색이 나올 것 같았다 가장 밝을 수 있는 나이의 인생이 놀랍도록 정제되어 잇었는데 나는 갑자기 젊은 게 부럽다던 뭇 어른들의 말이 사무쳤다.


그이들과 달리 나는 나의 현재가 부러웠다 같은 시간의 다른 세계에서 있는 평행세계의 나는 누릴 수 있는 젊음을 온전히 누리고 있었고 참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같은 시간의 내 세계에선 젊음과 가능성이란 수식어가 내 주위를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슬픈 질투를 말하던 뭇 어른들과 나는 분명 조금 달랐다 많은 걸 포기하면 젊음에서 나오는 행복은 거머쥘 수 있었다

다만 많은 걸 포기하면 미래를 포기해야 했다 죽음 그 자체보다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점이 너무 무서운 나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럴 수 없으니 가능성은 없는 것과 똑같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나는 나의 현재에 질투를 느꼈다.


많은 걸 포기하면 거머쥘 수 있는 현재는 참 허망했다.


가능성이란 단어가 퇴근길 삼청동 하늘의 조각달처럼 손이 닿지 않는 곳을 둥둥 떠다녔다

어쩌면 인간은, 달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을 수 있다는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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